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경제 괜찮은데 빅컷?…파월 '재조정' 발언에 주목해야[오미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8일(현지시간) 4년 반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2022년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 2년 반 만에 긴축에서 완화로 통화정책 기조를 바꾼 것이다.
이는 시장의 기대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금리 선물시장에 따르면 이번 FOMC에서 금리가 0.5%포인트 인하될 것이란 전망은 지난주 초만 해도 25%에 불과했으나 이번주 들어 65%로 뛰어올랐다.
연준이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하하기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FOMC 성명서를 통해 "고용 증가폭이 둔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7월 FOMC 때 "고용 증가폭이 완화됐다"고 표현한 것에 비해 노동시장이 더 약화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데 대해 더 큰 확신을 갖게 됐다"는 문구를 새로 삽입해 자신감을 표현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가 "대략적으로"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는 지난 6월 성명서에서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가 "계속 좀더 나은 균형 상태로 가고 있다"는 판단에서 진전된 것이다.
성명서는 0.5%포인트의 금리 인하 결정에 대해 "인플레이션에서의 진전과 리스크 균형"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헤지펀드인 포인트72 자산운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딘 마키는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0.5%포인트 인하는 연준이 노동시장에 대해 걱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우리가 그간 받아온 경제 데이터를 고려할 때 0.5%포인트 인하는 비정상적으로 큰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까지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냈던 로레타 메스터는 연준이 예상치 못한 노동시장의 추가 약세에 대비해 "약간의 보험을 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준은 2022년에 금리 인상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니 당연히 (경기 둔화에) 너무 늦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또 받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연준은 연착륙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올 1월 3.7%에서 8월에 4.2%로 상승했고 파월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식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노동시장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는 쪽으로 연준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때로 인플레이션과 함께 오는 실업률의 고통스러운 상승 없이 물가 안정이 회복되는 상황을 달성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고 이번 조치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연착륙을 달성하기 위해 0.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리는 기다렸고 이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2%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는 신뢰를 얻어 이러한 인내가 보답을 받았다"며 "따라서 나는 이것이 오늘 이같이 강력한 조치를 가능하게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리가 앞으로도 0.5%포인트씩 인하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도 이번 조치에 대해 '새로운 (금리 인하의) 속도'라고 받아들여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경제가 "좋은 상태에 있다"는 점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파월 의장은 "지금 경기 침체, 경기 하강의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시사하는 어떤 징조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장률은 견조하고 인플레이션은 내려가고 있고 노동시장은 여전히 건전한 상태"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이 이날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연준의 정책 변화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환'(pivot: 피벗)이라는 단어 대신 '재조정'(recalibration: 리캘리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도 주목된다.
그는 "파월 의장은 수년간 연준의 정책을 면밀히 추적해온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경제는 좋은 상태에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0.5%포인트로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것의 의미를 재조정했다"고 밝혔다.
글렌메드의 최고 투자 전략 및 리서치 책임자인 제이슨 프라이드는 배런스에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하락함에 따른 실질 금리 상승이 경제 활동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어 더 큰 폭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이 경기 침체가 우려돼 통화정책을 과감히 '전환'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하락에 따른 실질 금리 상승에 따라 금리를 '재조정'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번 금리 인하를 '재조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PGIM 채권의 수석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인 톰 포셀리도 CNBC에 "이번 금리 인하는 비전형적으로 큰 폭"이라며 "미국 경제는 현재 침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통화 완화와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이 큰 폭으로 둔화된 데 대한 정책 재조정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파월 의장은 사람들이 '빅컷'(0.5%포인트의 금리 인하)을 경기가 그만큼 나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 '전환' 대신 '재조정'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펀더멘탈상 변화에 따른 정책 '전환'이 아니라 경제의 미세 변화에 따른 '재조정'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FOMC에서 이뤄진 정책 결정에 반대자가 나오기는 2022년 6월 이후 2년3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아닌 연준 소속의 이사가 반대표를 던지기는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시장의 기대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CME 금리 선물시장은 9월 FOMC를 포함해 올해 말까지 금리가 1.0~1.25%포인트 인하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연준 위원들은 금리가 내년에도 1%포인트 추가 인하되고 2026년에도 0.5%포인트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 금리는 2.9%를 예상했다. 연준 위원들이 전망하는 장기 금리는 경제를 위축시키지도 않고 과열시키지도 않는 중립 금리 추정치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 실업률 전망치를 4.4%로 지난 6월의 4.0%에서 높였다. 반면 올해 말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6월의 2.6%에서 2.3%로 낮췄고 근원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2.8%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점도표를 비롯해 연준 위원들의 경제 전망은 분기에 한번씩 발표된다.
이날 연준의 빅컷 결정이 전해진 후 미국 증시는 다우존스지수가 375포인트까지 급등하는 등 상승으로 반응했으나 얼마 후 하락 반전하더니 소폭 약세로 마감했다. 국채수익률도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반등했다.
이에 대해 PGIM 채권의 포셀리는 "이날 0.5%포인트의 금리 인하는 앞으로 이어질 빅컷의 시작이 아닌데도 시장은 스스로 이번에 금리를 0.5%포인트 낮췄으면 또 한 번 0.5%포인트의 금리 인하가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파월 의장은 이 기대를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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