베일에 싸인 세계 최고 가문...19세기 부 늘리자마자 ‘이것’부터 사들였다는데 [전형민의 와인프릭]
어떻게 와인 대명사 됐나 (下)
*지난주 상(上)편에서 이어집니다.
첫째, 습지인 메독 지역이 숙련된 네덜란드 토지 개간 전문가들에 의해 조성됐습니다. 포도 재배가 가능한 토지 수만 에이커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당연히 생산량이 크게 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보르도 와인이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는 것과 동시에 고급화를 꾀했다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와인으로 비춰졌던 이미지를 보다 세련된 고객층을 겨냥하면서 효과적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특히 오크통과 각종 통으로 유통되던 와인들을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해 새로운 방법으로 유통시키면서 와인 애호가들의 인기와 이목을 한번에 끌었습니다. 대체로 통일된 병을 사용해 유통하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게 되고, 개성을 담은 라벨을 통한 추가적인 광고 효과도 얻게됐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보르도 레드와인은 17세기와 18세기 무렵 영국과 북유럽, 서유럽의 귀족과 상류층 중산층 사이에서 선호하는 와인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세귀르 후작은 보르도 토양을 공부하고 세분화해 가장 적절한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을 지역에 전파합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은 특유의 강건하고 터프한 맛과 향 덕분에 장기 숙성이 가능했고, 이런 장기숙성의 이점이 다시 한번 보르도 와인의 가치를 높입니다.
변변한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18세기 무렵, 보르도 주변 지역 뿐만 아니라 꽤 먼 나라까지 보르도 와인을 운송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덕분에 이 무렵 보르도 와인은 외국인 상인과 재배자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세귀르 후작은 ‘와인의 왕자’라고도 불립니다. 현대에 와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이른바 5대 샤또 중 3곳(라피트 로칠드, 무통 로칠드, 라 투르)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친구, 보르도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 중 하나야. 그걸 마시지 않고는 더 큰 전투를 준비할 수 없어.”(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 中)
1850년대에 흰가루병이 크게 돌았고, 1860년대와 1870년대에는 필록세라, 1880년대에는 솜털곰팡이병이 연이어 몰아닥쳤습니다. 다행히도 포도나무를 대상으로 하는 질병들이 파괴적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법을 발견해 모두 효과적으로 퇴치됐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시기 보르도의 중요한 변화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등장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성공적인 은행을 일궜고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문이죠. 이들의 등장으로 보르도의 무역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던 제임스 마이어 드 로스차일드는 1810년대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유럽 제국의 수도인 파리로 가족의 사업적 이익을 확장하기 위해 독일에서 프랑스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보르도의 샤또 라피트와 샤또 무통 로스차일드를 포함해 보르도와 가스코뉴 지역의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중 많은 곳을 인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그날 밤의 만찬을 준비하며, 보르도의 한 병을 땄다. 그 와인은 진한 루비빛을 띠며, 한 모금만으로도 그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었다.”(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中)
나폴레옹 3세(우리가 아는 위인, 나폴레옹의 조카)는 박람회를 앞두고 보르도 상공회의소에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메독(Medoc) 지역의 와인들이 와인 거래상과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해 등급이 매겨졌고, 이는 보르도 와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분류된 와인들이 바로 현대의 그랑 크뤼(Classified Growths) 와인들입니다. 당시 분류 기준은 주로 와인의 가격과 평판을 기준으로 매겨졌습니다.
와인의 품질은 시장에서의 가격으로 판단됐는데, 그 결과 1등급(First Growth)부터 5등급(Fifth Growth)까지의 등급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분류는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보르도 와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샴페인과 보르도 와인이 연거푸 따라졌고, 상류층 남녀들은 금으로 장식된 유리잔을 높이 들며 웃고 떠들었다.”(에밀 졸라의 나나 中)
이렇게 와인 무역에서 창출된 막대한 부(富)를 바탕으로 보르도는 봄 서리 기간 동안 포도밭 아래에 깔리는 차가운 공기를 교반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사용할 여유가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와인 생산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멕시코, 폴란드, 덴마크, 심지어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 끊임없이 생산자가 등장하고 있고, 기후 변화로 인한 프랑스 와인 생산자의 조건 역시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르도 와인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피로감과 취향 변화일 것입니다. 보르도 와인은 오랫동안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지만, 최근 젊은 소비자들이 보다 신선하고 혁신적인 와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도드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보르도 와인,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패러다임 변화의 시기에 또 한 번 선제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눈여겨 보는 것도 와인 애호가로서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 아닐까요?
“우리는 탁자에 앉아 보르도 와인을 주문했다. 적당히 차가워진 와인이 유리잔을 타고 흐르며, 그 향이 마치 여름날의 신선한 바람처럼 입안을 가득 채웠다.”(어니스트 헤밍웨이,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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