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집에서의 삶

노숙을 경험했으나 지금은 독립적인 자신의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의 소식을 이따금 듣는다. 어떤 이의 소식은 안도감이 들고, 어떤 소식은 조마조마하며, 또 어떤 이의 소식은 마음이 짠하다.

Y 님은 2년 넘게 연락이 끊겼었는데, 몇 달 전 불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소식을 전했다. 연락이 없어 걱정도 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살고 있나 보다 했다니까 뉴스도 사람들도 온통 코로나19가 무섭다는 얘기여서 되도록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꼼짝을 못 하니 조금 답답했지만 자신은 지금 모든 게 만족스럽다고도 했다. 그사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갖춰 기초생계비를 지원받으니 아껴 쓰면서 살면 되고, 의료급여로 아플 때 치료도 받을 수 있으니 뭐가 걱정이냐며, 무엇보다 형제자매와 편하게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살짝 들떠 이야기했다. 가게가 망하고 여관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때부터 면목 없고 창피해 형제들과도 소식을 딱 끊었는데, 이제는 살 만한 집에서 생활하니 가족을 찾아도 되겠다 싶어 연락했다고 한다. 동생이 하도 걱정하기에 자기 집에 데려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한다. 자신은 정말 그럴 생각이란다. 더 늙어도 형제들한테 신세 질 생각은 안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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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님은 볕이 아주 잘 드는 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무릎이 아파 일을 못 해 여관비조차 내지 못하던 날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서울역에 있는 응급구호방 신세를 지다 내가 있는 일시 보호시설에 왔고, 이용 기간이 만료된 뒤 1년 넘게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시절도 벌써 한참 전 일이 되었다.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시설살이도, 발걸음 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던 비좁은 고시원 생활도 인내하며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길 기다렸던 Y 님은 임대주택이 공급되지 않아 근심하다가, 전세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활용해 마침내 민간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오랜만에 찾아와 소식을 전한 그날 Y 님이 자랑삼아 내민 사진 몇 장 중 하나는 그 볕 잘 드는 집 베란다 가득 온갖 꽃과 채소가 자라고 있는 풍경이었다. 하긴 Y 님은 고시원에서 생활할 때도 고시원 담벼락과 건물 사이 비좁은 공간을 놀리지 않고 스티로폼 상자에 상추와 꽃을 키웠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황금 손을 가진 분이다. 요새는 상추부터 치커리, 파, 부추 할 것 없이 모두 베란다에서 키워 먹는다며 채소 살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평안해 보이던 그이는 우리에게도 이제 자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갔다.


자기 집에서 ‘노숙’하는 사람

R 님은 강남의 한 버스 터미널에서 2년 넘게 노숙하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 분이다. 그 터미널은 홈리스가 꽤 있어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꾸준히 방문해 상담하고 구호 활동을 하는 장소 중 하나다. 워낙 넓은 곳이어서 얼핏 봐서는 홈리스 여성을 식별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2년씩이나 거리 생활을 유지하며 상담원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지 의아해 길거리 생활을 어떻게 버텼는지 여러 번 물어보곤 했었다. 워낙 과묵한 분이라 딱히 자세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빵과 음료를 나눠 주는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 날에는 시민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는 얘기 정도를 들려줬다.

일시 보호시설에서는 아주 조용하게 생활했다. 한 달 이상을 그저 누워 지냈다. 일시 보호 기간이 끝날 때쯤 달리 갈 곳이 없으면 다른 생활 시설에 가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 뭐라도 좀 해봐야 하지 않으냐고 설득해 하루 세 시간 정도의 공공일자리로 무료 급식 준비를 돕도록 했다. 일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대화가 되기에 우울 증세가 있어 보이니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면 어떠냐 권유했고, 그이는 다행스럽게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고시원에서 지내며 공공일자리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지난해 5월에 R 님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숙 경험 여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인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지원주택은 집도 집이거니와 사회복지사가 근거리에서 입주민이 필요로 하는 지역사회의 자원과 서비스를 연계해주어 지역에 정착하기 용이한 곳이다. 노숙 경험이 길고, 정신 건강상 어려움도 있는 R 님에게 안성맞춤인 주택이다. 너무 잘되었다고 한껏 축하하고, 집들이를 해서 어찌 지내는지 보여달라 했지만, 슬며시 미소만 지을 뿐 우리를 초대해주지는 않았다. 지원주택 사회복지사 말로는 R 님의 생활이 노숙할 때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새집에 맞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마련하고 꾸미는 다른 입주민과 달리 맨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생활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기 공간이니 신문지 위에서 자든 어떻든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한 번 취업 면접에서 떨어진 후 구직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밥을 해 먹은 흔적도 없이 종일 돌아다니다 늦게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터라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노숙할 마음인 듯하다며 걱정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얼마 전부터는 H 님을 밀착 지원하는 지원주택 서비스 코디네이터가 소식을 전해온다. H 님은 지난해 초 아주 잠깐 일시 보호 서비스를 받았던 분이고, 그러다 지난해에 드디어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지원주택에 들어가기까지 H 님의 홈리스 이력은 지난했다. 10년 이상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여러 시설과 정신병원을 거쳤다. 노숙인 시설, 여성 폭력 피해자 시설, 성매매 피해자 시설, 정신장애인 시설 등에서 지내다 퇴소해 노숙하거나 성매매를 한 적도 있고, 그러다 정신질환이 심해져 입원하기도 하고, 퇴원하면 갈 곳이 없어 시설에 들어가는 반복적이고 만성적인 홈리스 생활이었다. 그런 H 님이 집 떠난 후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독립생활을 꾸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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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님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기초생계비를 받아 생활한다. 1인 기초생계비는 월 60만 원 정도. 사실 너무나 빠듯한 금액이다. 기초생계비가 나온 지 며칠만 지나면 H 님 수중에 남은 돈은 이미 얼마 없다. 전달에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갚고, 휴대폰 요금이나 공공요금이 빠져나가면 통장 잔고는 빈약할 대로 빈약해진다. 그러고는 또 한 달을 살기 위해 돈을 빌리거나 말 그대로 손가락을 빨며 지내기를 반복한다. 언젠가는 나랏미를 들고 나가 동네에서 사귄 미용실 아주머니에게 팔아보려다 실패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반찬도 없이 간장에 밥을 비벼 먹곤 하더니 속이 좋지 않다며 방앗간에서 고추기름을 내다가 거기에 밥을 비벼 먹더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두어 달 전 코디네이터가 H 님에게 소위 금전 관리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규모 있게 소비해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코디네이터가 생활비를 맡아두고 매일 1만 원씩 지급하면 그 한도 내에서 사는 훈련이다. 

이 프로그램을 실천한 지 두 달째. H 님은 1만 원으로 담배도 사고, 반찬거리나 간식도 사서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잘 꾸려가고 있다. 막상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금방 이런 빡빡한 생활은 못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빚지지 않는 살림살이에 만족하고, 간혹 생활비를 조금씩 떼어뒀다가 재활용 가게에서 5000원짜리 옷을 사 입거나 치킨을 사 먹기도 하며 더 즐거워했다고 한다. 물론 최근 위기가 있기는 했다. 정신병원의 동료지원가 양성과정에 지원하고 면접을 기다리던 H 님이 너무 신경을 쓰다가 그만 스트레스성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가는 바람에 10여만 원을 지출하게 된 것. 뜻밖의 지출로 생활비가 바닥나고 남은 통장 잔고는 200원. 그 200원을 출금해 사무실을 찾아와 커피를 좀 달라고 했다니 참… 아무리 규모 있게 지출하는 연습을 하고 관리해도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크게 실망해 금전 관리고 뭐고 다 관두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단다. 지난 두 달의 생활이 꽤 흡족했던 모양이다.

며칠 전 Y 님의 집 근처를 지나다 문득 생각나 들러봤다는 사회복지사 말로는 Y 님이 지난겨울 내내 베란다에 비닐을 쳐 간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따뜻할 때나 볼 수 있는 꽃과 싱그러운 채소를 풍성하게 키우고 있다고 한다. R 님도 아직은 지원주택을 포기하지 않았고, H 님 역시 가난한 살림을 잘 꾸려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처럼 세 분 모두 자신의 집을 지켜가고 있다. 마침내 자신만의 거처를 마련한 이들이 홈리스 생활을 벗어나는 고개의 9부 능선쯤은 넘고 있는 것일까.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글. 김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