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어울리지만 채소를 먹고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평생 안하던 것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각종 채소를 씻고 살짝 익힌 뒤 갈아먹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채소를 챙겨먹기 시작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나를 오래 알아온 누군가가 이 풍경을 봤다면 “너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그도 그럴 듯이 오랫동안 채소보다 고기를, 건강즙보다 술과 더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면 ‘올해는 또 무슨 안 좋은 말이 나올까’ 두렵긴 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지’라는 핑계를 대며 넘겼습니다. 휴대폰 달력에 적힌 일정이 늘 빽빽했으니까요. 반복되는 외식에 몸이 나빠지는 것이 느껴져 도시락을 싸서 다닌 적도 있지만 점심 약속 자리에서 “실은 전 도시락을 싸왔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외식’과 ‘육식’과 ‘음주’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다 정신이 번쩍 든 건 주변에서 하나둘 병원에 가는 것을 보면서입니다. 친한 친구는 최근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에 미세석회가 번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회사 선배는 위궤양이라고 했습니다. 이모는 폐암 1기라고 했습니다. “일찍 발견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는 이모는 지난주 수술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니 내 주변 사람들이 병(病)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비슷한 말을 해줬습니다. 채소를 많이 먹고 땀을 흘리는 운동을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은 하고 있으니 식습관을 바꿔야 했습니다. 채소를 어떻게 하면 꼬박꼬박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매일 일곱 가지 필수 채소를 갈아먹고 암을 극복했다’는 한 약사의 글을 읽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나와 어울리지 않는 채소 주스 먹기가 시작됐습니다.
방법은 대충 이렇습니다. 토마토는 끓는 물에 살짝 익혀 껍질을 벗겨냅니다. 당근과 양배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비트 등 여섯 가지 채소는 찜기에 살짝 데칩니다. 여기에 잘 씻은 사과 반개 정도를 더해 모두 블렌더에 넣으면 끝입니다. 이렇게 만든 채소과일즙을 그릇에 담고 여기에 올리브유 한 큰술과 약간의 죽염 소금을 더해서 아침식사 대신으로 먹습니다. 뜻밖에도 아주 맛있습니다.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때울 때에 비할 맛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속도 편안합니다.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누군가는 내게 “이번에도 역시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 아니냐”며 놀렸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평생 해온 작심삼일이니 또 한 번의 ‘작심삼일’을 시작하는 것도 자신 있습니다. 수많은 작심삼일을 하다보면 무언가는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내가 어울리지 않게 채소를 갈아먹기를 시작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