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에서 본 가죽,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하다 [시차적응]
‘저 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르지’ 국내외 뉴스 속 궁금증을 콕 짚어 새로운 시각에 적응시켜 드립니다.
● 폼페이에서 만난 가죽의 흔적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를 아시나요?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재로 덮인 삭막한 도시로 익숙한 곳입니다. 하지만 지난달 ‘폼페이 고고학 공원 유적지’에서 만난 폼페이는 죽은 도시가 아닌, ‘시간이 멈췄을 뿐’ 살아있는 도시였습니다.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뤄졌던 항구도시 폼페이에는 골목마다 선술집, 빵집, 세탁소부터 극장이나 공중목욕탕, 매춘 업소 등이 들어선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흥미로웠지만, 조금 독특한 공간 한 곳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널찍한 테이블이 놓여 있는 연회장이 보여 처음엔 주택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 커다란 항아리들이 놓인 걸 보니 작업장인가도 싶더군요. 지붕 아래에 커다란 구멍(?)들이 빼곡한 안쪽 방은 정체를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은 눈치채셨나요?
바로 고대 로마인들의 ‘제혁소(製革所)’였습니다. 무두질, 즉 손질하지 않은 생가죽을 매만져 부드럽게 가공하는 공정이 이뤄지는 가죽 공장이었던 겁니다. 원래 주거용 건물이었던 곳이 1세기 중반 제혁소로 탈바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세기 후반에 처음 발굴된 이 공간은 폼페이 고고학 공원과 이탈리아 무두질 협회(UNIC)가 협력해 복원 작업을 한 끝에 지난해 처음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이곳 역시 고대 로마인들이 어떻게 가죽을 가공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업장 같은 입구 회랑에선 가죽을 처음 헹구고, 마지막으로 두드리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커다란 항아리에는 무두질 중 사용된 재료나 가죽을 가공하고 남은 잔여물을 버리거나 재사용하기 위해 모아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를 찾은 것은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가죽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탈리아는 각종 고급 브랜드에서 선호하는 양질의 가죽을 생산하기로 유명하죠.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그 유산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세계인을 초대할 만큼 자부심을 갖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가죽의 변신은 무죄… 밀라노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성·혁신’ 가죽 산업의 미래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40918/130050756/1
● 가죽 산업의 현대적 논쟁: 환경과 윤리
가죽은 인류 역사와 함께 사용된 가장 오래된 소재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도 가죽은 다양한 용도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2022년 4406억4000만 달러(약 605조4834억 원)였던 전 세계 가죽 시장은 2030년까지 6.7%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보이며 7386억10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죽이 입에 오르내린다고 하면 그것은 재료로만 언급되지 않습니다. 환경, 선진국-개발도상국 노동 분업, 동물권 등 여러 문제와 함께 얽혀 있죠. 대체할 자재가 많아졌음은 물론이고, 가죽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까지 들립니다.
가장 큰 비판은 역시 환경 오염입니다. 가죽 산업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시대에 맞지 않는, 뒤떨어진 산업이라는 겁니다. 가죽은 보존 처리를 하기 위해 크롬을 포함한 다량의 화학 물질이 들어갑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체 무두질 과정에서 가죽 1t당 최소 300kg의 화학 물질이 첨가됩니다. 가죽 산업이 세계에서 4번째로 유독 물질을 많이 발생시키는 산업이라는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Green Cross and Pure Earth, 2016).
이밖에도 동물 복지에 대한 우려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질 좋은 가죽을 얻기 위해 공장식 축산과 학대에 가까운 도살이 자행된다며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난 겁니다. 특히 악어나 뱀 등 희귀동물 가죽은 오직 ‘가죽’ 소비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고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죽임을 당하도록 희생된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옵니다.
● 가죽 산업의 반론: 부산물로서의 가죽과 지속 가능성
여기에 가죽 업계의 반응은 어떨까요. 일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무조건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이 나옵니다.
특히 육류 소비의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가죽 산업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의 실천 사례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죽이 육류 소비로 발생하는 거대한 규모의 부산물인 동물 피부를 재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가죽 브랜드 관계자부터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가죽 박람회 행사 안팎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우리가 고기를 먹는 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가죽으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축산업이나 낙농업의 결과로 남은 동물의 피부를 매립하거나 태우는 등 환경에 더 해로운 조치를 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탈리아 고급 가죽 브랜드 다니(DANI)의 PR 매니저 알레시아 자마렐라 씨는 “(가죽 업계는) 지속 가능성이 화두가 되기 전부터 이를 실천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1950년 설립된 전통적인 가죽 기업인 다니는 원피 조달부터 시작하는 가죽 제작의 모든 공정을 관할하는 소수의 가죽 기업 중 하나입니다. 가죽이 만들어지는 환경도 감독할 수 있고, 제작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양과 이산화탄소(CO₂) 및 각종 화학 물질 배출량을 직접 검토하며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올리브’ 산업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재활용한 가죽도 제작 중이라고 합니다.
가죽의 내구성 얘기도 자주 나옵니다. 가죽 업계에서는 합성 소재로 만든 인조 가죽은 자주 사용하면 쉽게 벗겨지거나 갈라지지만, 양질의 천연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몇십 년간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제품 제작 공정에 대한 비교는 논란이 있겠지만, 여러 벌의 플라스틱 소재 옷을 사는 것보다는 튼튼한 천연 가죽 소재의 옷을 사서 계속 입는 게 환경을 생각한 소비라는 주장입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많은 전문가들이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가장 지속 가능한 선택이라고 말한다”며 내구성 측면에서는 천연 가죽이 인조 가죽보다 우월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가죽과 함께 갈 미래는
가죽에서 시작해 가죽으로 끝난 이번 출장에선 가죽 공예가부터 가죽 제품 리뷰 인플루언서까지 다양한 분들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어떤 식으로든 천연 가죽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었는데요. 그중 천연 가죽의 장점을 홍보하는 미국 시민단체 ‘Is it Leather?’ 구성원분과 나눴던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천연 가죽이 왜 좋은지, 왜 인조 가죽보다 나은지 설명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거든요.”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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