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피치 클락 도입과 주자 견제 제한, 수비 시프트 제재가 이뤄졌다. 모두 경기에 깊숙이 개입하는 규정들이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경기 시간 단축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매년 길어지는 경기 시간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경기 외적인 장면을 줄여 속도감을 높이려고 했다. 동시에 주자들이 뛸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면서 홈런과 삼진, 볼넷으로 획일화된 야구도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뛰는 야구로 투고타저를 완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2012년 이후 11년 연속 평균 3시간을 넘긴 경기 시간이 2시간42분으로 짧아졌다. 점점 줄어든 도루도 경기 당 평균 0.51개에서 0.72개로 늘었다. 그러면서 경기 당 평균 득점 역시 4.28점에서 4.62점이 됐다. 사무국의 노림수가 완벽하게 통한 것이다.
'빨라진 야구'는 또 다른 성과도 불러왔다. 젊은 관중들의 유입이었다.
한동안 메이저리그는 젊은층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지루함을 덜어내자 젊은층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가 자체 제공하는 <MLB.TV>는 18세에서 24세까지 가입자들이 11% 상승했다. 평균 시청층의 연령도 48세에서 44세로 내려갔다. 구장 티켓을 구입한 중위 연령 역시 51세에서 45세로 떨어졌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이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엄청난 변화(seismic change)"라며 반색했다.
맨프레드의 개혁은 끝나지 않았다. 내친김에 더 몰아붙이려는 모양새다. 이틀 전 <ESPN>은 "사무국은 선발 투수가 더 오래 마운드를 지키길 원한다"고 보도하면서 선발 투수가 최소 '6이닝'을 지켜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requiring starting pitchers to go at least six innings every time they take the mound).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선발 투수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10년 전 선발 투수들은 평균 5.97이닝을 소화했다. 선발 투수 완투 118경기, 퀄리티스타트 피칭(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도 2,623경기나 됐다. 그때만 해도 선발 투수는 나오면 최대한 길게 던지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마운드 운영의 골격이 점점 바뀌었다. 단기전에서 강력한 불펜이 힘을 발휘하자, 선발 투수는 중반까지만 막아주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여기에 선발 투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자금력이 약한 팀들은 선발진을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다. 그러자 탬파베이가 불펜 투수를 첫 주자로 내세우는 '오프너' 전략을 꺼내 들었다.

야구는 일종의 카피캣(Copycat)이다. 성공 방식은 다양하게 모방된다. 탬파베이가 오프너로 선발진 공백을 메우자, 너도 나도 오프너를 내세웠다. 불펜 야구가 선발 야구의 대체재로 거듭나면서 불펜 야구는 한층 더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바야흐로 불펜의 시대였다.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들은 평균 5.14이닝을 던졌다. 올해도 5.25이닝에 머무르고 있다. 2014년 100경기를 넘겼던 선발 완투가 지난해 35경기에 그쳤다(퀄리티스타트 1,683경기).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트리플A 역시 선발 투수들의 평균 이닝이 4.3이닝에 불과하다(투수 재활 등판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선발 6이닝 이상 경기
2014 - 3,085경기
2015 - 2,855경기
2016 - 2,637경기
2017 - 2,441경기
2018 - 2,275경기
2019 - 2,085경기
*2023년 1,939경기
사무국은 이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선발 야구를 재건하기 위해 또 한 번 파격적인 규정을 고민 중이다. 단, 예외는 있다. 세 가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선발이 일찍 내려올 수 있다. <ESPN>이 밝힌 세 가지 예외 상황은 아래와 같다.
- 투구 수 100구
- 4자책 이상
- 부상
부상 기준은 애매하다. 그래서 '경기 직후 부상자 명단에 등재돼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될 것이다. 아직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은 더 다듬어야 한다.
사무국의 의도는 이해가 된다. 선발 투수가 최소 6이닝을 책임지면 경기 시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불펜 야구에서 비롯된 투수 교체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 애초에 사무국은 경기 외적인 시간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투수 교체가 잦으면 당연히 경기는 늘어진다.
또한 사무국은 선발 야구의 후퇴가 투수 부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구속 혁명과 회전수 공개로 구위형 투수들이 양산됐다. 여기에 발맞춰 불펜 야구가 대두되면서 투수들이 주어진 이닝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진다. 불펜 야구가 가진 강점이자, 불펜 야구가 낳은 부작용이기도 하다. 사무국은 투수들이 그저 강하게만 던지려고 하다 보니 몸이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추측한다.
선발 투수가 무조건 6이닝을 소화해야 한다면 피칭 스타일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강약을 맞추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탈삼진만 노리는 피칭에서 맞혀잡는 피칭도 곁들여져야 한다. 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면 공만 빠른 '스로워'들이 득실거린다는 지적도 벗어날 수 있다. 6이닝을 완수하려면 '피칭'에 대한 이해력도 뒷받침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선발 야구의 부흥은 스토리라인(Storyline)하고도 밀접하다. 리그가 흥행하려면 스타가 탄생해야 한다. 경기를 지배하는 선발 투수는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10년대 필라델피아의 막강한 선발진은 '판타스틱 4'로 불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팬들은 로이 할러데이와 클리프 리, 콜 해멀스, 로이 오스왈트가 등판하면 열광했다. 사무국은 팬들이 이러한 선발 투수들을 보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철저히 분업화가 된 불펜 야구는 특정 선수가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 어렵다. 선발 야구에 비하면 화제성도 약하다. 근래 가장 유명했던 캔자스시티 '불펜 삼대장'도 포스트시즌이 돼서야 명성을 날렸다.
올해 가장 놀라운 활약을 펼치고 있는 클리블랜드 불펜진도 성적에 비하면 주목도가 아쉽다. 2015년 피츠버그 이후 가장 낮은 불펜 평균자책점 2.69를 기록 중인데(2015년 피츠버그 불펜 ERA 2.67) 불펜의 주역인 헌터 개디스와 케이드 스미스는 여전히 생소한 선수들이다. 그러고 보니 2015년 피츠버그 불펜진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강압적으로 선발 야구를 권고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경기 외적인 부분을 줄인다고 하면서도, 경기 외적으로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려는 행보가 지극히 모순적이다. 자칫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사무국은 6이닝 의무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선발 투수의 수준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모든 팀이 6이닝을 맡을 수 있는 선발 투수를 갖추는 건 힘든 일이다. 오프너도 어쩔 수 없이 나온 계책이었다. 만약 준비가 되지 않은 투수를 내보내서 6이닝을 버티게 한다면 그 내용이 좋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경기의 질적 하락이 예상된다.
부상 방지도 미지의 영역이다. 과연 구속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구속 상승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유망주를 분류할 때 구속을 강조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오면 구속 대신 커맨드에 집중하라는 주문이 통할지 궁금하다. 구속 상승을 막으려면 투수 육성이나 평가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이 역시 변별력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요구다.
선발 6이닝 의무는 그만큼 메이저리그에 선발 투수가 사라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선발 투수를 자체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아무리 불펜 야구가 대세라고 해도 선발 야구의 가치가 더 떨어지면 곤란하다. 선발 6이닝 의무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타개책이다.
맨프레드의 '1차 개혁'은 분명 바람직했다. 당시에도 반발이 심했지만, 반대론자들도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맨프레드의 '2차 개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아직은 출발 단계지만, 맨프레드는 추진 사업을 중간에 물리친 적은 없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발표됐을 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