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상 두번째 대법원 판결 취소..'한정위헌' 갈등 재점화

오효정 입력 2022. 6. 30. 19:06 수정 2022. 7. 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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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1997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법원의 확정 판결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두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와 대법원 사이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특정 해석에 대해 내리는 변형 결정인 한정위헌에 대해 대법원은 “법률해석권은 법원에 있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헌재는 A씨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청구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일부 위헌'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는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 선고를 위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1

헌재, “법원, 한정위헌 결정 따라야”


이번 결정은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A씨 등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2003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통합(재해)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던 A씨는 공무원 신분으로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을 받던 A씨는 자신의 신분을 공무원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대법원은 그 사이 A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무원이 뇌물을 수수했을 경우 처벌하는 형법 제129조에서, '제주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 중에 민간인 위촉위원도 공무원으로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다. 법 조항의 일부분을 집어내는 일부 위헌과 달리 한정위헌은 "법원이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본다.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든 A씨는 법원에 뇌물죄 재판의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한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정위헌은 법률에 대한 특정 해석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것인데, 법원은 법률 해석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A씨는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 중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 부분이 위헌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날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이 법원에 대해서도 기속력이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정위헌 결정이 법 조항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어떤 조항이 특정 영역에 적용될 때 헌법에 합치되는지 살피는 것은 헌재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이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것은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라고도 했다.

또 "헌재의 위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의 재판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다시 심사해 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 소원을 금지한 조항 중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 부분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법원이 A씨의 재심 청구를 최종 기각한 대법원 확정 판결도 취소했다. "법원이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해 재심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은 A씨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하면서다. 다만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확정된 뇌물죄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재판소원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법원 전경. 뉴스1


한정위헌 두고…헌재, 대법원 다시 부딪히나


헌재가 법원 판결을 취소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1997년 헌재는 소득세법 관련 사건에서 사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법원이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헌재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에 대해서도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도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재와 대법원은 한정위헌을 두고 꾸준히 엇갈린 입장을 나타내왔다. 1997년도 재판 취소 이후에도 대법원은 한정위헌 법 조항을 합헌으로 해석해 재판에 적용하기도 했다. 당시 관련 재판에서 대법원은 "합헌적 법률해석을 포함하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헌재가 불가피하게 법원 해석에 앞서 법률 적용 범위를 판단하더라도 법원이 여기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헌재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4심제가 돼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3심제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이후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잘 내리지 않으면서 갈등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25년 만에 헌재가 법원 재판을 직접 취소하고 나서면서, 양 기관 사이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도 나온다. 대법원은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힐지 검토 중이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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