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가 아니라, 서른 채 값이었습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CF퀸 정소녀.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단아한 외모와 깨끗한 이미지로 제과, 커피, 화장품 등 수많은 브랜드 광고를 섭렵하며 대한민국 광고계를 평정했습니다.

광고계뿐만 아니라 드라마마다 흥행을 터뜨리며 ‘흥행 보증 수표’라 불리던 그는, 출연료마저 한국 방송 역사에 남을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연예인들이 광고 한 편에 10만20만 원을 받을 때, 정소녀는 무려 23천만 원의 출연료를 받았고, 이 기록은 한국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당시 여의도의 40평 아파트가 1,400만 원이던 시절, 그는 광고 하나로 집 서른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돈으로 빌딩도 여러 채 구입했다고 고백했지만, 화려한 전성기 뒤에는 아쉬운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투자 관리를 하다가 큰 손실을 입었고, 지금은 그 모든 부동산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고백. 전성기 이후 연예계를 떠나 결혼한 그는 한때 보험설계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평범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그래도 인생에서 수십억을 만져본 경험은 아무나 못 하죠”, “결국 투자가 문제네”, “지금이라면 수백억 재산가였을 텐데”라며 아쉬움과 존경을 동시에 전하고 있습니다.

광고 하나로 기네스북에 오르고, 집을 수십 채 살 만큼 벌었던 여자. 정소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였고, 그 인생의 굴곡조차도 하나의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