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들의 입담 대결…‘동네 아재’ 월즈 vs ‘힐빌리의 노래’ 밴스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밴스(공화당) 대 월즈(민주당)'의 10월1일(현지시간) 미국 부통령 후보 TV 토론 생중계 화면에는 QR코드가 하나 떠있었다. QR코드를 누르면 "부통령 토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요?"를 묻는 설문으로 연결됐다. 토론 시작 직전 '그렇다'가 7~9%, '아니다'가 88~90%를 넘나드는 실시간 응답률을 보였다. '잘 모르겠다'는 3% 남짓에 불과했다. 토론 종료 직후 해당 설문은 '그렇다'가 12%, '아니다'가 86%의 결과를 나타냈다. '잘 모르겠다'는 2%에 그쳤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부통령 후보 토론은 큰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 대체로 부통령 후보 토론은 미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00년 이후 6번의 미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지지율 변화가 있었던 적은 2000년 딱 한 번뿐이었다. 당시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 딕 체니와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 조셉 리버먼이 맞붙은 토론 이후 지지율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1.2%포인트에 그쳤다. 대선은 어쨌든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기에 미 유권자들도 부통령 후보에게는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미국 정치 여론조사 사이트 '538'에 따르면 미 유권자 5명 중 1명은 밴스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월즈에 대해서는 4분의 1의 유권자가 특별한 호불호가 없다고 답했다. 9월28일 발표된 NYT 여론조사에서도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유권자 중 10%가 밴스 후보를 잘 모르거나 특별한 호불호가 없다고 답했고, 월즈에 대해서는 16%가 큰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유권자의 98%가 해리스에 대해, 99%가 트럼프에 대해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이번 월즈와 밴스의 부통령 후보 토론은 시작하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세 차례 정도 열리는 대선후보 토론이 이번에는 9월10일 딱 한 차례로 끝났기 때문이다. 양측이 직접 맞붙어 공약과 비전을 재확인하고 진면목을 가릴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 어느 쪽도 완승을 거두지 못한 가운데 밴스가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교두보를 쌓는 정치 이벤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해리스가 문제"…둘 다 1인자 공격
지난 대선후보 토론에서는 해리스가 트럼프에 대한 공격 시간을 46% 써서 트럼프가 쓴 28%에 비해 높은 화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토론 직후 판정승 평가를 얻었다. 이번 밴스 대 월즈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상대에 대한 공격 시간으로 월즈는 22%, 밴스는 20%를 기록해 거의 동률을 기록했다. 그것도 서로 직접 상대를 공격하며 진검승부를 벌였다기보다는 각자 상대의 대통령 후보를 공격하는 데 상대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월즈는 밴스를 공격하는 데 1분21초를 썼고, 트럼프를 공격하는 데 7분58초를 썼다. 밴스는 월즈를 공격하는 데 2분43초, 해리스를 공격하는 데 5분30초를 할애했다. 각자 눈앞의 상대방보다는 서로의 '1인자'에게 화력을 쏟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이날 토론의 최대 쟁점이었던 이민 문제에 대해 밴스는 "해리스가 (이민 정책을) 시작한 뒤 펜타닐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미국으로 들어왔다"며 "우리는 출혈을 멈춰야 한다. 트럼프의 국경 정책(불법 이민자 추방)을 다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5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을) 추방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먹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월즈는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절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을 멕시코에 넘길 것이라고 공약했던 점을 언급하면서 "(그런데) 그 장벽의 2%도 건설되지 않았다"며 "트럼프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원점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월즈와 밴스 모두 서로의 대통령 후보를 엄호하거나, 상대 대통령 후보를 공격하는 화법을 선보인 것이다. 다만 밴스가 이민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미국 노동자층 이야기로 논점을 돌린 것처럼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고 지지층 맞춤형 발언으로 토론을 자신감 있게 주도한 모습이 좀 더 눈에 띄었다는 평가가 많다.
밴스는 기후 문제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하며 "중요한 것은 미국과 미국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자기 캠프의 주장을 한 번 더 펼치는 기회로 삼았다. 월즈가 이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그린에너지 투자와 일자리 증가를 예로 들며 밴스에게 논점을 벗어나지 말라고 공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혀끝은 이날 조금 무뎠다.
밴스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가능성 등 불안한 중동 정세에 대한 질문에 "우선 내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미국 중서부의 노동자 집안에서 출생해 이라크전 참전 경험을 가진 이력을 어필했다. 밴스는 "트럼프가 대통령일 때 미국이 유일하게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 달성을 주장했다. 월즈가 트럼프가 재임 중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 것을 지적하자 밴스는 "이란과 그 지지를 받는 테러 세력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건 해리스가 부통령으로 있을 때"라며 "스스로 거울을 보라"고 맞받아쳤다. 공화당 지지층들이 열광할 만한 득점 포인트가 곳곳에서 보인 토론이었다.
밴스가 우세했지만 판세 뒤집을 한 방은 없어
여러모로 월즈가 수더분한 입담을 기대만큼 선보이지 못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는 토론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바이든이 TV 토론에서 '폭망'하거나, 9월 트럼프가 판정패당한 토론만큼 기울어진 평가도 내리기 어려운 토론이었다. 다만 둘의 개인적 성향을 잘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월즈와 밴스 둘 다 경합주가 몰려 있는 중서부 지역의 흙수저 출신이지만 월즈는 '동네 아저씨', 밴스는 '야심가' 이미지를 그동안 보여왔다.
월즈는 공립 고교 사회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 출신, 밴스는 백인 노동자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로 각각 정치 스토리를 써왔다. 월즈는 알려져 있다시피 부통령 후보 낙점 과정에서도 향후 대선 출마 의사가 없고 팀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맹세했다. 반면 밴스는 정치 입문 초기의 반(反)트럼프 발언들도 뒤집고 부통령 후보가 된 뒤 이번에도 지지층 맞춤형 토론 실력을 뽐내며 트럼프 이후 강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남은 대선 판도를 결정지을 한 방이 이번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월즈와 밴스 두 사람의 향후 정치행보가 궁금해지는 토론장이기도 했다. 기회가 와도 월즈는 계속 대선 불출마 맹세를 지킬까, 밴스는 트럼프 이후 대선후보로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을까. 벌써부터 4년 후 다음 미 대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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