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무시당하던 선수가 4,700억짜리 투수가 된 비결" 야마모토 요시노부 이야기

178cm.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키다. 오타니 쇼헤이(193cm), 다르빗슈 유(196cm)와 비교하면 확연히 작은 체격이다. MLB 진출 당시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꺼낸 의문도 "저 체구로 빅리그에서 통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야마모토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투수에게 주어진 계약 중 가장 큰 금액인 12년 3억 2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700억원짜리 선수다.

장래 희망이 샐러리맨이었던 소년

1998년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글러브를 잡았다. 하지만 팀 사정에 따라 이 포지션 저 포지션을 전전하는 평범한 선수였고, 본인 스스로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란에 적은 직업이 샐러리맨이었다. 중학교에서도 투수가 부족해서 임시방편으로 마운드에 오른 정도였다.

전환점은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찾아왔다. 프로 스카우터들이 다른 선수를 보러 온 경기에서 야마모토가 크게 무너졌는데, 그 스카우터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그 말이 당시 어린 야마모토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날 이후 그는 단순히 열심히 하는 소년에서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훈련하는 선수로 달라졌다. 135km에 머물던 구속이 어느새 151km를 넘어섰고, 지역 대회 결승에서 노히트 노런까지 달성하며 큐슈 최고의 유망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인정 안 해준 훈련법

프로에 들어간 뒤에도 야마모토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팔꿈치 부담을 느끼던 그는 트레이너로부터 창던지기 투구법을 추천받았다. 공을 던질 때 릴리즈 포인트를 뒤로 가져가 등·복부·발을 딛는 힘까지 온몸을 연결해 던지는 방식이었다.

구단과 전문가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기존 야구 이론과 너무 달랐고, 부상 위험이 크다는 이유였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말려달라는 연락이 올 정도였다.

야마모토는 굽히지 않았다. 일반적인 웨이트 훈련 대신 브릿지 훈련으로 어깨와 흉곽의 유연성을 끌어올리고, 물구나무서기와 다양한 맨몸 운동으로 근육이 늘어난 상태에서 힘을 내는 방법을 익혔다.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 따로 연습하는 독특한 방식도 반복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훈련법을 혼자서 밀어붙인 결과는 결국 숫자로 증명됐다. 2021년 오릭스에서 투수 4관왕과 사와무라상, MVP를 동시에 석권했고 이듬해에도 같은 타이틀을 다시 가져갔다. 2023년까지 3년 연속 사와무라상과 MVP, 3년 연속 투수 4관왕이라는 NPB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최악의 데뷔, 그리고 월드시리즈 MVP

2023년 오릭스에서 이룰 것이 없어진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MLB 데뷔전은 최악이었다. 2024년 서울 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1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며 다저스 창단 140년 역사상 가장 처참한 데뷔전을 치른 선발 투수로 기록됐다.

체구가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시선이 쏟아졌고 적응 실패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데뷔전을 딛고 시즌 ERA 3.00을 기록하며 자기 페이스를 찾아갔고, 적응을 마친 2025년에는 30경기 12승8패 ERA 2.49로 진짜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더 강했다. 월드시리즈에서 토론토를 상대로 3승 무패 ERA 1.02를 기록하며 아시아 출신 투수 최초로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다저스의 2연패를 이끌었다.

2026년 현재 야마모토는 3승3패 ERA 3.60, 50이닝 48탈삼진으로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장래 희망이 샐러리맨이었던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투수가 되기까지, 그 여정에 타고난 재능보다 남들이 쉴 때도 야구공을 놓지 않았던 집요함과 아무도 인정 안 해준 훈련법을 혼자 밀어붙인 고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