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와 예술투자 동시에 …'미술 멤버십' 시대
서울옥션 프리미엄 멤버십
특별강좌·아트투어·음악회…
다양한 네트워킹 행사 초대
전담직원과 프라이빗 관람
미술품 운송·설치·보수까지
구매 수수료 할인 혜택도

전 세계에 20만명이 넘는 회원을 둔 영국의 사교 클럽 '소호하우스'는 수백만 원의 연회비에도 90%가 넘는 회원 유지율을 기록하며 글로벌 상류층의 취향 공동체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해리 왕자 부부의 첫 데이트 장소로 알려진 뒤 대중적 관심이 더해지면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주요 도시에서 예술·문화 기반의 사설 멤버십 클럽이 잇달아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흐름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이 네트워킹 기반 모델을 미술 시장에 적용해 연 1500만원짜리 프리미엄 멤버십을 선보이며 고액자산가 대상 프라이빗 커뮤니티 구축에 나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옥션이 최근 개인 회원 연 1500만원, 법인 회원 연 2000만원을 받는 프리미엄 멤버십 '더 챔버(The Chamber)'를 출시했다. 서울옥션 측은 "예술 중심의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깊은 컬렉터들의 네트워킹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회원 수는 100명으로 제한된다.
가장 큰 혜택은 구매 수수료 우대다. 멤버십 회원은 오프라인 경매에서 낙찰가와 관계없이 구매 수수료를 일괄 11%로 적용받는다. 기존 구매 수수료는 부가가치세 포함 19.8%다. 연간 2억원 이상 낙찰받는 컬렉터라면 멤버십 가입이 유리하며, 고가 작품을 구매할수록 수수료 절감의 폭이 커진다. 서울옥션은 멤버십 회원에게 전담 스페셜리스트를 지원해 이른바 '밀착 케어'를 강화할 계획이다. 경매 프리뷰 기간에는 전담 직원이 동반하는 프라이빗 관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품 구매 후에 운송, 설치, 액자 제작, 보수 등 컬렉션 관리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지원하는 스페셜리스트의 일대일 서비스도 마련돼 있다.

프라이빗 커뮤니티의 기능도 강화된다. 서울옥션은 회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아티스트 토크와 아틀리에 투어, 예술·인문 특별강좌, 국내외 아트 투어, 프라이빗 음악회, 프라이빗 전시 관람 등 연 9회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내년 2월부터 본격 시작된다. 멤버십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특별 제작된 판화도 혜택에 포함된다. 멤버십 출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구체적인 문의가 들어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의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미술품 수집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려는 30·40대 '영 리치'들이다.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만의 예술적 취향을 갖추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 멤버십 서비스는 문화적 교양과 네트워크 형성의 통로에 가깝다. 인문학 강좌, 프라이빗 전시 투어 등을 통해 검증된 이너 서클에 편입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다른 한 축은 이미 꾸준히 미술품을 구매해온 컬렉터들이다. 특히 경매를 통해 연간 수억 원 규모로 작품을 낙찰받는 상위 컬렉터들은 구매 수수료 일괄 11% 우대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어차피 살 작품이라면 멤버십 가입이 이득"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서울옥션은 이번 멤버십을 단순히 작품을 중개하는 수준을 넘어, 컬렉터에게 맞춤형으로 컬렉션 구성·구매 전략·보유 관리까지 지원하는 미술품 프라이빗뱅킹(PB) 모델로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고가 미술품이 대체투자 자산으로 주목받으면서 경매회사가 고액자산가의 미술품 자산 관리 지원에 나선 것이다. 핵심 컬렉터층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금융권 PB센터가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비금융 프로그램을 강화하듯, 경매사 역시 체험형 콘텐츠로 고객 접점을 넓히는 모습이다. 은행들은 고액자산가 고객들에게 골프 행사, 와인 클래스, 자녀 맞선 행사 등 다양한 사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법인 회원에게는 아트 비즈니스 컨설팅과 임직원 강연, 기업 우수고객(VIP) 대상 기획 경매 운영 등 기업 간 거래(B2B)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법인 회원이 자사 VIP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획 행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경매 진행 등 실무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서비스는 고액자산가 컬렉터의 '록인'(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로 갈아타지 않는 현상) 효과를 노린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케이옥션은 별도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는 없지만 VIP를 상대로 일대일 예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담 직원이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고객과 동행해 조언하고, 컬렉터의 보유 작품 현황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등 컨설팅 중심의 방식이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해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경매사들은 상속과 세금 전략을 포함한 종합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크리스티는 감정, 컬렉션 관리뿐 아니라 기부·상속 계획, 세금·상속세 자문 등 종합 컨설팅을 제공한다. 소더비는 개인, 미술관, 기업 등 다양한 고객별 맞춤형 컬렉션을 개발하고 작품 감정·자문 서비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소더비는 과거 예술품 자문사인 아트 에이전시 파트너스(AAP)를 인수해 관련 기능을 강화한 바 있다. 고객들을 위한 사교 프로그램도 해외 경매사들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소더비는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등 주요 살롱에서 컬렉터 전용 만찬, 시즌 개막 기념 만찬 등을 열어 주요 고객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연다. 단순한 친목을 넘어 컬렉터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접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스 에듀케이션이 운영하는 '영 컬렉터스 클럽(Young Collectors Club)'은 강연, 작가·아트 어드바이저와 토크, 전시 투어 등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컬렉터들이 사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돕고 있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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