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55% 철거” 홍보했지만 거리엔 노점 여전, 생계 대안 없는 단속에 갈등 격화

서울 동대문구의 ‘거리 정비’ 사업이 단속반과 노점상 간 지속적인 대치로 이어지며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구청은 관내 불법 노점의 대다수를 철거했다고 홍보했지만 현재 경동시장 일대에서는 노점상들이 영업을 재개하며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대안이나 퇴로 마련 없는 단속 일변도 정책이 오히려 거리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출구를 나서면 보행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노점 행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제기동역에서 경동시장 사거리로 향하는 구간 동안 기존 상가에서 내놓은 진열대와 노점들의 적치물들이 인도 양측을 점령한 상태였다. 거리 정비 사업의 흔적은 동대문구가 철거 구역의 노점 재점유를 막을 목적으로 배치한 박스형 화분들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동대문구는 '상생형 정비'를 표방하며 관내 불법 노점의 절반 이상을 철거했다고 행정 실적을 홍보한 바 있다. 구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불법 노점 281개소 중 55%에 해당하는 154개소에 대한 철거가 완료됐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당시 “기업형·비생계형 노점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생계형 상인은 협의와 상생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며 “걷고 싶은 거리, 머물고 싶은 도시를 조성하겠다”고 정책 기조를 밝혔다.

현장의 노점상들은 구청의 설명과 달리 소통 노력이 전무했다며 지자체 행정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상인들에 따르면 노점상 노조는 2022년 11월 구청 측의 협의 의지를 믿고 실태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2023년 1월부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계고 절차 없는 기습적인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행정대집행은 주로 자정부터 새벽 2시 사이 심야 시간에 이뤄져 상인들은 대응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사전 협의가 배제된 일방적인 철거 작업은 오히려 상인들의 거리 복귀를 불러왔다. 뚜렷한 생계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쫓겨난 노점상들은 단속을 감수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경동시장 일대에서 30년간 노점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평생 이 일만 해왔는데 갑자기 쫓겨나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며 “단속반이 매일 지나다니면서 압박을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다시 나와서 자리를 펼 수밖에 없는 처지다”고 토로했다.
동대문구의 철거 정책은 과거 지자체가 주도해 온 노점 양성화 및 전통시장 상생 정책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19년 서울시와 동대문구는 노점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도로점용허가를 내주는 ‘거리가게 허가제’를 도입했다. 현장 상인들에 따르면 제기동역 2번출구 일대에 설치된 노점 캐노피(비가림막) 구역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1기 재임 시절 시 차원에서 상권 환경 개선을 위해 직접 조성해 준 시설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해 제도권으로 양성화했던 상생 공간마저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인해 철거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지자체의 정책 선회로 동대문구가 설치한 ‘합법 거리가게’ 상인들마저 혼란을 겪고 있다. 동대문구는 2022년 이필형 구청장 취임과 함께 거리가게 허가제 운영을 중단하고, 기존 상인들과 맺어온 1년 단위의 정식 계약 갱신을 전면 중단했다. 현재는 ‘공간 제공’ 형태로 축소돼 상인이 가게를 옮기거나 폐업하는 경우 부스를 철거한다.
특히 거리가게 상인들은 일반 불법 노점보다 가혹한 잣대를 단속반에게 적용받는다며 역차별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한 상인은 “물건이 도로 쪽으로 조금만 나와도 단속반이 다른 노점들보다 강하게 규제한다”며 “계약 갱신도 끊긴 상황에 장사를 접는 순간 가게가 철거 수순을 밟아 정책에 따른 결과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강제 철거는 지난해 5월부터 영업 포기 노점을 대상으로만 진행돼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태다. 노점상 노조 측은 구청이 일방적 단속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선다면 거리 정비 사업에 협의할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상인들이 수차례 면담을 요구했음에도 구청 차원의 공식적인 대안 제시나 대화 공간은 전무한 상태다”며 “소통 없이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만을 고집하는 행정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뚜렷한 대안이 결여된 행정 정책으로는 거리 정비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안이 부재한 상태에서 물리적인 강제 철거만을 강행하는 방식으로는 생존권이 걸린 상인들을 거리에서 온전히 내몰 수 없다”며 “구청이 단속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상생을 목표로 상인들과 적극적으로 합의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박해성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동대문구 불법 노점 철거 정책의 현재 상황은?
A. 동대문구는 지난해 관내 불법 노점 281개소 중 55%에 해당하는 154개소를 철거하며 ‘거리 비우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생계 대안이 없는 상인들이 단속을 피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행정대집행의 실효성 논란과 현장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Q2. 합법적으로 운영되던 '거리가게' 상인들도 철거 대상인가?
A. 그렇다. 2019년 서울시와 동대문구는 일정 기준을 충족한 노점을 양성화하는 '거리가게 허가제'를 도입했으나, 2022년 이필형 구청장 취임 이후 제도를 사실상 중단했다. 기존 거리가게 상인들과의 1년 단위 계약 갱신이 폐지되는 등 양성화 정책이 전면 철거 기조로 선회했다.
Q3. 동대문구 노점상 단체의 입장은?
A. 노점상 노조 측은 구청이 일방적인 강경 대응만 고집하고 있다며, 대화 창구가 열린다면 거리 정비 사업에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