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박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두 사람>은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간 이수현과 김인선의 40여 년에 걸친 사랑과 동행을 담아낸다.
2025년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노년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성소수자, 이주민, 노년의 삶이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 사람>의 시작점은 2017년 서울역사박물관의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에서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베를린의 나치 시대 동성애자 추모비 앞에서 손을 맞잡은 두 여성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이수현과 김인선.
1970년대 초반, 각자의 이유로 독일에 건너간 두 사람은 1985년 독일 여신도회 수련회에서 처음 만났고, 하르츠라는 독일 외곽 산골 마을에서 이수현이 김인선에게 건넨 한 송이 꽃으로 시작된 인연은 이후 평생의 동반자 관계로 이어졌다.

이 다큐멘터리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성소수자의 삶을 특별하거나 극적인 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일상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시선에 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소소한 순간들을 담담하게 좇아간다.
이러한 일상적 장면들 속에서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여러 경계들(국가와 국가 사이, 한국 교회 공동체 안과 밖,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사이의 경계들)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두 사람의 삶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2005년 이종문화간호스피스 '동행'을 설립하여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위한 돌봄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젊은 세대들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랑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노년의 성소수자가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2017년에야 동성혼이 합법화된 독일에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2022년의 결혼은 단순한 사랑의 확인이 아닌,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반박지은 감독의 연출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감독은 두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연출하려 하지 않으며,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지닌 단단함과 아름다움을 포착해 낸다.
퀴어문화축제 장면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같은 이미지 처리는 단순한 초상권 보호를 넘어,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은폐하지 않으면서도 보호하는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한국의 이주노동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흔히 '파독 간호사'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산업역군으로만 조명받지만, 이 작품은 그들이 독일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고립,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간 연대와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었던 위기와, 그에 맞서 싸웠던 투쟁의 역사는 오늘날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맞닿아 있다.
종교와 성소수자성의 관계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특히 신학을 공부한 기독교인으로서 김인선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고민은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신학교 교수의 말은 종교와 성소수자성이 반드시 대립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성취는 '존재의 가시화'에 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으니, 없는 존재처럼 '존재'가 지워지는" 현실 속에서,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어 있던 노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 보인다.
더불어 이들의 삶이 결코 비극적이거나 고립된 것이 아닌, 사랑과 연대로 가득한 것임을 증명해 낸다.
2025년 한국 사회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각별하다.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실, 퀴어문화축제마다 되풀이되는 갈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40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온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모든 이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진정으로 보장하고 있는가.
<두 사람>은 단순한 기록이나 고발을 넘어선다.
영화 속 김인선의 말처럼 "한 번 살고 가면 끝이니까. 본인의 의무와 권리를 다 하고 보장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함께 생활하고 싶은 사람하고 살고,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이 소박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 모두의 삶과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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