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최고 훈장 받은 미슐랭 셰프가 말하는 흑백요리사 열풍
“평생 ‘영혼(âme)이 있는 음식’을 만들려 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삼원가든에서 만난 기 마탱(67) 셰프는 “영혼이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공들여 고르고, 이 식재료를 360도 각도로 보며 조리법을 고민한다”고 했다. 본지는 이날 이곳에서 열린 F&B 포럼 ‘제1회 넥스트가스트로노미 2024′에 연사로 참여한 마탱 셰프를 만났다.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마탱 셰프는 1784년 프랑스 최초의 대형 고급 레스토랑으로 개업한 ‘그랑 베푸르’의 주방장이다. 17세에 피자이올로(피자 요리사)로 요리 경력을 시작한 그는 요리계 입문 6개월 만에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다. 마탱 셰프는 1997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프랑스문화예술훈장 슈발리에’, 2003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2012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를 수훈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수훈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마탱 셰프는 최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에 대해 “이 프로그램은 계급을 타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급주의에 경도된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마탱 셰프는 “중요한 건 요리(plat, 접시에 담긴 요리) 자체”라며 “미슐랭 스타 획득 여부, 요리학교 졸업 여부, 식당의 규모 등 소위 요리사의 ‘계급’은 실상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마탱 셰프는 “요리사들은 계급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직 음식으로만 경쟁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마탱 셰프는 “전 세계인이 접근할 수 있는 넷플릭스로 한국 요리사들의 요리가 소개된 건 긍정적인 일”이라며 말했다. 마탱 셰프는 “요리는 사람들이 대화하기에 좋은 소재”라며 “이 프로그램을 보며 사람들이 한국 요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마탱 셰프는 “파리 시내에서 6코스짜리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인기를 끄는 등 유럽 국가들에서 한식의 지위는 2, 3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며 “외국인들의 한식에 대한 관심은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싼 요리가 아닌 영혼이 있는 요리가 가스트로노미(gastronimie, 식도락)를 가능케 한다”는 마탱 셰프는 “가스트로노미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가스트로노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탱 셰프는 2011년부터 식재료 생산지를 소개하는 프랑스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피스리 핀(Épicerie fine)’에 출연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간단한 요리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탱 셰프는 “특히 인스타그램으로 15분 정도면 끝나는 조리법을 올리며 사람들이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탱 셰프는 “저렴한 재료로도 가스트로노미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마탱 셰프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훈한 이유에 대해 “프랑스 가스트로노미를 전수하는 책을 23권 썼는데 이를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답했다. 마탱 셰프는 “미식의 국가 프랑스에서도 요리사가 요리로 훈장을 타는 건 드문 일”이라며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영감을 위해 매주 한번 이상 전시를 본다는 마탱 셰프는 “회화, 조각으로부터 음식의 비주얼과 질감에 대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마탱 셰프는 “최근에는 클로딘 드레의 흰 부조를 보고 천사를 떠올렸다”며 “이에 대문짝넙치의 흰 살을 이용해 천사를 구현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탱 셰프는 “프랑스 가스트로노미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전통적인 조리법에 얽매이기보다는 다양한 영감을 활용해 창의적인 요리를 하려 한다”고 밝혔다.
마탱 셰프는 “한국 요리사들과 프랑스 요리사들 사이의 교류가 늘어나길 바라고, 특히 식재료를 서로 소개하며 양국의 식문화를 발전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탱 셰프는 “한식은 야채를 조리하는 방법이 무척 다양하고 직화구이 기술이 발달했다”며 “마늘이나 양파처럼 프랑스에서도 사용되는 향신채가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조리되는지도 이번 기회에 살피고 싶다”고 했다. 또 마탱 셰프는 가장 흥미로운 한식으로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조리법으로 만들어지는 김치”를 꼽으며 “김치와 관련된 모든 야채가 흥미롭다”고 했다.
한편 ‘제1회 넥스트가스트로노미 2024′는 프랑스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의 국내 시상식이 5년만에 개최되는 것을 기념해 미식 콘텐츠 플랫폼 메티즌과 한-유럽 싱크탱크 KEY가 공동 주최했다. ‘라 리스트’는 프랑스 정부가 세계 최고 레스토랑 1000곳을 선정한 미식 가이드로, 올해 한국 레스토랑 35곳이 이름을 올렸다. ‘라 리스트 2025′ 공식 행사는 다음달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며, ‘라 리스트 한국 사전 시상식’은 프랑스 대사관에서 지난 21일 저녁에 진행됐다. ‘라 리스트 한국 사전 시상식’은 코로나로 인해 지난 2019년 마지막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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