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월세' 시대, 화장실에 세입자 들인 남자

▲ 영화 <세입자> ⓒ (주)인디스토리

[영화 알려줌] <세입자> (The Tenants, 2024)

지독한 공기질과 살인적인 물가로 대변되는 디스토피아적 서울을 배경으로, 화장실에 세입자를 들이는 '월월세'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세입자>가 관객들을 찾아왔다.

<호텔 레이크>(2020년)를 연출한 윤은경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세입자>는 34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장편감독상과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첫 장편 후반작업을 하던 시기에 돌연 내 자신이 시스템 속에 갇혀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라고 윤은경 감독은 <세입자>의 시작을 이렇게 회상한다.

장은호 작가의 단편소설 '천장세'를 원작으로 한 <세입자>는 감독 자신의 경험과 현시대의 주거 문제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했다.

윤은경 감독은 "원작에서도 사회적인 요소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사회상에 맞춰 블랙코미디와 호러 스릴러적 요소를 뒤섞어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특히 "사회의 학대적인 공기가 개인의 정신적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지점을 좀 더 잘 전달하고 싶었다"라는 윤 감독의 말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 '신동'(김대건)은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퇴거 요청을 받게 된다.

궁지에 몰린 그는 자신의 화장실에 또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월월세'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신혼부부(허동원, 박소현)는 '신동'의 일상을 뒤흔드는 불안과 공포의 존재가 된다.

윤은경 감독은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블랙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의 흑백 톤이다.

"시나리오 각색부터 왠지 모노톤이 어울릴 거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흑백 전환은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한층 강화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동'을 맡은 김대건은 "흑백으로 완성된 것을 알고 극장에서 봤는데, 감독님께서 또 스크리너를 따로 보내주셔서 컬러 버전도 봤었다"라며, "두 가지 버전 다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어떤 걸 고르기가 너무 힘드실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는 흑백이라는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결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적당히 노후화된 서울 시내의 익숙한 구역을 무대로 삼아 이미 도래한 디스토피아를 표현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1985년)을 연상시키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도시 풍경으로 구현된다.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때 그동안 봤었던 대본 중에 가장 빨리 몰입이 됐고, 또 가장 빨리 읽게 됐었다"는 김대건은 "실제로 월월세랑 천장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있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연기한 '신동'은 "캐릭터, 능력치 모두 평범한 인물"로, "단순히 잘 먹고 잘살고 싶다는 평범한 생각을 하며 사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청년을 대변한다.

이러한 섬세한 연기는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현장에서의 작업에 대해 김대건은 "감독님이 '김대건 사용법'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가장 자주 들었던 디렉션은 나약한 모습이 조금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는 자칫 단단해 보일 수 있는 그의 톤을 캐릭터에 맞게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허동원은 "시나리오를 읽을 당시 나의 현실과 가장 맞닿아 있었다"라며, "작품 속 인물들이 가진 고민은 나를 포함해 주변 모두의 고민거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월월세남' 캐릭터가 현실적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틀을 두고 싶지 않았고, 작품 안에서 어디로 튈지 모를 불안감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라는 그의 말은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이어 박소현은 "첫인상은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웹툰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라며 "이 만화 속의 한 캐릭터를 맡으면 재밌게 연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다"라고 전했다.

'월월세녀' 캐릭터에 대해 "순수하면서 친화력이 있지만, 남들의 시선에는 기괴해 보이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세입자>의 진정한 힘은 현실 비판과 장르적 상상력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월월세'라는 설정은 단순한 장르적 장치를 넘어, 점점 더 극단화되어 가는 주거 문제의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실제로 허동원은 "환상을 좇아 달려가고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공감된다"며 "분명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월세', '집주인', '치솟는 물가' 이런 키워드들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지만, 유일하게 이 영화 안에서는 즐겨보실 수 있을 것"이라는 김대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담아낸다.

박소현 역시 "현실적인 부분도 굉장히 많고 그러면서 호러물과 블랙 코미디까지 같이 섞여 있어 현실을 환기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4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