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를 버리면 ‘여당’이 살까
‘주가조작’ ‘공천 개입’ 의혹 이어져…‘김건희 특검 이탈표’ 나올지 촉각
용산과 한동훈은 ‘오월동주’ 시각 속 ‘민심’ 따라 ‘손절’ 가능성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영부인 김건희'가 용산과 여의도를 넘어 서초동까지 뒤흔드는 진앙이 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줄줄이 제기되는 가운데, 거야(巨野)는 대통령실을 겨냥한 '특검 열차'를 출발시켰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명품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의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면서 심우정 검찰총장이 용산의 '역린'을 건드릴지에도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장은 김 여사의 방패를 자처하며 야권의 공세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한편에선 '이러다 당도 망한다'는 우려가 읽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형수' 김 여사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다 윤 대통령 눈 밖에 났는데,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민심을 잃은 용산과의 '디커플링'(분리)을 의도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흔들리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사이, 과연 여당과 검찰은 그들의 앞을 지키는 방패가 될까, 등에 꽂히는 칼이 될까.
쌓이는 '의혹'과 '민심' 사이…심우정號 '갈림길'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2021년 12월26일, 김 여사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노여움을 거둬 달라"며 이같이 약속했다.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허위 이력' 논란 등이 불거지자 '조용한 내조'를 약속하며 사태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공언과 달리,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여사의 이름은 연일 '정치 뉴스 1면'을 도배하고 있다. 취임 전후에 김 여사가 만났던 사람들이 '피의자'가 되거나, 김 여사를 공격하는 '고발인'이 되거나, 그의 비선 논란을 제기하는 '폭로자'가 되면서다.
당장 최재영 목사가 불을 지핀 '명품가방 수수 논란'이 정계를 넘어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당초 검찰은 관련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려 했다. 대통령과 달리 그의 배우자는 '금품 수수에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게 검찰의 논리였다. 9월6일 '김건희 수심위'도 김 여사의 불기소를 권고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최 목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심의한 수심위는 최 목사가 2022년 9월 김 여사에게 300만원 상당의 명품가방을 건넨 전후로 부탁한 통일티브이(TV) 재송출 등을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청탁'으로 판단했다. 청탁금지법에선 공직자의 배우자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엔 공직자 본인에게 신고 책임이 있다.
두 수심위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가운데, 심우정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현직 영부인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일단 검찰 수뇌부가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진 못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수심위의 권고는 강제성도 없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수심위 판단대로라면 명품가방을 건넨 최 목사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돼야 하고, 이를 받은 김 여사는 불기소돼야 한다. 그러나 최 목사만 기소한다면, 일종의 대향범(상대방이 있어야 성립되는 범죄) 관계인 김 여사에 대한 불기소 처분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김 여사를 둘러싼 '공천 개입' 논란까지 터져 나왔다. '뉴스토마토'는 김 여사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매체는 김 여사의 '메신저'로 명태균씨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명씨가 김 전 의원으로부터 한동안 세비 절반을 매달 건네받았다는 내용의 녹취를 공개했다.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소리'는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과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22대 총선 경기 용인갑 경선에서 김 여사가 공천관리위원이었던 이철규 의원을 통해 이원모 전 비서관 공천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직 '의혹'에 그치는 상황이다. 김 여사가 직접적으로 발신한 메시지, 음성이 담긴 '스모킹건'(범인을 가리키는 결정적 증거)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준석 의원은 "공천 개입까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명씨도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여사는 오히려 '김영선 의원을 공천해줄 힘이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해 본인이 불만을 표현한 것인데 이를 뉴스토마토가 잘못 보도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이철규 의원은 "한 개인의 망상에 기초한 허구의 발언이며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범죄행위로 끝까지 단죄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관련자들의 부인에도, 고발장을 받아든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수사에 착수했다.
대선 전부터 제기됐던 이른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현재진행형이다. 김 여사와 유사한 의혹을 받는 '전주'가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사건의 '2차 주포'인 김아무개씨가 도피 중에 썼던 편지도 JTBC를 통해 공개됐다. 김씨는 김 여사의 '계좌 관리인'으로 지목된 블랙펄인베스트 직원 민아무개씨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가장 우려한 김건희만 빠지고 우리가 달리는(구속되는) 상황"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관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수사 개시 직후 김 여사 명의의 휴대전화로 수십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공개됐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표는 김 여사가 아닌 김 여사 쪽 회사 직원과 통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 조서에는 '김건희와의 통화'로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언제까지 용산 뒤치다꺼리" 달라진 與…깊어지는 속앓이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에 여권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가뜩이나 '의·정 갈등' 이후 민심이 얼어붙은 가운데 대통령실발(發) 악재까지 '설상가상' 튀어나오면서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의 민심 이반을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데이터 심층 분석 도구인 썸트렌트(SomeTrend)로 9월19일부터 25일까지 블로그 및 뉴스 등에서 김 여사에 대한 감성 연관어를 도출한 결과, '의혹' '범죄' '비판' '강행' '혐의' '논란' 등 부정 언어가 90%에 육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여당의 '약한 고리'가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야당은 끊임없이 김 여사 관련 논란을 엮어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맹공할 것"(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 문제를 직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김종인 전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 "김 여사 논란은 유·무죄를 떠나 윤 대통령이 추구해온 '공정과 상식'의 가치와 정면충돌하는 계기가 됐다"(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여사 리스크'를 야권의 부당한 정치 공세라고 항변하는 여권 지도부 일각에서도 '이재명의 민주당 데자뷔'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여사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데 당이 총력을 쏟느라 정작 '당을 위한 일'은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지도부 한 관계자는 "격차해소특위 발족, 여의도연구원 개편 등 당은 민생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런데 언론의 시선은 다 대통령실에 가있다"며 "최근 '용산 뒤치다꺼리'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친한(親한동훈)계의 인내심도 임계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대통령실이 여사 탓에 악화된 민심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한 대표가 제안한 '독대'를 거절한 게 불만을 키우는 촉매제가 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9월2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독대를 요청했다면 (한 대표가) 여·야·의·정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누셨겠지만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지 않으셨을까"라며 "당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하고 대통령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심우정의 '반란' 가능할까
달라진 여당 기류에 '김건희 특검법' 이탈표가 발생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김 여사와 관련된 주요 의혹들을 수사하는 '김건희 특검법'은 9월19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다시금 국회로 넘어오게 된다. 재의결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야당이 모두 찬성(192석)한다는 전제로, 국민의힘에서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오면 법안은 가결된다. 법안이 결국 부결되더라도 '소수의 반란표'라도 나온다면, 야당은 이를 '김건희 특검법' 재추진의 동력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당은, 한동훈은 김 여사를 등질 수 있을까. 일단 '오월동주' 관계인 두 사람의 결별은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 여사의 몰락이, 윤 대통령의 위기가, 한 대표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셈법에서다. 김 여사를 향한 특검이 전개되는 순간 야권의 '대통령 탄핵' 시계는 빨라지고, 윤석열 정권이 실패하면 차기 대선의 추는 급격히 '한동훈의 국민의힘'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재에 따르면, 한 대표는 지난 총선 당시 측근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윤 대통령과의 갈등설에 대해 "우리(대통령과 나) 중 한 명이 죽고, 한 명만 사는 시나리오는 없다"는 취지로 '공생의 불가피성'을 말했다고 한다.
변수는 '민심'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강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의 동반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만약 그 하락 추이가 '김 여사 논란' 탓에 가팔라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대선을 앞두고는 '김 여사와의 결별'을 주장하는 당내 여론이 확산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총선 대패로 '민심'을, 전당대회에서의 친윤(親윤석열)계 참패로 '당심'을 잃은 상태다.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캠프에서 일했던 여권 인사는 "다음 총선과 대선을 노려야 하는 '직업정치인'들이 20%대 민심을 업은 '계약직 대통령'의 말을 듣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는 심우정 검찰이 '용산'과 '여사'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심 총장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지만,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치며 '존재감'을 과시한 역사는 정권을 막론하고 반복되어 왔다. 검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을 구속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여야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해 대통령의 측근을 포함한 정치인과 기업인을 대거 기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 역시 문재인 청와대를 수사하며 '별의 순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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