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불승인 외노자, 미등록자 늪에 빠지다
폐 질환 소부즈씨 비자 만료
재심사까지 기약없는 기다림
병 안고 본국 돌아가야 할 판
지원센터 폐업에 창구 부족
“한국에 '휴머니티' 어딨습니까? 한국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오히려 병을 얻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치료도 해주지 않아요. 내 인생도 끝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30일 인천일보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 한 농업용품 제조공장에서 3년여간 일하던 방글라데시 국적 노동자 소부즈(37·가명)씨는 지난 25일 비전문 취업비자(E-9) 만료로 근로계약 기간 만료 통보서를 받고, 기숙사도 떠나라는 사측 퇴거명령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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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즈씨는 2021년 2월부터 9개월여간 이 공장에서 기계 부품을 연마기로 깎는 작업을 하다 같은 해 11월 폐 기능이 손상되는 질병인 '간질성 폐 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는 작업 당시 쇳가루가 많이 날렸음에도 회사에서 적절한 조치를 해주지 않아 쇳가루가 호흡기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2022년 1월 산재보험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년3개월 만인 지난달 소부즈씨 간질성 폐 질환은 업무와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산재보험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소부즈씨 산재 신청을 도운 포천이주노동자센터와 노무사 등은 공단이 노동자보단 사측 의견을 위주로 반영하는 등 부실한 조사를 벌여 불승인 결정이 났다며 최근 재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재심사 결정이 날 때까지 소부즈씨는 또다시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비자가 만료되면서 그는 국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돈을 못 버는 건 차치하더라도 폐 질환 통증과 호흡 곤란 증상 등이 있어 주기적인 치료와 검진이 필요한데 건강보험이 없기에 병원에 갈 수조차 없는 처지다.
이주노동자센터는 소부즈씨 산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는 임시체류비자(G-1)라도 발급받아 국내에 거주할 수 있도록, 또 임시거주지 마련을 통해 간신히라도 먹고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센터 측은 그나마 소부즈씨 경우 주변 도움이라도 받지만 대부분 외국인노동자는 일하다 다치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본국에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정부 예산으로 외국인노동자를 도왔던 지원센터들도 문을 닫아 도움받을 창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관련자들은 '미등록자' 길로 빠지기 쉬운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일하고도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례는 비단 소부즈씨만의 일이 아니다”라며 “G-1 비자도 발급이 쉽진 않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놓여진 손 쉬운 선택지는 미등록자다”라고 했다.
이어 “미등록자 문제는 정부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농촌, 공장 등에는 외국인노동자 손이 필요한 곳이 많고, 산재 사고도 많은 만큼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진 기자 trus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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