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충당금 여파에 수익성 주춤, 세대교체 기류…양종희 인사기조 ‘윤종규 지우기’ 부담

올해 12월 31일 임기 만료를 앞둔 김성현 KB증권 대표의 연임 여부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9년부터 KB증권을 이끌며 6년째 장수 CEO 자리를 지켜온 김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올해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데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사 기조가 변수로 작용하면서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김 대표는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현 자리에 오른 인사로 꼽힌다. 그간 윤 전 회장의 색깔을 지우며 조직을 재편해온 양종희 회장의 쇄신 인사 흐름이 이어질 경우 이번 연말 인사에서 김 대표가 교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PF 충당금 적립 여파’ 경쟁사 중 KB증권 나홀로 실적 감소
김성현 대표 체제의 KB증권은 외형상으론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뚜렷한 둔화를 보였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당기순이익은 49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623억원으로 9.3% 줄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충당금 적립으로 인한 일회성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경쟁 증권사들이 잇따라 순이익을 끌어올린 것과는 대비된다.
같은 기간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모두 순이익 상승세를 보인 반면 KB증권만 감소세를 기록했다는 점은 그룹 내부에서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WM(자산관리) 부문이 고객자산 200조원을 돌파하며 성장세를 이어갔음에도 PF 리스크 관리 비용이 전체 수익을 깎아먹었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 부문도 성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초대형 딜 부재로 지난해만큼의 주목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LG CNS 상장 등 굵직한 IPO를 성공적으로 주관했지만 대형 M&A 실적이 부진했다는 게 아쉬운 대목으로 평가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KB증권 실적이 부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업계 평균 성장률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라며 “윤종규 전 회장 시절부터 이어진 ‘투톱(각자대표)’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KB증권은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성현 대표가 IB 부문을, 이홍구 대표가 WM 부문을 맡아 분리 운영하고 있어 사업 시너지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KB증권은 지난 2016년 현대증권을 흡수합병할 당시 조직의 안정적인 결합을 위해 현대증권 대표 출신과 KB투자증권 대표를 공동 대표로 선임한 이후 지금까지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종규 라인’ 꼬리표 부담…양종희 회장 쇄신인사 기조에 연임여부 변수
김 대표의 최대 변수는 실적보다도 양종희 회장의 의중이 지목된다. 2023년 11월 KB금융 회장으로 취임한 양 회장은 ‘안정보다 변화’를 택해 대대적인 인사 쇄신을 단행해왔다. 취임 직후 KB손해보험·KB자산운용·KB캐피탈·KB저축은행 등 주요 계열사 CEO 6명을 교체했고 지난해 12월 인사에서도 은행·카드·생명보험·데이터 계열사 대표 대부분을 바꿨다.
당시 양 회장은 인사 배경에 대해 “불확실한 금융 환경 속에서도 변화와 세대교체를 통한 차세대 리더 육성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기조가 이어진다면 윤종규 체제에서 기용된 김 대표의 입지는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2018년 12월 윤 전 회장의 직접 발탁으로 박정림 전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윤 전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 아래 연임을 이어가며 사실상 ‘윤종규 라인’으로 불려왔다.

반면 양 회장은 취임 이후 윤 전 회장의 인맥 구조를 빠르게 재편해왔다. 특히 2024년 말 인사에서는 ‘윤종규 라인’으로 불리던 CEO 대부분을 교체하며 사실상 윤종규 색깔 지우기에 마침표를 찍는 모양새를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B증권이 그 마지막 퍼즐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양 회장은 계열사 인사에서 실적보다 조직 구조와 인맥 재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KB증권만 예외로 두면 쇄신 기조가 흐트러진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양 회장 역시 임기 3년 차에 접어든 만큼 쇄신보단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기조를 채택할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KB증권처럼 그룹 내 실적 기여도가 높은 계열사 CEO를 굳이 교체하는 것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KB증권은 올해 그룹 비은행 부문 순수수수료이익의 16%를 담당하며 손해보험 다음으로 높은 기여도를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B증권 연말 인사는 단순한 CEO 인선을 넘어 양종희 체제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성현 대표의 연임이 확정된다면 이는 실적 방어력과 그룹 내 기여도에 방점을 둔 ‘안정’ 기조로 볼 수 있고 교체가 이뤄진다면 양 회장이 ‘윤종규 흔적 지우기’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양 회장이 완전한 세대교체보다는 ‘안정 속 변화’로 기조를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김성현 대표의 연임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가능성이 높지만 인사 방향과 철학이 다르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임현범 르데스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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