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자격증 없어도 누구나 창업… 고객의 개인정보 악용도

류원혜 기자 2024. 10. 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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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타인의 과거=돈' 디지털 장의사의 세계④ 국가 공인 자격증 요구 목소리 커
[편집자주] 온라인 세상에서 '잊힐 권리'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종을 만들어냈다. 디지털 장의사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긴 온라인상 흔적을 지워주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일한다.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삭제에서부터 범죄 등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들이 핵심 고객이 됐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이미지투데이
늘어가는 디지털 장의사 수만큼이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국내에서는 국가 공인 자격증 부재로 진입 장벽이 낮아 신뢰하기 어려운 업자들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고객이 삭제 의뢰한 영상을 악용하는 등 사례가 발생하면서 전문가들은 엄격한 자격 심사 제도를 도입해 직업 신뢰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유망 직업'…민간자격증도 필수 요건 아냐
디지털 장의사는 통신판매업자로 신고하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비싼 장비를 마련하거나 공간을 임대할 필요가 없어 1인 창업을 하기에 알맞고 나이와 성별, 경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개인 정보 유출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디지털 장의사는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5년 내 부상할 새로운 직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평생교육진흥협회가 주관하는 민간자격증까지 등장하며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꼭 민간자격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자격기본법에 따르면 민간자격증은 국가직무 능력표준에 적합한 검정기준과 검정과목에 대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일정한 수준과 내용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격을 주는 제도다. 디지털 장의사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은 없다.
'삭제 의뢰' 성범죄물·개인정보 유출…"모두 처벌 대상"
별다른 자격 없이 디지털 장의사가 될 수 있다 보니 부작용도 있다. 실제 디지털 장의사가 음란물 사이트와 결탁해 유통을 방조하거나 삭제 의뢰를 받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악용한 사례가 있었다.

2018년에는 디지털 장의사 A씨(40대)가 불법 촬영물 삭제 업무를 독점하게 해달라며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에게 6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운영자는 피해자들이 삭제를 요청하면 A씨를 소개해줬고, A씨는 돈을 받은 뒤에야 불법 촬영물을 삭제해준 것이다.

배향미 변호사(법무법인 신원)는 "디지털 장의사가 고객의 성범죄물을 무단 유포할 경우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이라면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며 "삭제 의뢰를 받은 영상 유통을 방조했다면 방조범으로 처벌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배반하고 개인정보를 악용, 성 착취 영상을 유포하거나 유포를 방임한 경우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국가공인 자격증 필요…법적 처벌도 강화돼야"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부 디지털 장의사들이 고객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면허제나 등록제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 변호사는 "디지털 장의사는 업무 특성상 범죄 유혹이 크다. 하지만 개인 양심에만 맡겨야 한다"며 "범죄로 나아가면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전부다. 디지털 장례업체의 운영 조건을 강화하거나 국가공인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공인 자격증을 운영할 경우 성범죄 전력 등이 있으면 자격 취득을 제한하고, 취득 이후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자격을 취소하거나 정지시키면 된다"며 "정기적으로 윤리 교육을 받도록 해 운영 과정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엄격한 조건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공인 자격증 제도만으로는 문제를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 변호사는 "위법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 강화도 필요하다"며 "수사기관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보, 관련 법령 정비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도 "디지털 장의사 민간자격증이 있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공인 자격증이 생긴다면 지금보다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중요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격 심사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현재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공인 자격증을 가진 디지털 장의사의 불법 행위가 발생할 경우 쉽게 추적할 수 있겠지만, 이와 함께 법 집행 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기술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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