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은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크게 우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담담하게 장례를 치르는 사람도 있다.
눈물이 없다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며, 많이 운다고 사랑이 더 깊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오랜 삶을 함께한 부부를 돌아보면, 눈물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 드러나는 경우들이 있다.

1. 오랜 간병으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던 사람
수년간 배우자를 돌보며 병과 함께 시간을 보낸 남편은 장례식보다 그 이전에 이미 수없이 울었을 수도 있다. 긴 간병은 육체적인 피로뿐 아니라 감정적인 소진도 함께 가져온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눈물보다 허탈함이나 멍한 감정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 이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돌봄의 결과일 수 있다.

2. 장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사람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가족들을 챙기느라 감정을 드러낼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다. 끝까지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모든 절차가 끝난 뒤에야 슬픔이 밀려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감정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슬픔은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3.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특히 현재의 고령 세대에는 어려서부터 "울지 마라", "강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슬퍼도 눈물보다 침묵으로 감정을 견디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담담해 보여도 속으로 깊은 상실감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4. 살아 있을 때 이미 마음의 거리가 멀어졌던 사람
오랜 갈등이나 무관심으로 서로의 마음이 멀어진 채 긴 시간을 보낸 부부다. 사람은 육체적인 이별보다 먼저 마음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슬픔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복잡하고 개인적인 감정이다.

배우자를 떠나보낸 사람의 슬픔은 눈물의 양으로 판단할 수 없다. 크게 우는 사람도, 담담하게 견디는 사람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장례식에서 얼마나 울었느냐가 아니라, 함께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마음을 나누었는가이다. 결국 후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미루지 않고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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