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부터 한강까지…'텍스트 힙'에 빠진 Z세대
유명인 추천 책 베스트셀러…하나의 문화 자리매김
노벨상 수상 이후 분위기 고조…"건전한 독서 문화 조성"
[더팩트ㅣ장혜승·이윤경 기자]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한강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텍스트 힙'(Text hip) 열풍까지 거세지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 아닌 독서를 장려하고 건전한 독서 문화가 조성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 Z세대, 유명인 따라 독서…'독서=멋진 것'
텍스트 힙은 글자(text)와 멋지다(hip)를 결합한 단어다. 올해 초 세계적 모델 카이아 거버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책이나 책을 읽는 모습 등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인증하고 공유하는 문화를 말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사진으로 찍거나 인용해 SNS에 올리기도 한다.
텍스트 힙은 짧은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가 활자 매체인 책을 오히려 신선하게 느끼면서 유행하고 있다. 이들은 SNS에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완독 등 해시태그를 달아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이날 낮 12시 기준 SNS에 북스타그램을 검색했을 때 게시물 19만3000개, 책스타그램은 19만2000개, 완독은 10만7000개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유명인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Z세대가 이를 따라 책을 구입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행동과 취향을 따라가려는 욕구가 독서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4월 걸그룹 뉴진스의 신곡 '버블검'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민지가 고전 '순수의 시대'를 읽는 모습이 공개된 직후 책 판매량이 8배 뛰었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은 지난 5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두고 "사람들은 마흔에 읽지만 저는 스무 살에 읽고 싶었다. 쇼펜하우어가 워낙 염세적이어서 위로받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판매량은 전월 대비 2배 급증했다. 이 책은 올 상반기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에까지 올랐다.
'불안의 서'도 연예인 덕을 봤다. 배우 한소희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책의 구절을 인용해 "불안은 아주 얇은 종이라서 우리는 이 불안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게 부지런히 오늘은 오늘의 불안을, 내일은 내일의 불안을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공개되자마자 책이 소진돼 중쇄에 들어갔고 11월3주~12월1주까지 예스24에서 4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김모(24) 씨는 "원래 한소희라는 배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불안의 서'라는 책을 추천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알고 올 3월에 따라서 책을 사 봤다"고 말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24) 씨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책을 안 읽는다. 휴대폰과 컴퓨터에 시간을 뺏겨 자연스레 책과 멀어진 것 같다"며 "인플루언서들이 책을 추천해주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같은데 텍스트 힙과 같은 문화가 조성되면 문해력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같은 텍스트 힙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책을 사서 나오던 고등학생 강모(18) 양은 "자주는 아니지만 책을 몇 권씩 읽으려고 한다"며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정모(29) 씨는 "원래 책에 늘 관심있었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전에도 '채식주의자'는 읽었다"며 "이번에 수상 소식을 듣고 다른 작품에 관심이 생겨 독서모임 책을 한강 작가의 책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 '보여주기식' 비판도..."독서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 필요"
다만 일각에선 텍스트 힙이 '보여주기'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 양은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하는 건 좋은 문화"라면서도 "단지 내가 책을 읽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SNS 등에 올리는 건 진정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텍스트 힙이 가벼운 유행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독서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존의 텍스트 힙은 책 자체를 하나의 트렌드로 소비하는 가벼운 유행의 느낌이었다"며 "이번에 순수 문학 작가인 한강이 노벨상을 받으며 관심이 고조되면서 기존의 유행이었던 텍스트 힙이 더 깊이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MZ세대들은 인터넷 세대다 보니 즉각즉각 반응이 오는 자극적인 매체에 길들여져 책을 읽기가 어렵고 입시 교육 위주다 보니 진지한 독서와는 멀어지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일시적 유행이 아닌 본격적인 독서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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