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 없는 그림이 어떻게 1조원의 가치가?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미술 이야기]

검은 사각형,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5×79.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어떻게 1조원의 가치가?

저 까만 네모가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작 중의 대작이라 한다. 그림 가격이 1조 원이 넘어 세상 모든 그림을 통틀어 가장 비싼 작품으로 꼽힌다.(주- 한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지만, 전문가들이 미술사적 가치, 예술적 혁신성, 그리고 문화적 상징성을 고려해 비공식적 평가한 가격이다).

“도대체 뭐야?”

“이 정도면 나도 그리겠네…”

“물감도 적게 들고...경제적인 그림이군”

2차원 화폭에 덩그러니 네모를 그려 놓은 이 작품 앞에서 ‘뭐지?’를 조용히 속삭이며 이러쿵저러쿵 한다. 그리고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아, 현대미술 어렵구나! 골치 아파!’ 한다.

추상미술을 접하자마자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끼고 이해하긴 힘들다. 누군가에게는 일설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란만 줄 수도 있다. 바로 『검은 사각형』이 대표적일 것이다. 까만 네모만을 그려 놓은 말레비치의 작품을 보고 주저 없이 뭔가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을까?

『검은 사각형』의 진가를 알려면 먼저 그림이 위치한 전후 미술사 배경과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에 다가가 대화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결국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알아야 하는 것, 곧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완전 추상, '절대주의'의 탄생

“나는 나 자신을 제로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에서 창조로 나아갔다. 그것이 절대주의고 회화의 새로운 리얼리즘이고 대상이 없는 순수한 창조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설명이다.

말레비치는, 아주 옛날부터 생각해 오던 관념을 제로로 만들라 한다. ‘작가가 무엇을 그렸냐’를 파악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건 의미가 없고 내가 본대로, 느낀 그대로가 중요하단다. 아주 쉽고 단순한 논리 같지만, 어느 정도 미술 고수가 되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다.

말레비치가 활동한 20세기 초반 세계 미술은 여러 화파, 주의, 표현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그려지던 시기다.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미술 활동의 목적이던 시대를 지나, 표현의 주체가 색채인가 빛인가를 논하던 시대에 인상주의를 거쳐 야수파, 고흐, 고갱, 입체파 등 여러 미술 사조의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때였다.

이때 말레비치는 기존의 모든 예술 사조에서 빠져나와 그림의 소재를 재현하는 어떠한 행위도 생략해 버리는 독특한 화풍을 제시한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입체파의 추상은 대상을 해체한 것이지 소재를 생략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레비치는 무중력 상태와도 같은 캔버스에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그리고, 단일 컬러에서 느껴지는 물감의 질감과 농도 등을 순수하게 느껴보라고 했다. '완전 추상'에 접어든 것이다.

말레비치는 작품을 보고 대상을 인식하고 서사를 파악하는 기존의 감상법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신만의 감정과 느낌,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는 자발적 감상을 시도해보라 한다. 그러면서 말레비치는 서사적 현실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고 무중력의 우주 공간 같은 새로운 개념의 회화 세상을 창조해냈다.

그런 말레비치 작품을 ‘절대주의(Suprematism) 회화’라 칭한다. 드디어 추상 미술의 새 장이 열린 것이다. 미술사는 그렇게 말한다. 절대주의는 현대 미니멀리즘의 시작이고, 20세기 문화혁명을 일으킨 디자인 산업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을 통해 1백 년 전 말레비치의 천재성을 눈여겨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패드의 디자인도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흡사하다.

'절대주의'에 이르는 화풍의 변천과정

사실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하나, 시기별 말레비치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의 손에서 창조된 ‘본대로 느끼라’는 현대 추상 미술을 내 감상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꽃 파는 여인

꽃파는 여인, 190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국립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레비치는 당시 유행하던 미술 화풍들의 진화를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꽃 파는 여인』은 말레비치 초기 작품으로 사람을 크게 잡고 흐릿한 배경을 뒤로 한 스냅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아련한 느낌의 배경 앞에 꽃을 든 여인을 두드러지게 그렸다. 배경은 원근적인 표현과 함께 빛을 표현한 인상주의 화풍으로 처리되어 꿈틀대는 느낌이 나고, 꽃 파는 여인은 매끈하고 깔끔한 붓 터치로 평평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화폭이 두 개로 나눠지는 느낌을 주고 꽃 파는 여인을 따로 그려 화폭에 붙여 놓은 듯하다. 꼭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여러 화풍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재탄생시키면서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라는 추상주의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그는 '진화'라 표현한다. 이렇게 중심인물을 회화 표면에 가깝게 그리는, 즉 마치 사람을 오려서 붙인 것 같은 방법은 말레비치가 입체미래주의 시절까지 계속해서 발전시킨 3차원적 원근법을 없애는 방식이라 한다.

자화상- 평면성, 강렬한 색채, 말레비치의 초기 초상화

자화상, 1908 또는 1910~1911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종이에 구아슈, 27×26.8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18세기 이전 러시아 그림은 이콘화가 대표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서유럽식 회화가 등장한 것은 표트르 대제의 개혁 후인 170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18, 19세기 두 세기동안 폭발적으로 수많은 양식의 회화를 선보이는 과정을 거쳐 현대 추상주의의 토대를 닦는 쾌거를 러시아 미술이 이뤄냈다.

러시아 이콘화와의 관계

러시아 미술사의 큰 획인 추상주의의 선구자인 말레비치는 러시아 이콘화의 특징을 자신의 그림에 자주 표현했다. 그러므로 현대 회화의 평면성은 러시아 이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추상화의 토대를 닦은 화가들 중 러시아 출신이 많고, 그들은 러시아 이콘화를 현대에 맞게 재현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콘화와 추상화의 연결고리를 그렇게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레비치 자화상은 우선 이콘화가 가지는 정면성을 충실히 따른다(주- 아래 이콘화 참조). 또 얼굴을 반으로 나눠 색채 대조를 표현하면서 하나의 얼굴이 또 다른 얼굴에 덧칠된 것처럼 그려졌다. 초록색 얼굴의 옆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이 또한 독특한 시도로 평면 속의 입체화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자화상의 과감한 색채 표현은 당시 포비즘의 대가인 마티스의 강렬한 색조를 받아들여 시도한 것이다. 이렇게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여러 가지 예술적 시도를 했다. 바로 그가 주장한 예술적 진화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대표 이콘화

구세주의 얼굴, 노보고로트 화파,
블라디미르의 성모, 안드레이 루뷸로프,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입체 미래주의 시기

나무꾼

나무꾼, 1911년, 카사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침내 말레비치의 회화가 사실적 재현을 벗어나 사각형, 십자가, 원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다.

이 그림은 나무꾼과 통나무를 소재로 하나의 통일을 이룬다. 원통 같은 형태로 단순화된 나무와 주인공 나무꾼은 서로 하나로 어우러져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형태를 구분하는 색채의 대조가 두드러져 강한 인상을 준다. 도끼를 잡고 있는 팔이나 신발의 사실성은 말레비치만의 '형식화된 회화 표현의 틀을 깨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인 도형 속에서 사실적인 표현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말이다.

원, 네모 등 간단한 도형만으로 사물을 표현하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은 모든 소재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말레비치가 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표현 기법을 읽어낼 수 있다.

건초 말리기

건초 말리기, 1911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85.8X65.6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동화 나라의 한 장면처럼 색채와 구성이 재미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들이 서로 연결되어 소재를 통일시키고 있다. 특히 색채의 대조를 이루는 소재들은 사실성에서 벗어나 지극히 추상적이며 평면적이다.

『꽃 파는 여인』과 같은 구도로 화면에 바짝 붙여진 것 같은 중앙의 인물은 화폭 전체를 차지하며 그림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중심 인물을 묘사한 『꽃 파는 여인』과 다른 점은 건초 말리기에서의 주인공은 도형화, 단순화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점점 사라지는 듯한 소재들의 크기와 들판의 움직임은 평면화 속에서도 원근성을 나타내고 있고, 그로 인해 지평선이 높은 곳에 설정되어 있다. 사실성을 배제한 말레비치만의 회화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평선 주변의 산, 하늘은 풍경화 같은 느낌도 준다.

회화의 철학화, 사상화

검은 사각형

검은 사각형,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5×79.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드디어 꽃 피운 말레비치의 절대 추상 <검은 사각형>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일련의 작품들을 창작해 내면서 말레비치는 대표작 『검은 사각형』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그림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소재가 있다. 하지만 말레비치는 과감히 소재와 대상의 재현을 배제했다.

원래 이 그림은 말레비치가 1913년에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고안한 커튼 디자인이었다. 하얀 바탕 위에 놓여 있는 검은 사각형. 마치 칼로 자른 듯 명확히 가장자리 처리된 『검은 사각형』은 보이는 그대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림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다.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을 보고 심오한 뭔가를 끌어낼 수 없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해석하면 된다. 즉, 검은 사각형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진 그 감정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 미술의 전환점이 된 『검은 사각형』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던 과거와 결별하고, 무엇과도 닮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 자체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 세계의 재현을 완전히 거부하고 구체적인 형상을 없애 버린 당시 러시아의 새로운 미술을 ‘절대주의(Suprematism)’라고 한다.

가장 성스로운 곳에 걸린 '절대주의'

이 『검은 사각형』은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 0.10’에 출품되었는데, 전시된 위치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는 집안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에 이콘을 건다. 그런 의미를 겨냥하듯 말레비치는 이콘이 걸려야 할 장소에 검은 사각형을 걸어 전시했다. 우

리를 지배하던 기존 관념들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우리 관념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련의 매너리즘을 과감히 버리라고 선언했다.

또, 전시 제목 <0.10>은 대상의 소멸과 부재를 의미하는 ‘zero’라는 절대주의적 주제와 이를 추구하는 10명의 화가들의 전시회라는 의미였다. 이때 쓰여진 수프레마티즘(Suprematism), 즉 '절대주의'라는 용어는 최상의 주도권, 지배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suprematie에서 차용하여 만든 말레비치 고유의 신조어다. '절대주의'라는 용어는 이 전시의 팸플렛 속 <큐비중에서 수프레마티즘까지, 회화에서의 새로운 사실주의>라는 선언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당시 『검은 사각형』이 전시된 모습이다. 그림 속 벽과 벽이 맞닿은 모서리 꼭대기, 『검은 사각형』이 걸린 자리는 일반적인 러시아 가정 집에 이콘이 걸리는 성스러운 곳이며, 손님이 러시아 집을 방문하면 주인과 인사 나누기 전에 그곳을 향해 먼저 성호를 긋는다. 말레비치는 과감히 성스러운 이콘을 내리고 『검은 사각형』을 걸어 새로운 관념의 시도를 꾀한 것이다

이 세상 기본 중의 기본들

검은 십자형

검은 십자형,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79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 부르크.

십자가 또한 사각형에서 비롯된 형태다. 사각형이 여러 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 십자가다. 따라서 절대주의의 비대상적 창조로 가기 위해서 형상들은 먼저 사각형의 상태를 거쳐야 하고, 십자가는 수프레마티즘으로 구성될 수 있는 첫 번째 형식이라고 말레비치는 설명한다.

검은 원

검은 원,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106×105.5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커다란 네모 안에 동그라미, 동그라미 속에 세모, 세모 속의 네모, 세상 모든 만물이 품고 있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 형태다. 또한 『검은 사각형』에서 비롯된 추상 구성의 한 형태다. 구상 요소와 관련된 모든 소재들을 소거해 버린 원. 여기서 말레비치는 완전한 하얀색 배경 속에 들어가 있는 ‘완벽한 원‐순수하고 기하학적인 형 상’을 묘사하고자 했다. 이 『검은 원』은 바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유일의 형태라 할 수 있다.

흰색 위의 흰색

흰색 위의 흰색, 1918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4×79.4cm, 뉴욕시 현대미술관, 뉴욕

기하학적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말레비치는 자신의 저서 『비대상 세계(The Non-objective World)』에 수록된 논문 「절대주의Suprematism」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주의자는 ‘가면을 쓰지 않은’ 진정한 미술에 도달하기 위해, 또 이런 우월한 관점에서 순수한 예술적 감각을 통해 삶을 조망하기 위해, 주변 환경의 사실적인 재현을 의도적으로 포기했다.”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효시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후대 미술가들은 구상 미술을 벗어난 말레비치의 작품으로부터 크게 영감을 받았다. 바넷 뉴먼, 이브 클랭, 애드 라인하르트의 단색 그림들과 엘 리시츠키의 추상화들에서 말레비치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절대주의 구성: 흰색 위의 흰색 1918』을 제작함으로써, 아마도 말레비치는 캔버스 전체를 흰색으로 칠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현재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단색화'의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절대주의 구성

절대주의 구성, 1916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88.5× 71cm, 스위스 개인 소장.

“회화는 오래 전에 죽었다. 그리고 예술가 자신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하얀 바탕에 나열된 파란 정사각형, 검정, 초록, 노랑, 빨강, 주황 직사각형, 그리고 사다리꼴의 분홍 사각형들이다.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아주 제한적인 형태의 도형, 말레비치가 보여주고 싶은 궁극적인 절대주의 표현이다. 그는 최고 진리가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도형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은 2008년 뉴욕 소더비에서 6,000만 달러(629억 5,000만원)에 팔려 러시아 미술 작품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가격으로 기록된 그림이다.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 1928~1932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91×14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불우한 말년...'검은 사각형'에 담긴 예술혼

“부르주아적 퇴폐주의.” 하지만 스탈린 시대에 말레비치는 이렇게 평가절하됐다.

한 무리의 붉은 말이 끝도 모를 넓은 길을 달린다. 그들이 달리는 그 길이 미래를 향한 길인지, 과거로의 회귀를 향한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대주의의 대가 말레비치는 스탈린에 의해 '형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소비에트 미술과의 타협을 강요 받는다.

그 탓에 말레비치는 1920년대 말부터 비구상을 벗어나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 곳곳에 자신의 화법을 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겨놓는다. 그림 곳곳에 작가의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고독을 토로한다. 그런 그를 스탈린은 부'르주아적 퇴폐주의'라 낙인 찍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렇게 불우한 말년을 보낸 말레비치는 1935 년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로서, 보는 예술에서 생각하고 철학하는 예술을 이끌어낸 말레비치는 제자 수틴에 의해 제작된 검은 사각형으로 장식된 관에 묻혔다. 그렇게 <검은 사각형>이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절대주의의 꿈을 저 세상에서라도 이루어내라는 듯 지상에서 말레비치의 마지막 여행길을 함께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경을 지키러 가는 병사들을 주제로 한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는 붉은 깃발을 꽂고 광활한 러시아 대지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말레비치가 실상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이룩한 절대주의의 길을 달리는 미래의 인간이 아닐까.

붉은 기병대가 달리는 다양한 색채의 평면적인 길은 절대주의가 지향하는 바로 그 길이다. 그렇게 말레비치는 사회주의 찬양 일색의 예술에서 벗어나 회화가 지향해야 할 그 길로 붉은 기병대를 달리게 한다. 말레비치가 죽자 러시아 정부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강제 압수하거나 파괴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작품은 20세기 현대 디자인의 표본이 되었다. 또한 후에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