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 1년, 땅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보상 아니라 복직 요구하는 이유,
부당해고에 대한 자본의 사과 필요해"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고진수 세종호텔지부 지부장은 여전히 땅을 편히 딛지 못한다. 336일 동안 가로·세로 80cm 남짓한 철탑 위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지낸 탓이다. 오랜 시간 좁은 곳에 갇혀 있어 걸을 때마다 다리가 휘청인다. 그가 입은 남색 패딩은 군데군데 헤져 청 테이프로 덧댄 자국이 남아 있다. 춥고 거친 투쟁의 시간을 고스란히 입고 있는 듯했다.
땅을 딛는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다. 사측과의 교섭은 여전히 교착 상태다. 세종호텔은 코로나19 이후 명동 상권이 회복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은 끝내 거부하고 있다. 경영난을 이유로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쫓아냈던 뷔페는 외부 업체 A를 들여 다시 운영 중이다.
고진수 지부장은 투쟁 현장에 복귀한 지 4일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2월 2일, 해고 노동자들이 일하던 자리에서 A가 영업을 하자, 노조는 문제를 제기하며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식당 A는 이들을 업무 방해 및 퇴거 불응 혐의로 신고했다. 연대인들은 다음 날 석방됐지만, 고 지부장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구속을 면하자, 고 지부장은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왔다.

식당 운영 종료한다며 해고한 호텔, |
2월 2일 연행은 그동안 호텔 안팎에서 농성을 이어 온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전날, 로비에서 교섭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하고 있던 고진수 지부장과 노조원·연대인들은 1층에서 운영 중인 A가 폐쇄한 3층 연회장에서 행사를 열자, 문제를 제기했다. 호텔은 그동안 3층 연회장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해고하고 복직을 거부해 왔다. 그런데 실제로 행사가 진행되고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보이자 항의에 나선 것이었다. 행사 주최 측에도 상황을 설명하고, 노동자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한 피켓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이튿날에도 연회장은 운영됐다. 노조의 항의가 계속되자 A는 이들을 업무 방해, 퇴거 불응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병력이 몰려와 퇴거 방송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고진수 지부장은 퇴거 요청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통로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항의 시작 20여 분 만에 연행이 이뤄졌다고 했다. 고 지부장과 허지희 사무장, 공대위 구성원과 연대인 등 모두 12명이 수갑이 채워진 채 각기 다른 경찰서로 연행됐다. 그중에는 마침 그날 연대하러 온 학생들도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다 연행 장면을 보고 보고 말리던 사람도 공무 집행 방해로 체포됐다.
고 지부장은 정당한 노조 활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피의자는 2017년에도 건물 옥상에 설치된 옥외 광고탑에 올라가 현수막을 게첩하고 고공 시위를 하였던 자로, 2025년 2월 13일 호텔 앞 도로상에 설치된 10여 미터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올라가 약 11개월 동안 고공 농성을 진행"했다며 "석방 시 로비 점거와 아울러 더욱 강도 높은 업무 방해 등의 행동이 예상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나아가 "본건은 노사문제를 떠나 피의자 등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대처 또한 엄중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일반적인 시민들의 감정에 부합한다. 현시점에서 '노동행위를 빙자'한 노동 행위에 대한 피의자 등의 인식에 경종을 울릴 국가기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표현까지 포함됐다.
336일간의 고공 농성 |

고진수 지부장은 2025년 2월 13일 철탑에 올라 336일을 보냈다. 철탑 위에서 계절이 네 번 바뀌었다. 긴 기간을 버텨 왔기에 내려온다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작할 때엔 어쩌면 1년 안에 문제가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철탑에 올라서만이 아니라,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연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정리 해고 철회를 함께 외쳤던 기운을 생각하면 그랬다. 윤석열이 탄핵 이후 정권이 빠르게 바뀌는 것으로 보면서 기대도 걸었다.
"회사가 이렇게까지 완고할 일인가 싶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매년 영업이 잘 되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 해고자 복직을 통해서 호텔 등급도 회복하고 영업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이 훨씬 더 나아질 거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복직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노조 파괴, 민주 노조에 대한 혐오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고공에서의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세종호텔 투쟁은 더 널리 알려졌고, 광장에서 만난 '말벌 동지'들의 연대는 더욱 단단하고 넓어졌다. 개신교대책위는 11개월 동안 매일 아침 도시락을 올려보냈다. 고 지부장은 "건강이 크게 상하지 않았던 이유"라며 고마워했다.
"고공에 걸어 놓았던 깃발 세 개를 먼저 내렸는데, 박정혜·김형수가 들고 있는 모습이 아래에 보이니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 시기에 영상통화를 계속 나누던 것이 생각났다. 3명이서 내려가면 하자며 몇 가지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었다. 일단 거제 가서 꼼장어 먹고, 박정혜 집에 저장해 놓은 좋은 술들로 한번 같이 하이볼 만들어 먹자고 했었다.(웃음) 아직 하나도 못 하고 있다."
"올라가기 전에 봤던 동지들도 있고, 올라간 이후에 본 동지들도 있었다. 그래도 위에서 얼굴은 다 보이니까 알 수 있는데, 이름을 모르니까 그걸 맞추는 게 헷갈리더라.(웃음) 위에서 보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니 애잔하고 더욱 끈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8차 교섭까지 진행됐지만 |
그토록 느리게 흘렀던 하늘에서의 시간이었건만, 땅에서의 시간도 더디게 흐른다.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 농성을 시작하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지난해 8월 교섭이 시작됐지만, 사측은 '복직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신 사회적 책임이나 도의적 차원에서 1인당 12개월 치 급여 수준의 '위로금'과, 정리 해고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법률 비용 일부를 보전해 주겠다는 안을 제시한 상태다.
"이전 희망퇴직 당시에도 8개월 치 위로금을 주겠다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4년간 싸운 끝에 4개월을 더 얹어 준 셈이다. 우리의 요구는 보상이 아니라 복직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복직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조건이 이전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희박하다. 임금이 삭감될 수도, 기존의 직무와는 다른 전환 배치를 겪어야 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다른 곳에 가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딜 가도 지금 받는 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다. 고 지부장은 그렇기에 이 지난한 싸움을 이어 가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고 했다. 고 지부장은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과 부당한 해고에 대한 자본의 사과, 그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분노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갈 이유가 없는데 부당 해고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며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투쟁 과정에서 들여다보니 앞으로 누가 와서 일하더라도 이전에 내가 일하던 조건으로 일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냥 나가 버리면 이 구조는 완전히 공고화되고, 자본가만 더 많은 부를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특히 세종대 구성원,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다. 학교법인 분담금으로 가야 할 수익을 주명건 일가가 사유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된 농성장에도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탄핵 광장 이후,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민들의 연대가 세종호텔 농성 현장에서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세종호텔 앞에서는 개신교대책위의 화요 거리 기도회가 열렸다. 고 지부장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오는 시민들을 통해 이 싸움이 의미 있는 투쟁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고공에서 내려온 그는 다시 땅 위에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고진수 지부장은 "하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이 나쁜 조건에서 일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현장에 끊임없이 연대해 준 작은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다른 곳과는 다르게 신실하다는 말이 와 닿았다. 온 마음을 다해 연대해 주는 것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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