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무브 격변기]③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이대로 안 된다"의 속뜻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전경 /사진 제공=하나금융그룹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상품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가속화되고 있다. 실물경제와 혁신산업 성장에 직접 기여할 수 있도록 금융이 자금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룹의 맏형으로서 충실하게 역할을 한 은행의 위기로, 이대로는 안 된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금융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이렇게 규정하며 혁신을 주문했다. 예대마진 중심의 전통적 은행 모델이 한계에 봉착한 만큼 자본시장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기가 아니라 ‘판을 바꾸는 혁신’의 기회로 삼아 그룹의 핵심 역량을 투자와 생산적 금융으로 재정의하겠다는 구상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새로 신설한 '투자·생산적금융부문'을 전면에 세우고, 그룹의 자본 배분 전략을 생산적 투자로 이동시키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은행이 쥔 자금력에 하나증권의 투자금융(IB)·리서치·자본시장 기능을 결합해, 생산적 금융을 대출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다.

기존 기업투자금융(CIB) 본부를 분리·확대해 컨트롤타워 기능도 강화했다. 특히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가 부문장을 겸직하며 생산적 금융의 무게중심을 증권을 축으로 한 자본시장에 두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산업과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대출과 투자를 배분하는 생산적 금융의 성격상, 투자자금 조달(펀드·메자닌 등)과 딜 구조화, 회수(Pre-IPO~IPO 연계)에서 증권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하나금융은 이달 초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 본사에서 '2026년 제1회 Hana One-IB 마켓 포럼'을 열고 하나금융연구소의 산업 리서치와 하나증권의 리서치 역량을 결합해 '리서치·영업 소싱·구조화·집행'으로 이어지는 원팀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지주와 관계사 임직원들이 산업 전략을 공유하는 이 협의체를 정례화해, 포럼에서 산업 트렌드를 공유하고 유망 분야를 좁힌 뒤 은행 RM이 발굴한 수요를 증권 IB·운용·벤처(VC)·캐피탈이 구조화로 연결하는 흐름을 상시화하겠다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가동한 100조원 규모의 '하나 모두 성장 프로젝트'는 이 원팀 체계를 실전에 투입하는 프레임이다. 주요 지원 분야는 반도체, 방산, 에너지·인프라 등 국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메가테마 산업'에 집중된다. 동시에 소프트웨어(SW)·인공지능(AI) 등 무형자산 기반 혁신기업을 대상으로 '기술력과 미래 가치'를 신용조건에 반영하는 신용 재설계도 병행한다. 담보의 정의를 바꿔 혁신산업의 자금 조달 경로를 넓히겠다는 구상으로, 이 과정에서 하나증권의 리서치 역량이 심사·구조화의 핵심 인프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금융 주요 비은행 계열사 순이익 추이/ 그래픽=류수재 기자

투자 집행 측면에서는 모험자본 성격을 강화해 은행 여신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구간을 메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하나금융이 4년간 4000억원 규모의 K-미래전략산업 벤처 모펀드를 조성해 AI·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직접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장 기업의 밸류체인 상단(초기·성장·Pre-IPO)에 자금을 공급하고, 이후 IPO·M&A 등 회수 단계까지 연결하는 자본시장형 모델을 강화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하나증권은 패밀리오피스 중심으로 자산관리(WM) 역량을 강화하고, 발행어음으로 자금 조달력을 높여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말  초고액자산가 특화 점포 'THE 센터필드 W'를 개설한 데 이어, 본사에 패밀리오피스 본부를 신설하며 고액자산가 전담 채널을 강화했다. 올해에도 초고액자산가 수요가 집중된 서울 핵심 권역을 중심으로 초고액자산가 특화 점포를 추가 개설해 전담 채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올해 선보인 발행어음 상품 역시 WM 전략과 맞물린다. 발행어음은 증권사의 자금 조달력을 확대해 중장기 자산 운용의 폭을 넓히는 수단으로, 초고액자산가 대상 맞춤형 포트폴리오 설계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하나증권은 발행어음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생산적 금융 확대에 앞장서 모험자본 투자와 기업금융 등에 활용하며, WM 부문과의 시너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이 투자 전환의 엔진을 하나증권으로 설정한 데에는 비은행 실적 확대라는 과제도 깔려 있다. 하나금융의 지난해 비은행 부문 순이익 기여도는 12.1%로 전년 15.7%보다 낮아졌다. 함 회장이 "비은행 부문 이대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 것은 곧 "본업 경쟁력 강화와 리테일일 분야 확대 등 추진하고 있는 과제들이 보다 빠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속뜻이 있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 모두 성장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좋은 투자처를 확보할 수 있는 투자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은행의 안정적 자금력과 하나증권의 IB·리서치 역량을 고도화하겠다"라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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