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파병은 체제 존립 몸부림… ‘김정은 돈줄’ 위해 러시아 전쟁 지원[Deep Read]
파병 최대 동인은 경제난… 북·러조약 따른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 자동 개입이 안보 위협
분단국이자 통상국가 한국, 평화와 시장이 필수… 한미동맹 근간으로 對중·러 외교지평 넓혀야
최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된 소식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북·러 밀착은 전통적인 북·중 우호 관계 및 북의 핵·미사일 전력과 함께 한국 대외·안보정책의 위협 요인들이다. 보다 분명한 정보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단계별·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확인된 파병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이하 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에 최소 3000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병력이 러시아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했다. 미 정부가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1일 “조사 중이다” “조만간 미국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지 이틀 만이다.
이는 우리 국가정보원의 분석과 일치한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비공개 긴급간담회에서 북한이 지난 8∼13일 1차로 1500명을 수송한 이후 1500여 명을 추가로 파병해 현재까지 러시아에 병력 3000여 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역시 같은 날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증거를 동맹국들이 확인했다”며 “동맹국들과 이 문제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북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
당초 북한의 러시아 파병론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17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의 ‘승리계획’을 설명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호소하면서 “북한군 인력이 러시아를 위해 참전하고 있다”고 언급한 데서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1주일 사이 북한군 파병론에 기민하게 대응했다. 젤렌스키의 최초 발언이 보도된 다음 날인 18일 긴급안보회의를 열어 북한군 파병을 서둘러 공식화했다. 대통령실은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그동안 젤렌스키의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 “터무니없다” 등으로 강하게 반격하면서 파병 사실을 극구 부인했는데, 전쟁 당사국이 아닌 미국과 나토 등의 공식 확인으로 주장의 설득력을 잃게 됐다.
◇북한의 계산
북한은 러시아의 우방국 중 유일하게 무기와 병력을 모두 지원한 케이스가 됐다. 김정은은 미·중 갈등과 미·러 대립이 동시에 진행되는 신냉전 구도를 체제 존립의 활로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의 파병은 체제 존립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에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고, 북·중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상황에서 북·러 밀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은은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릴 가능성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러시아 전쟁 지원·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등을 동시에 노릴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러 밀착을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인 것으로 보인다. 점증하는 에너지·식량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이 이런 형국을 부채질 중이다.
북·중 관계에 밝은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사이버 범죄를 일삼던 중국 내 북한 정보기술(IT) 인력들이 중국 당국의 강력한 압박에 따라 대규모로 러시아로 이동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돈줄’을 막은 건데, 이런 상황도 북으로 하여금 러시아와 밀착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젤렌스키도 22일 북한군 파병 움직임에 대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한이 목숨을 건 파병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청구서를 들이밀 경우 거절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북한군 파병 대가는 1인당 월 2000달러(약 276만 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1만 명이 파병된다면 한 달에 약 2000만 달러(약 276억 원), 연간 3300억 원 이상이 북한에 흘러들어 간다는 의미다. 국정원 1차장 출신이며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국정원이 추정한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의도와 관련해 “경제난 돌파구 마련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북한은 파병 대가로 또 다른 경제적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협받는 안보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의도는 경제난 이 외에도 △북·러 군사동맹 강화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 △군 현대화 가속화 필요성 등을 들 수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특히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의 파병 대가로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과 장비가 북으로 넘어가는 것, 둘째 북·러 조약 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자동 개입이 일어나는 것. 국회 정보위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근 새로 북·러 조약 을 체결한 후부터 파병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안보회의 서기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미 파병 절차 논의를 개시했다는 뜻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북한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것이 이번 북한군 러시아 파병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제 북한은 전통적 동맹인 중국이라는 뒷배, 전쟁 지원으로 돈독해진 러시아와의 밀착, 그리고 자체 핵·미사일 전력을 갖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면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북한군의 전투 현장 배치를 통한 실제 참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커비 보좌관은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임할지 아직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히 매우 우려되는 가능성”이라며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싸우는 데 배치된다면 그들은 정당한 사냥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반대급부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참전과 관련해서는 아직 사실관계가 완전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외교·안보정책은 ‘선험적 판단’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확실한 정보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하고 이에 기초해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대외정책의 기본
한국은 분단국가이자 통상국가이다. 평화와 시장이 필수적인 나라다. 정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단계적 대응과 단계적 조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이후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외교·안보·대외정책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잘 관리한다는 묵계를 지켜왔다. 북한의 의도를 경계하고 대비하면서 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넓혀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플라자 프로젝트 이사장
■ 용어설명
‘하노이 노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트럼프·김정은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을 말함. 미국과 북한이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며 ‘노 딜’을 선언한 것.
‘북·러 조약’은 2024년 6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유사시 군사적 수단을 포함해 지체 없이 상대에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4조가 핵심.
■ 세줄 요약
확인된 파병 : 미 백악관과 국방장관이 잇달아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 미 정부가 북의 파병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는 우리 국정원 분석과 일치.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 파병론에 기민하게 대응해옴.
북한의 계산 : 북의 러시아 파병은 체제 존립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됨. 북·러 밀착을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 북한이 목숨을 건 파병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청구서를 들이밀 경우 러시아는 거절하기 힘들 것.
위협받는 안보 : 북의 파병은 북·러 새 조약에 따른 것으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자동 개입 가능성을 말함. 분단국이자 통상국가인 한국에 평화와 시장은 필수. 한·미동맹 근간으로 對중·러 외교 지평 넓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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