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드롬’, 인문학 위기 구제해 주나…일시적 현상일 수도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 사용 금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등 인문학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은 “노벨 문학상 수상이 인문학 위기에서 벗어날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투자 및 지원자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만 제2의 한강이 배출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교수 10명 중 5명 “인문학 위기 탈출 가능”
동아일보 취재팀은 14, 15일 국어국문학과 교수 1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강 신드롬’이 ‘인문학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들여다봤다.
취재팀과 인터뷰한 국문학자 10명 중 5명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인문학이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설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
송민호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학에 관심이 떨어져) 웹소설 아니면 청년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대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사회적 역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가르쳐 줄 기회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동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책방이나 독서 모임들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문학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며 “다른 작가들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부정적으로 응답한 국문학자들은 ‘인문학 경시’ 현상을 바로 잡아야 제2 한강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소속의 한 교수는 “지난해 (한국문학 관련) 석사 과정 대학원생 6명 전부 외국인이었고 올해도 한국인 지원자는 없었다”며 “한국 학생들을 훌륭한 연구자로 키우고 싶지만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남훈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지방은 인문학 소멸 위기가 더 심각하다”면서 “10년 전과 비교를 해보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1년에 20여 명 남짓했지만, 현재는 아예 없다”고 전했다.
●국민 독서량도 줄어 “인문학 투자 확대해야”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독서량이 줄어들면서 인문학이 설 자리가 줄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명교 연세대 국어국문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독자들과 서양의 독자들과 독서 수준 차이가 있다”면서 “한강의 책도 (한국 독자들은) 다들 어렵다고만 하지만 외국 후기를 보거나 평론을 들어보면 서양에서는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한 명이 1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은 17.2권으로 2014년(21.9권)보다 21.5%나 줄어들었다.
이에 국문학자들은 “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한 국문학자 10명 모두 ‘정부의 인문학 인프라 투자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매우 부족하다”(8명), “부족하다”(2명)고 답했다. 투자가 확대되지 않으면 ‘제2의 한강’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재봉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 문학관에서 1년에 500만 원 나오던 지원금조차 올해부터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부산 금정구에 있는 이 문학관은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받아왔지만 올해부터 예산이 끊겼다. 문학관 관계자는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업을 운영했지만,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중단됐다”고 말했다.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내년 정부 예산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의 ‘최근 10년간 국가 연구개발 예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학 연구자를 지원하는 ‘인문학진흥’의 2025년 예산안은 281억2100만 원으로, 올해 374억8600만 원보다 약 25% 줄었다.
국문학자들은 ‘한강 신드롬’이 제2의 한강을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국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충남대에서) 필수 글쓰기 수업은 단 2학점에 불과한데, 4학점으로 늘리는 등 인문 교양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글쓰기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확대되는 자율 전공제는 실용적인 학문에만 학생이 몰리도록 한다”며 “글쓰기 소양이나 문해력을 기르기 어려운 대학교 교육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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