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한국조선해양은 현지 회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방식으로 대미 진출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미 관세협상으로 기류가 급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며 결국 미국 조선 업체에 대한 지분투자를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베트남 현지화 경험 필리핀·인도 사업 마중물
지분투자 형태의 대표적 현지화 전략으로 평가되는 사례는 베트남법인 HD HVS다. HD HVS는 자회사 HD현대미포와 베트남 국영조선기관인 비나신이 각각 55%, 45%씩 투자한 조인트벤처(JV)다. 1996년 당시 베트남에서는 시장 개방을 위한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조선업을 전략사업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HD한국조선해양에는 공급망을 글로벌로 다변화하는 동시에 인건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러한 양측의 니즈가 맞물려 JV가 만들어졌다.
비나신은 부지 제공과 함께 인력과 제도적 지원을 맡았으며 HD현대미포는 기술이전, 생산관리 노하우, 설계역량 등의 DNA를 HD HVS에 이식했다. 진출 초기에는 노후선박을 수리·개조하는 데 주력했지만 2000년대 들어 신조선박 건조을 본격화하며 현재까지 200척 이상을 수주했다. HD HVS 매출은 2023년 7172억원에서 지난해 8500억원으로 증가했다.
베트남 시장 안착 경험은 필리핀, 인도 사업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HD현대미포는 올해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필리핀, 인도 사업은 베트남 HD HVS처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필리핀의 경우 현지의 수비크조선소가 보유한 야드 중 일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인도는 코친조선소와 공동 수주·기술 및 인력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필리핀, 인도 사업의 초기 수익창출 구조는 단순하다. 한국 본사에서 제공한 도면을 바탕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가운데 기자재 조달 및 인력파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수입이 주요 원천이다. 이는 HD HVS가 HD현대미포에서 전수한 기술을 기반으로 대규모 로컬 인력을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린 것과 유사하다. 다만 지분투자 없이 파트너십에 기반한 구조라 구속력과 통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단절될 가능성도 크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따른 대미 전략 변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미국 조선소 인수와 관련해 기존보다 고민이 깊어졌느냐’는 질문에 HD한국조선해양 측은 "광범위한 투자가 예상되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겠다"고 에둘러 답했다.
실적발표회에서 이러한 얘기가 오간 것은 한미 조선업 협력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과 미국 간에 타결된 관세협상에는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일명 '마스가'로 불리는 조선업 협력 패키지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1500억달러 규모의 펀드가 조성될 예정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정비(MRO)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른다.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가 협력하되 각 사는 대미전략에 따라 개별적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현지 방산조선사인 헌팅턴잉걸스와 양해각서(MOU)를 맺는 한편 에디슨슈에스트오프쇼어(ECO)와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밖에도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와 잠수함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정치·외교 등 외부 리스크를 헤징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입지를 확대하려는 보수적인 접근전략이다. 아직 현지 조선 업체에 대한 직접투자 내역은 없지만 결국 경쟁사인 한화오션처럼 현지 조선소를 M&A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의 지원으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특히 마스가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미국 조선업의 부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 건조나 MRO를 미국 현지에서 직접 수행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단순 인력파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M&A 가능성에 비중을 뒀다.
미 해군의 주요 작전지역에 위치한 현지 조선소 역시 향후 M&A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는 매물로 거론됐지만 부인한 적이 있다.
수비크조선소는 본래 한진중공업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 과도한 부채 부담을 이기지 못한 한진중공업이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필리핀 조선업 생태계 전반이 위험해졌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를 미 해군의 도킹 및 수리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고, 2022년에는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이 조선소를 인수하며 존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났다.
서버러스는 글로벌 해저 광섬유 케이블 기업 서브컴, 물류기업 V2X 등에 조선소를 개방하며 다목적시설 전환을 추진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이 유일하게 장기임차 계약을 맺었다. 이런 유대관계를 감안해 시장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의 수비크조선소 지분참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서버러스 역시 최근 조선소 설비 고도화에 2억5000만달러(약 3460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이러한 중장기 자금 부담을 감안하면 전략적 지분참여를 반길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현지 투자가 병행될 공산이 크며, 투자는 HD한국조선해양에서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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