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가 57년 된 단독주택에서 겪은 일! 정말 대박이네요..
"1963년 9월, 왕십리에 연면적 12평의 작은 2층 단독주택이 지어졌다. 블록 벽을 쌓고 통나무 보를 걸어 골조를 세우며 오복을 기원하는 상량 문을 걸었던 이 집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57살이 되던 2021년, 공간에 욕심이 많은 젊은 부부를 주인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12평 단독주택에서 2년 째 살고 있는 일곱글자부부입니다. 이전 집들이와 다르게 그동안 이 곳에서 살면서 생긴 크고 작은 변화와 그 동안의 생긴 삶의 노하우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볼까 해요. 아 참, 그 사이 저희 집에도 이름이 생겼어요. 거창한 의미보다는 지금 모습 그대로, 2층의 넓은 공간과 1층의 굴처럼 아늑함, 그리고 그것들의 재료 콘크리트를 합쳤어요.
빌;공空 + 굴;굴窟 혹은 공구리 Concrete 그래서 공.굴.
공굴 집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였어요. 어느 정도의 낭만과 적극성만 있다면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끊임없는 자아 실현의 기회가 찾아와요.
지난 여름에는 빗물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지붕 빗물받이도 직접 설치하고, 지지난 연말에는 2층에 매트리스를 올려 정원 바로 옆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시간들이 묻어난 집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1. 건물 입구
화단 만들기
집 앞의 화분은 나름 커다란 화분이고, 남천도 어디서든 잘 자라는 식물이라 생각했지만, 이 생각은 몬스테라 마저 저세상 보내버리는 지옥의 똥손들이 하면 안되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똥손들이 내린 결론은 명쾌했습니다.
‘우리는 발전할 수 없으니 환경을 발전시키자!’
새로운 화단 만드는 과정
식물에 애정을 쏟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 않고 ‘응 화분이 작아서 문제야, 화단을 만들면 넓은 환경에서 알아서 잘 자랄거야.’ 라며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첫 날, 건재상에 미리 주문한 벽돌, 레미탈, 부직포를 집 앞에 쌓아 놓고 무작정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말만 건축쟁이에 현장에서 지시만 해본 남편과 출신만 미대생이지 컴퓨터로만 작업해온 디자이너 아내는 서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건설공화국 대한민국, 인구 대부분이 건설업 경험이 있는 이 사회에는 귀인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왕좌왕하던 젊은 부부를 안타까이 여기신 앞집 귀인(건설업 ‘현장’ 종사 10년)께서 지나가시다 말고 발걸음을 돌려 미장과 조적의 개론부터 실무와 시범까지 가닥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한 번 밖에 못 뵙고 존함조차 여쭈지 못했지만, 그분의 따듯함이 아직 저희 화단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아무튼 귀인의 덕으로 화단 만들기에 성공하고, 이튿날 이 드넓은 화단에 심을 식물을 사러 양재 꽃시장으로 향했습니다.그렇게 꽃시장을 돌고 돌아 결국 선택한 것은 또 남천이었습니다.
남천은 그래도 똥손들 입장에서는 기르기 편하고 노지월동까지 되는 식물이 남천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흙까지 좋은 배양토로 트렁크 꽉꽉 채워 돌아와 남천을 묻는 아니 심는 작업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러고 두어달 뒤 뉴-남천이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을 확인한 우리 부부는 남천에게 친구를 만들어줄 생각을 합니다. 친구를 찾을 새로운 FA시장을 물색하던 차 서초구의 남쪽 끝 ‘대0원예종묘’ 라는 곳을 알게 되었는데, 이곳은 먼 훗날 연예인 박나래님에 의해 아주 크게 흥행하게 됩니다.
실력은 아니어도 실행력 만큼은 알아주는 우리 부부는 바로 그곳으로 차를 몰았고, 그곳의 규모와 시스템에 아주 환호했습니다.
어느새 월동준비를 해야 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일전에 사온 자그마한 친구들은 죽은 건 아닌데 이게 제대로 자라는 게 맞는지 모르는 모습이긴 했지만, 뉴-남천만은 건재했습니다. 이 친구의 노지월동을 돕고자 짚단을 사러 지난번에 방문하였던 ‘대0원예종묘’로 향했습니다.
짚단으로 감싸준 현재 화단의 모습입니다.
2. 현관(계단)
복층 단독주택에 산다고 하면, 가장 많이 걱정 해주시는게 '계단' 이었어요. 안전이나 불편함부터 시작해서 공간의 활용성까지, 계단은 단점으로만 가득할거 같았죠.
하지만 2층 집에 살면서 계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있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어요. 처음엔 저희도 계단이란 주택에서 장점이 하나도 없는 공간이 아닐까 했지만, 2년 간 살아오면서 오히려 장점인 순간들도 있었어요.
특히 구도심 특성상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채광이 어렵지만, 2층으로 들어오는 빛을 1층까지 스며들게 할 수 있는 점은 오히려 공굴집의 지리적 단점을 공간적 활용으로 해결하게 된 경우였어요.
공간의 활용에 있어서도 계단으로 인해 생기는 죽은 공간들을 창고로 활용하면서 그 단점을 극복했어요. 계단 아래에는 공구나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은 창고로, 계단 옆 공간은 보일러실 겸 큰 짐을 넣어두는 창고로 활용하다보니 협소주택에서의 계단 공간의 활용안이 보이더라구요.
3. 2층 거실
2년 동안 단독 주택에서 살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단점은 역시 '단열'이었습니다. 아무리 단열을 잘 해도 단독 주택은 지면까지 포함해서 6면이 모두 외부와 닿아 있는 형태입니다. 많으면 3면, 보통 2면만 외부와 닿아있는 아파트와는 그 결과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단적으로 저희 집 1층만 해도 2층과 다르게 양 옆집에 닿아있는데, 그 효과인지 확실히 외부 온도에 영향을 덜 받습니다. 나름 단열과 창호에 신경을 써서 외풍을 완전이 차단했지만, 외풍이 아닌 기온 자체의 변화를 100% 막는 것은 어려운 듯 합니다. 이 점은 다음(이 있다면!)집에 꼭 신경 쓸 예정입니다.
오디오장 mk2
건축이라는 나름의 문화(?)산업에 종사자 입장에서, 저는 음악을 매우 질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음악에 뛰어난 사람들,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동경하고 질투합니다.
어쩔 수 없이 자본의 때가 묻어나고 줄 수 있는 감동의 종류가 제한적인 건축에 비하면, 음악은 매우 쉽게 대중에게 접근해서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종류의 감동을 영혼 깊이 때려박기 때문입니다.
종종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최저 시급만이라도 벌 수 있었다면 나는 음악의 길을 갔을거야.’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불행이고 음악계에는 매우 다행히도, 저는 지독한 음치에 박치입니다. 한국 음악계는 바흐 혹은 비틀즈를 잃은 셈이지만요.
나의 음악에 대한 어긋난 사랑은 음악을 발산하는 것에서 수렴하는 것으로 그 방향을 틀은 듯 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JBL L46 스피커와 Pro-Ject Debut2 턴테이블에서 시작한 오디오 구성은 결혼하여 본가에서 분가를 한뒤 그 구성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디오 확장의 발단은 데이빗 보위의 별세였습니다. 음습한 필자의 성향답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두 번째 인생영화(첫번째는 ‘트루먼 쇼’)로 삼고 그 OST의 LP음반을 물색하고 있었지만, 데이빗 보위의 별세로 LP값이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LP를 포기하고 CD를 구매하려 했지만, CD플레이어가 없는 오디오 구성이었기에, 별도의 플레이어를 추가 구매해야 했고, 결국 CD와 CD플레이어를 놓을 곳이 필요해 지면서 새로운 오디오 장이 필요해지는 말도 안 되는 나비-보위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지금은 LP로 구하기 힘든 음악을 CD로 구매하면서 지출만 늘어났습니다.
오디오장 mk2를 만들면서 중점을 둔 것은 ‘내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 이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 뿐만 아니라 오디오 전원을 키고, 앨범을 꺼내고, 바이닐을 턴에 걸고, 바늘을 내리고, 앨범 커버를 보며 음악을 같이 듣는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스피커와 소스기기들을 하나의 장에 묶어 넣었고, 스피커의 진동이 소스기기에 전달되지 않도록 곳곳에 고무패드를 배치했습니다.
앨범장의 문은 앨범 커버를 놓기 위해 손잡이를 대신할 구멍과 얇은 선반만이 놓였습니다. 각종 케이블과 전선들도 정리되어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아내님께서도 흡족해 하시며 오디오에 대해 터치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이따금 같이 음반을 사러 데이트를 나서 주시기도 합니다.
4. 2층 주방
거실과 주방을 하나로 하면서 환기를 위해 맞창을 두자 라고 계획했었지만, 그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떠한 요리를 해도 창문만 열어두면 금방 모든 냄새가 빠져버립니다. 부엌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맞창을 통한 환기를 꼭 계획하면 좋습니다.
저희 주방에서 딱하나 아쉬운 건 싱크대 입니다. 처음부터 상부장을 없애 주방을 쾌적하게 사용하는 것을 계획했고, 그릇이나 집기들 또한 그에 맞춰 사용하고 있지만, 단 하나 놓친 것은 설거지 할 때의 불편함 입니다.
그릇이나 집기를 씻고 두는 그물 바구니를 위에 놓기 싫어 싱크대 안에 두면 아무리 넒은 싱크대여도 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 집(?!)에서는 꼭 이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상부장 없는 이 쾌적함을 포기할 수도 없을 듯 합니다.
5. 2층 정원
2년 전의 저희 집들이를 보신 분은 아까부터 알아 차리셨겠지만... 저희 정원에 있던 산딸나무가 사라졌, 아니 이사 갔습니다. 똥손인 저희가 죽인 것은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점점 시들해 지기도 하고 협소 주택에서의 하중이나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검토한 결과, 저희에게는 과분한 듯 하여 저희 시골 집으로... 옮겨 심게 되었습니다.
좋게 생각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팝업스토어 같이 저희 정원 공간을 운용하며 저희 일곱글자부부만의 아이덴티티를 시즌별로 표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라고 생각하면 이런 고물가 저성장 시대의 사치가 되겠죠.. ㅎㅎ
일단은 당분간 저렇게 하얀 공간인 채로 두고 고민해보려 합니다. 데크를 깔아서 이따금 나가 바람을 맞을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공간 그 자체로 감각과 채광을 실내로 끌어오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희 정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듯 합니다.
6. 1층 침실
물욕이나 수집욕이 강한 편은 아니라고 스스로 자만했음을, 지난 2년을 통해 배웠습니다. 저는 책을 잘 사고 잘 못 버립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 버리긴 했는데,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명작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공굴집의 유일한 책장인 침대 밑 장의 용량을 초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책장을 만들던 사던 그 필요함을 아내님께 강하게 어필했지만, AI보다 차가운 마음을 가진 통수권자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그마한 매거진랙 정도로 타협을 봤지만, 이번에는 정작 제가 맘에 드는 가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미드센츄리 풍의 가구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드센츄리-매거진랙을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디오장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설계와 조립만 제가 하고, 자재의 가공은 CNC공장에 의뢰했습니다.
마치며
부부의 대화
친구들과 거나하게 취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이런 질문이 종종 화두로 올라옵니다. ‘그래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하고 싶은 게 뭐야?’ 그러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원하던 차를 갖고 싶다거나, 가정을 꾸려 안정감을 찾고 싶다거나 하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뭘 할 건데?’
무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묻는 이유는 보통 그 꿈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부정확해서입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정말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분명히 그 많은 돈으로 이루고 싶은 뭔가가 있겠지만, 슬프게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럴 여유도 없는 게, 지금 우리입니다.
사실 이렇게 건방지게 말하고 있는 저도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투자에 관심 많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막연하게 투자하지 말고, 내가 갖고 싶은 대상을 명확히 한 다음에 그 목표에 맞춰 투자해봐. 그리고 나 오늘 저녁에 항정살 먹고 싶으니까 항정살 사줘.’
만약 저녁에 항정살을 먹게 되면, 저는 평생 돈을 열심히 벌어서 산해진미를 찾다가 이 시대의 소울 푸드인 항정살을 찾게 된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내 목적을 달성하는 거죠. 가고 싶은 목적지를 정확히 안다면, 그곳에 가기 위해 지금부터 돈을 모아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지금 바로 걸어가는 게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항정살은 굽자마자 후루룩 마셔버리기 때문에 사진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점심/저녁 메뉴는 바로 결정할 수 있을 수준까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라고. 모든 것은 시작이라는게 있는 법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나’ 자신으로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나’ 자신을 사랑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죠.
그리고 이 과정에 편히 다가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입니다. 2023년의 모서리에서도 우리 부부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57년 된 12평 단독주택’에서 격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