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가 나면 보통 사각형의 반창고나 두툼한 습윤 드레싱제를 붙이곤 한다. 그런데 화상 흉터처럼 굴곡이 심한 부위는 드레싱제가 들뜨기 일쑤다. 떼어낼 때 통증은 또 다른 고역이다. 원하는 곳에 거미줄을 쏘아 보내는 스파이더맨처럼 뿌리기만 해도 보호막을 형성해 치유를 돕는 기술이 있다면 어떨까.
첨단 재생 의료기기 스타트업 아이메디텍은 상상을 현실로 옮겼다. 휴대용 나노섬유 제조 장치인 ‘나노아이’로 환부의 형태와 상관없이 나노섬유 멤브레인을 형성하는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단순한 보호를 넘어 피부 조직과 유사한 구조로 재생까지 촉진하는 이 기술은 국내외 의료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아이메디텍의 박준규(46) 대표를 만나 상처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 개발기를 들었다.
◇병간호 경험 토대로 의료기기 개발 결심

어릴 적 박준규 대표의 꿈은 교사였다. 의료기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암 투병이었다. “오랜 기간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의사들과 환자들을 지켜봤습니다.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고통받는 날의 연속이었죠.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학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후 같은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고분자공학도 적용 범위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요. 저는 의료용 고분자를 주로 연구했습니다. 박사 과정 때는 의료기기인 스텐트 개발을 주제로 논문을 썼죠. 이후 융합 의료기기 스타트업에서 15년간 개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습니다. 고분자 소재가 어떻게 실제 의료기기로 구현돼 환자에게 전달되는지, 그 과정을 겪으면 내공을 다졌습니다.”
◇붙이고 떼는 고통 줄인 ‘뿌리는 드레싱’의 탄생

업력이 쌓일수록 좋은 기술을 의료 현장에 적용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재생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시장 상황 또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2023년 7월, 아이메디텍 법인을 설립했다.
박 대표는 기존 창상(피부가 찢기거나 떨어져 나가면서 일어나는 상해)치료 소재의 정형화된 형태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에 주목했다. “시중의 드레싱제 대부분이 사각형이라 굴곡진 상처에 밀착시키기 어렵습니다.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폐기물도 많았습니다. 치료 과정도 번거로워요. 화상을 입은 아이들의 경우, 두꺼운 드레싱제를 붙이고 떼어내는 과정 자체가 큰 고통입니다. 2차 손상의 우려도 있죠. 고통의 원인인 드레싱제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니 의료진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드레싱을 쉽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 박찬희 교수팀으로부터 나노섬유 방사 기술을 이전 받았다. “환부에 나노섬유를 분사하면 상처의 형태에 딱 맞는 보호막을 형태해주는 장치 ‘나노아이’를 개발했습니다. 나노아이의 핵심은 두 가지 기술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정밀 코팅 및 표면 제어 기술입니다. 의료기기 표면을 정교하게 제어해 피부 조직에 잘 들어 맞으면서, 안정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둘째는 휴대용 나노섬유 제조 기술입니다. 치료 현장에서 필요한 부위에 나노섬유 멤브레인을 직접 형성해 상처 보호와 재생을 빠르게 돕도록 설계됐습니다.”

나노아이는 환부의 상태와 형태에 맞춰 즉시 맞춤형 치료막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인체 조직과 유사한 3차원 구조를 가진 나노섬유는 공기는 잘 통하면서도 외부 오염은 막아주고, 진물 흡수력이 뛰어나 얇은 막만으로도 효과적인 치유 환경을 조성합니다. 일반적인 필름 소재는 피부 표면을 보호하는 기능만 있는데요. 저희는 나노섬유의 표면을 생체에 적합하게 바꿔주는 표면제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지혈, 재생 촉진 같은 치료 기능을 더할 수 있습니다.”
나노아이는 불규칙한 상처 부위나 기존 드레싱으로 완전히 대응이 어려운 환부에 특히 유용하다. “화상, 난치성 상처, 수술 후 창상 등 출혈 제어가 필요한 부위에 효과적입니다. 현장에서 즉시 적용할 수 있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요. 밀착력과 보호 기능이 뛰어나 치료 효과를 높여주죠. 환자 입장에선 치료 과정에서의 고통이 줄어들고, 의료진은 보다 편하고 정확하게 시술할 수 있습니다. 병원은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죠. 의료 현장의 수요와 산업적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솔루션입니다.”
◇드레싱을 넘어 로봇수술까지, 기술의 무대를 넓히다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아주대병원 등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과 기술검증(PoC)을 진행했다. ‘기존 드레싱보다 잘 달라붙어서 드레싱의 기능을 더 잘한다’는 등 호평을 받았다. 아쉬운 점이나 적용 범위에 대한 의견은 제품 고도화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현장 의견을 토대로 기술 적용 범위를 피부 유착, 연골 재생, 지혈제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하버드 의대 연구팀과 협력해 로봇 수술 기구에 나노섬유 기술을 접목하는 공동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로봇 팔 끝에서 나노섬유를 뿌려 수술 부위의 조직 재생을 돕는 최첨단 방식이죠. 또한, 나노섬유가 약물 전달체 역할도 하기 때문에 암세포에 직접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외상뿐만 아니라 암 같은 질병 치료제로도 활용 가능하죠.”
스타트업의 과제인 생존과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인허가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증 질환용 의료기기를 연구하는 동시에, 시장 진입이 비교적 빠른 화장품이나 동물용 의료기기, 1~2등급 가벼운 의료기기를 먼저 출시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기업, 병원, 산업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을 직접 하지만 응용 분야에 따라 공동개발, CDMO, 기술이전 등으로 확장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죠.”
◇맞춤형 재생의료의 표준을 꿈꾸다

아이메디텍의 가치는 이미 시장에서 증명되고 있다. 의료기기 제조업 허가와 GMP(품질관리 기준) 인증을 획득했고 14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2025년 메디테크 이노베이션 어워즈(MEDITEK Innovation Awards)에서 혁신상을 받는 등 기술력도 공인받았다.
벤처 생태계의 관심도 한몸에 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TIPS) 프로그램, 신용보증기금의 ‘퍼스트펭귄’ 등에 연이어 선정됐고 누적 7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1월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6기’ 기업으로 선정됐다. 디캠프 멘토링을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 지사를 거점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본격 두드릴 계획이다. “세계 각국의 글로벌 박람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입지를 다지는 중입니다. 당면한 과제는 휴대용 나노방사 장치와 치료제의 의료기기 인허가를 무사히 통과해 병원에 정식으로 출시하는 겁니다. 이를 시작으로 지혈제, 생체접착제 등 다양한 분야로 마법의 나노섬유 기술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2030년에 연매출 2000억원을 달성하고, 지혈 분야 첨단 의료기기의 선두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좋은 기술은 논문에 소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와 의료 현장에 닿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노섬유와 표면제어 기술을 다양한 치료 영역에 적용해 의료 현장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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