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째 그대로인 유족 "내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최용락 기자 2024. 10. 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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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00일, 고 강순복 씨 유족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1일로 딱 100일을 맞이했다. 그 사이 검찰은 이 재해에 대해 사측이 납품 지연 해소를 위해 무리하게 공정을 가동하고, 안전 교육 없이 미숙련 노동자를 투입하고, 다수의 사고 징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일어난 "최악의 참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24일에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박 대표와 그가 이끄는 아리셀, 에스코넥(아리셀 모회사)은 유족들에게 지금껏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 배·보상 등을 위한 교섭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유족들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전날도 유족들은 경기 광주에 있는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규탄행동을 진행하고, 이어 화성시청 분향소 앞에서 시민추모제를 열었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고(故) 강순복 씨의 배우자 김현식 씨(가명)도 그런 유족 중 한 명이다.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달 30일, 그에게 지난 100일의 기억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를 들었다.

"맨날 사죄하고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프레시안 : 아리셀 참사가 일어나고 100일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현식(가명) : 매일매일이 우리한테는 지옥이죠. 뭐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프레시안 :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김현식 : 우리 일상이라고 해봐야 사실 휴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고, 추석도 없고 계속 싸우러 다니고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 전에도 추석도 보내고, 가족도 친구도 만나고 그랬겠지만, 저는 이번 추석에도 아무도 안
만나고 친척들도 안 만나고 혼자 있었어요.

프레시안 : 싸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김현식 : 회사인 에스코넥(아리셀 모회사)에 갔을 때요.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항상 우리를 맞아주는 건 굳게 닫힌 문이에요. 우리가 갈 때마다 문을 닫아 걸어요. 그걸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박순관은, 에스코넥 경영진은 우리와 대화할 마음이 없구나' 그걸 느껴요.

프레시안 : 답답하셨겠어요.

김현식 : 답답하고 분하고 그렇죠. 박순관이나 에스코넥 경영진들이나, 사실 이 사람들이 맨날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아예 대화를 안 하겠다'고 하고 사죄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분노할 수밖에 없어요.

프레시안 : 다른 유족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아요.

김현식 : 어느 유족 분이 그러더라고요.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우리 자식 살려내라고. 아 진짜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유족들 마음이야 다 그렇죠.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사람만 살려내면 그거면 되는데, 그건 우리 희망이고, 바람이고, 될 수가 없는 일이죠….

▲ 지난달 1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열린 '아리셀 공장 화재 희생자 49재'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아리셀 대표, 23명이 숨졌는데 당장 구속했어야"

프레시안 : 지난달 23일 납품 지연을 해소하려 무리하게 공정을 가동하고 미숙련공을 투입한 것이 아리셀 참사의 원인이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왔고, 하루 뒤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구속됐습니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김현식 :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23명이 숨졌는데 당장 구속했어야죠. 왜 몇 달이 지나서야 구속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죽은 건 이미 사실이었잖아요. 구속된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시안 : 사측은 박 대표 구속 뒤에도 유족들에게 사과하거나 교섭에 나오려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김현식 : 네. 처음이나 지금이나 계속 그래요. 우리가 회사 찾아갔을 때 문을 닫아 걸었다 그랬잖아요. 에스코넥 경영진이나 그 사람들은 협상할 생각, 미안하다는 생각, 이런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김현식 : 분하고 원통하죠. 잘못을 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숨지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루에 10번, 100번이라도 그래야 정상적인 사람 아닌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짜로 미안하다는 사죄 한 번이 없어요. 이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양심도 염치도 없어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같아요.

프레시안 :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에 물품을 발주한 삼성과 국방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응이 있나요?

김현식 :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물품을 발주했으면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도 있는 거잖아요. 세계 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이 그에 대해 지금껏 말 한 마디 없는 것을 보면서 많은 실망감을 느껴요. 국방부도 마찬가지예요. 사고 전에 배터리가 불량이라는 것도 확인했고, (군 내에서 리튬 1차전지 폭발) 사고가 여러 번 났잖아요. 그러면 유족들에게 '관리를 소홀히 해서 미안하다' 한 마디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 한 마디라도 듣고 싶은데….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하는 데 대해 참 실망감을 느꼈어요.

▲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 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셀의 군납 배터리가 지난 5년간 3차례 폭발했다며 국방부의 허술한 공급망 관리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프레시안 : 여전히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현식 : 여전히 장례식장에 그대로 있어요. 저도 빨리 보내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냥 보내기는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어요.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회사와) 합의도 되고 해야 장례를 치르겠죠.

프레시안 : 지금 유족들이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김현식 : 유족들의 바람이야 별 거 있겠어요. 진심 어린 사과와 합리적인 배·보상, 또 관계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재발방지대책도 빨리 세우고 관리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그런 것들 뿐이에요. 이제는 사과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회사가 하는 걸 보면 사과 같은 걸 할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사과를 바라지만, 모르겠어요.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현식 : 희망버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많은 시민들이 연대해주세요. 어떤 때는 지나가던 시민 분이 힘내라고 음료수도 사주시고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아 세상에는 그래도 착한 사람이 참 많다' 생각하게 돼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요. 세월호 참사나 오송 지하도 참사나 이태원 참사나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았어요. 저한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고, 그저 남 일 같이 생각했어요. 이렇게 사고가 나고 보니까 저도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너무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시민분들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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