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EV 컨버전(EV Conversion)’ 열풍이 거세다. 클래식카부터 화물차까지,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EV 컨버전 전문 업체와 전환 키트 시장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으며 포드·미니·르노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까지 뛰어드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하고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실제 도로 주행을 허가받은 개조 전기차는 ‘0대’다. 업계에서는 법규·가이드라인 부재와 부처 간 이견으로 산업 발전이 지연되고 있다며 조속한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EV 컨버전, 글로벌 시장은 ‘활활’…국내는 ‘제자리’

EV 컨버전은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변속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해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기술이다. 차량의 프레임은 그대로 둔 채 동력계만 교체하기 때문에 올드카의 감성과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클래식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시장이 급성장했고, 전환 키트를 판매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직 마켓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EV 컨버전 키트 시장은 2022년 약 3조 5000억 원에서 2030년 약 9조 8000억 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EV 컨버전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포드는 마하-E GT 모델에 탑재되는 전기 모터를 개조용으로 별도 판매하고 있으며, 미니는 ‘리차지드(Recharged)’ 프로그램을 통해 1959~2000년 생산된 빈티지 미니를 전기차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르노 역시 구형 전기차를 대상으로 컨버전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아 영국법인도 브랜드 80주년을 맞아 1993년 출시된 프라이드를 전기차로 개조해 공개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개조 차량의 안전성 인증과 승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심사를 통과한 개조 전기차는 현재까지 ‘0대’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 심사 기준이 없어 사업자가 개조 차량을 만들더라도 실제 도로에서 운행할 수 없다”며 “관련 부처 간 권한 다툼으로 시범 사업조차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역시 “EV 컨버전 제도화 필요성이 7~8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국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EV 컨버전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자동차 산업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후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면 폐차로 인한 환경 부담을 줄이고, 기존 차량의 수명을 늘려 소비자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또한 내연기관차 정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비업계가 전기차 정비·튜닝 전문업체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역시 디젤 차량 전기차 튜닝 안전성 검증 기술 개발에 착수해 표준화·검사 체계 마련을 추진 중이다.
제도 정비 시급…“지금이 골든타임”

전문가들은 한국이 글로벌 EV 컨버전 시장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빠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 간 협의와 권한 조정이 시급하며, 안전성 인증 기준을 명확히 해야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규제를 풀어주는 것을 넘어, 개조 전기차의 품질·안전성을 확보할 기술 개발 지원과 인력 양성도 병행돼야 한다. 고전압 시스템을 다루는 특수 기술과 배터리 패키징 노하우 등은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표준 마련이 요구된다.
글로벌 시장은 2034년 약 43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제도 정비와 규제 완화를 신속히 추진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지금이 사실상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