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월급 200만→400만원, 정년도 없어” 기술 배우는 MZ

고병찬 2023. 2. 2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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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떠나 현장 기능직 가는 2030세대
“불안정성 있지만 경력 인정받고 워라밸 좋아
동료가 70대…건강하면 계속 일할 수 있어”
지난 2021년 10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목수로 일하고 있는 이학태(32)씨가 16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각도절단기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튜브 ‘쿠캠 COOCAM’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고병찬 기자

10㎡(3평) 남짓한 인천의 반지하 작업실 한켠엔 자격증만 10개 넘게 놓여 있었다. 오픽(OPIc, 외국어말하기평가), 관광통역자격증,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 이학태(32)씨가 여행사 취업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다 ‘지난 일’이 됐다. 이씨는 지난 2021년 10월 사무직으로 일하던 여행사에 사표를 낸 뒤 목수로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전 인천 작업실에서 만난 이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능력만큼 수입을 올리고, 여가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기능직에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20∼30세대 기능직들은 직업을 바꾼 경우가 많아요. 점점 더 많은 친구가 입문하는 만큼 앞으로 이 분야가 더 발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히 20~30 ‘엠제트’(MZ) 세대는 힘든 일을 기피한다고 하지만, 이씨처럼 ‘화이트칼라’를 버리고 기능직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등 외부 변수로 실직 불안을 경험한 이들은 ‘내 몸으로 익힌 기능’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이씨는 2017년 대학 졸업 후 줄곧 관광업계에서만 일했지만, 코로나19로 휴직이 길어지면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답은 기술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요식업계에서 일하며 ‘점장’까지 한 정승환(26)씨도 지금은 인테리어 현장에서 목공을 한다. 정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19로 매장이 어려워지자 이직을 하려 해도 경력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난해 1월부터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2021년 10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후 목수로 일하고 있는 이학태(32)씨의 작업실 한쪽에 있던 자격증들. 고병찬 기자

이들은 경력 인정, 정년 없음, 비교적 높은 임금,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기능직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사무직일 땐 월급이 200만원 중반대였는데, 지금은 최대 400만원을 번다”며 “최근 현장에서 70살 할아버지와 함께 일했다. 건강하다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라고 했다. 정씨도 “일을 시작한 지난해엔 일당이 9만~1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60∼70%정도 올랐다”며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

이는 최근 엠제트 구직자들이 원하는 일자리 조건과도 들어 맞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8~34살 구직자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청년들은 ‘일과 여가의 균형 보장’(33.2%)과 ‘임금 만족도’(22.2%)를 구직 시 우선 고려하는 사항으로 꼽았다.

기능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유튜브에는 기능직에 뛰어든 청년들이 경험한 계단 청소, 인테리어 필름 시공, 마루철거, 싱크대 설치 등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20대 여성 유튜버 ‘필름하는 정남이’가 인테리어 필름 조공(조수)에 도전하는 첫 영상은 조회수만 168만회에 이른다. 댓글엔 “도전하고 부딪히는 모습이 멋있다” “쉽게 돈 벌기 영상이 넘치는데 전문 스킬을 쌓는 청년들을 응원한다”는 반응이 많다. 정씨도 “기능직에 도전했을 때 ‘전망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능직 일자리에 장밋빛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염려, 일감이 없으면 소득 자체가 없는 불안정성은 엄연한 현실이다. 임금체불 등과 같은 노동 현장의 부조리도 여전하다. 이씨는 “먼지도 많고 위험한 요소가 현장에 많다. 사무직으로 일할 땐 출근만 하면 월급이 나왔지만, 현장에선 계속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다”며 “입문하고 얼마 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고 했다.

그래도 미래를 꿈꾼다. 정씨는 “배운 기술로 나중에 요식업 등 내 가게를 창업할 때 활용하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기능직은 쌓은 경력을 활용할 수 있기에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현장엔 기능직에 입문하는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홀로 작업을 이끌 수 있는 기술자가 된 뒤 학원을 차려 후배들을 기르고 싶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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