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범죄분석 권위자의 일침 “AI는 숙련된 사이코패스”
참석차 방한 브렌트 터베이 박사
“인공지능(AI)은 숙련된 사이코패스(Psychopath)입니다.”
미국 범죄 전문가 브렌트 터베이(54) 박사는 지난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AI는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만이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터베이 박사는 1996년부터 프로파일링(범죄자 분석)과 범죄 현장 분석가로 활동했다. 1999년 출간한 ‘범죄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은 이 분야 고전(古典)으로 통한다. 미국의 연방·주 법원에서도 그의 사건 분석은 공신력 있는 의견으로 채택된다.
터베이 박사는 경찰청 주관으로 지난 23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10회 국제 과학수사 콘퍼런스 연사로 참석 중이다. 그는 인간 지능(HI)과 AI의 만남을 주제로 한 강연과 본지 인터뷰에서 “인간 범죄 분석가는 각종 객관적 정보로 판단을 반복하면서 ‘이 결과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닌지’ 윤리적 고민을 자동적으로 하는 반면, 범죄 프로파일링 분석을 하는 AI는 기계적으로 연산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AI가 각종 허위 정보(disinformation)을 적극적으로 조작해 형사 사법 절차에 영향을 끼칠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묘하게 위·변조된 증거물이 법정에 제출되면 판사의 판단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2022년 할리우드 스타 부부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명예 훼손 소송을 예로 들었다. 당시 앰버 허드는 자신이 조니 뎁에게 가정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신체에 남은 멍 자국 사진을 법정에 제출했다. 그런데 조니 뎁 측은 멍 자국이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반박했고, 2022년 6월 조니 뎁이 소송에서 승리했다.
변호사들이 재판 과정에서 AI로 ‘거짓 판례’를 만든 사례도 속출한다. 터베이 박사는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탈세 및 선거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의 거짓 판례를 법정에서 인용한 사례를 언급했다. 하지만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인용한 사건 중 하나도 실제로 찾을 수 없다”며 의견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I가 지어낸 내용을 갖다 붙였다는 사실도 이 과정에서 탄로났다.
터베이 박사는 인간의 ‘게으름’과 ‘부주의’가 AI가 마구 만들어내는 거짓 정보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이클 코언 사례는 많은 사람이 AI를 이용해서 만든 결과물을 꼼꼼히 읽어본 뒤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촌극”이라고 했다. 그는 “각종 과학 학술지에서 ‘나는 AI 언어 모델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실시간 접근권이 없다’ 혹은 ‘이것은 당신의 주제를 위한 소개 문구 제안입니다’ 등 생성형 AI가 답변한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붙여넣기한 내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생성형 AI에 모든 걸 위탁하고, 답변을 읽지도 않는 게으름에서 파생된 현상이다”라고 했다.
터베이 박사는 “AI가 생성하는 교묘한 딥페이크 사진·영상이 미 대선을 흔드는 위협 요소가 됐다”고도 지적했다. 지난 8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당신이 트럼프를 뽑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영상이 전 세계 소셜미디어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밝힌 상황이다. 터베이 박사는 “스위프트의 소셜미디어 팔로어가 3억명에 이르는 것을 알고 이 같은 교묘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AI가 인간 사회의 차별 구조를 그대로 학습, 이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데이터 업계의 격언처럼, AI는 데이터에 대한 가치 판단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터베이 박사는 얼굴 인식 AI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는 “백인을 기준으로 한 얼굴 정보만 쌓이므로 다른 인종의 특징을 제대로 추출·연산하지 못한다”며 “그 결과 백인에 대해서만 효과적인 AI 프로파일링 시스템이 구축되고, 결과적으로 수사 결과의 신뢰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터베이 박사는 “범죄 프로파일링도 결국 내가 가진 모든 선입견을 제거하고 범죄자와 피해자 입장에 몰입해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AI로 프로파일링을 하더라도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공감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공감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능력”이라며 “AI의 수월성을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감을 통한 윤리적 성찰로써 통제해야만 AI가 ‘숙련된 사이코패스’가 돼 인간을 위협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브렌트 터베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포틀랜드 주립대 심리학과를 거쳐 본드대에서 범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미국 경찰의 성폭력, 연쇄 살인, 총기 난사 등 각종 수사 자문에 응했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수사 과정에서 현장 증거를 분석해 용의자 신원을 추정하거나, 범죄자 심리 상담을 통해 범죄 유형을 분류·분석하는 작업(프로파일링)을 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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