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저널] F1 파워 유닛의 현재와 미래
내연 엔진(Internal Combustion Engine, ICE)은 현존 에너지 자원 중 에너지 밀도가 높고 채취가 쉬운 석유로부터 두 세기 가까이 안정적으로 동력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기계 메커니즘이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자동차=수레+내연 엔진’이라는 명제는 참이었다. 하지만 전기 모터가 내연 엔진을 대체하는 지금, 이 명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거짓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신재생에너지가 유한한 화석 연료를 대체할 것이다’라는 전망은 이제 미래학자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는 상식이다. 내연 엔진은 더이상 자동차의 필수 요소가 아니다. 만약 원자로나 핵융합 토카막(Tokamak)을 지금의 자동차 엔진 크기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면 자동차 엔진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라이버의 왼발과 오른발
덩그러니 놓인 엔진 블록을 두고 우리는 ‘자동차’라 부르지 않는다. 어떤 탈것이 ‘자동차’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동력 기관이 생성하는 동력이 바퀴까지 기계적으로 전달되는 동력 전달 메커니즘, 즉 자동차의 최소 단위인 ‘파워트레인(Powertrain)’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의 종방향 운전은 전적으로 이 파워트레인을 제어하는 작용이다.
두 개의 풋 페달로 가속/감속을 제어한다는 사실에만 방점을 찍으면 일반 자동차와 F1 레이스카의 파워트레인엔 별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속도가 빨라지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속도가 준다.
하지만 F1에 HEV 방식 하이브리드 엔진이 도입된 2014년 이후 F1 파워트레인 제어는 일반 자동차의 그것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드라이버의 풋 페달 신호를 받은 ECU가 제어하는 유닛은 ① 750마력의 파워를 생산하는 내연 엔진(ICE), ② 제동 중 버려지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발전(G)하다가 가속 시 전기 모터(M)로 변신해 160마력 파워를 더하는 모터-제너레이터 유닛(MGU), ③ 후륜 브레이크 액츄에이터, 이렇게 셋이다. ECU는 브레이킹 <그림 1>과 스로틀링 <그림 2> 상황에 맞게 이 세 유닛 사이의 파워 비율을 조절한다.
자전거로 이해하는 F1 레이스카의 감속
자동차의 동력 계통을 이해함에 있어 자전거는 늘 유용한 참고 모델이다. 자전거의 동력 계통은 자동차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단순하지만, 자전거는 원동기 동력이 없을 뿐 온전한 드라이브트레인(Drivetrain)을 가진 이동 수단이다. 사이클리스트가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구르기 시작하면 드라이브트레인에 동력이 입력되고 이로써 온전한 파워트레인이 구성된다. 만약 사이클리스트의 뇌가 육체적 피로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뇌가 인지하는 자전거는 모터사이클과 다를 바 없다.
일반 자전거는 사이클리스트가 달리다가 페달링을 멈춰도 드라이브트레인이 잠기지 않고 계속 회전하는 프리휠(Freewheel)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보통의 자전거에서 동력입력을 멈추는 것, 즉 페달링을 멈추는 행위는 즉각적 제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하는 위치에 정지하려면 반드시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 프리휠 드라이브트레인이 장착된 자전거에서 브레이킹과 페달링은 서로 완전히 독립된 행위다. 일반 자동차의 파워트레인은 자전거의 프리휠 드라이브트레인처럼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기 전까지 유의미한 제동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타이어의 마찰과 엔진 브레이크 때문에 감속 효과가 나타나지만 짧은 시간 동안 큰 감속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한다. 일반 자동차에서도 브레이킹과 스로틀링은 사실상 서로 독립적이다.
내리막길에서 공짜 활강을 즐기다 내리막 끝자락 사거리 신호등이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려는 걸 발견한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당겨 내리막 구간에서 붙은 속도를 줄인다. 일반 자전거에는 앞뒤 바퀴 모두에 브레이크 패드가 달려 있고 이로부터 케이블로 연결된 좌우 레버를 당겨 전후 브레이크를 잡는다. 좌측 레버가 앞바퀴, 우측이 뒷바퀴 브레이크라면 우리는 양손의 악력을 조절해 앞뒤 축에 생기는 제동력을 원하는 만큼 배분할 수 있다. 앞뒤 바퀴 전체 제동력에서 앞바퀴만의 제동력이 차지하는 비율을 ‘브레이크 발란스(Brake Balance)’라고 부른다.
일반 자동차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전륜과 후륜브레이크 캘리퍼(Caliper) 피스톤에 작용하는 압력의 비율, 즉 브레이크 패드에 발생하는 마찰력의 비율을 조절함으로써 브레이크 발란스를 설정한다.
프리휠 드라이브트레인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고정 기어(Fixed Gear)를 사용하는 자전거 드라이브트레인도 있다. <그림 3>의 픽시(Fixie)라 불리는 이 고정 기어 드라이브트레인에는 프리휠 메커니즘이 없다. 뒷바퀴 허브와 스프로킷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일단 주행을 시작하면 사이클리스트는 페달링을 멈출 수 없다. 뒷바퀴가 회전하면 페달도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에서도 여전히 페달을 굴러야 한다. 앞으로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어렵지만 페달을 뒤로 굴리면 이론상 뒤로 달리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사이클리스트가 픽시 자전거의 페달링을 멈추면 즉각 뒷바퀴가 잠긴다. 달리던 자전거는 관성으로 계속 달리려 하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자전거를 완전히 정지시키려면 순전히 몸의 무게와 다리 근육으로 크랭크가 회전하려는 관성을 버텨야 한다. 픽시 자전거에도 앞바퀴에 브레이크가 있긴 하지만 주된 브레이킹은 뒷바퀴 로킹(Locking)을 통해 이루어진다. 픽시 자전거에서 페달링과 뒷바퀴 브레이킹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동작이다. 그리고 브레이크 발란스도 사이클리스트가 브레이크 레버로 조절할 수 없다. F1 레이스카의 파워트레인은 ‘일반 자전거’와 ‘픽시 자전거’ 모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주행 상황에선 후자인 픽시 자전거에 더 가깝다.
F1 레이스카의 파워트레인은 레이스 모드에서 가속 페달신호가 5% 미만이면 브레이크 페달 신호와 상관없이 엔진크랭크에 브레이크를 건다. 엔진의 토크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크랭크축과 에너지 회수 장치(ERS)를 잠시 연결해 발전기를 돌린다. 크랭크축의 에너지가 MGU를 통해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고 결과적으로 브레이킹 효과를 만든다.
속도를 줄여야 할 때 ERS의 제동력만으로 충분하면 드라이버는 굳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오버런(Overrun)으로 불리는 엔진 브레이크 효과가 더해진다. 만약 이 둘의 합보다 더 큰 제동력이 필요하면 드라이버는 그제야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물리적 제동력을 늘리면 된다. 실제로 ‘F1 파워 유닛’ 도입 후 마찰 브레이크에 대한 의존은 크게 감소했다. ECU는 브레이크 발란스 설정값에 따라 전후 제동력이 배분되도록 후륜 브레이크 라인에 설치된 액추에이터를 정밀하게 제어한다.
바이-와이어, 자유를 선물하다
ERS 사용 여부는 ECU 소프트웨어에서 쉽게 제어할 수 있고 ‘사용 안 함’을 선택하면 ‘일반 자전거’ 모드로 전환된다. F1레이스카에서 가능한 이 같은 세팅의 유연성은 모든 컨트롤메커니즘이 기계적으로 연결되었던 과거의 자동차들에선 불가능했던 특징이다. 고전 자동차에선 엔진 스로틀을 여닫는 ‘버터플라이(Butterfly)’와 가속 페달이 케이블로 직접 연결돼 있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케이블이 당겨지는 만큼 스로틀이 열렸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유압 실린더 압력이 커져 캘리퍼 피스톤을 밀었다. 따라서 가속 페달 위치와 엔진 반응, 브레이크 페달 위치와 브레이크 반응은 항상 일정했다.
현재 케이블 방식의 가속 페달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시중에 거의 없다.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가속 페달과 버터플라이 사이의 물리적 연결을 끊고 이를 전자 유닛과 액추에이터로대체하면 자유로운 스로틀 매핑(Throttle Mapping)이 가능함을 항공기에서 배웠다. 바로 ‘바이-와이어(By-Wire)’ 기술이다. ‘바이-와이어’는 기존에 물리적(기계적) 장치가 하던 조작을 전기 전자 제어 기기로 대체하는 기술을 통칭한다. 이 기술은 항공기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전선을 이용해 하늘을 난다’는 뜻에서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자동차 스로틀에 변용되면서 ‘드라이브-바이-와이어(Drive-by-Wire)’란 이름으로 불렸다. 전기 입력 신호의 형태와 세기를 바꾸면
액추에이터의 움직임을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와이어 기술은 컨트롤 엔지니어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자유를 허락한다. 자동차 산업은 이 기술의 활용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급기야 브레이크 페달과 브레이크 캘리퍼 사이의 물리적 유압 라인을 끊고 이를 전자적 유닛으로 대체했다. ‘브레이크-바이-와이어(Brake-by-Wire)’의 탄생이다.
F1 파워트레인의 제어
F1 레이스카의 가속 페달과 엔진 스로틀, 브레이크 페달과 후륜 브레이크 유압 시스템 사이에는 물리적인 접촉이 없다. 스로틀 페달은 단지 ECU로 전달할 0에서 100% 사이의 전기 입력 신호를 생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힘은 그 압력이 전륜 브레이크로만 직접 전달되고, 후륜 브레이크는 별도의 전기 신호를 받아 액추에이터가 생성하는 압력으로 작동된다. 드라이버가 밟는 페달 깊이와 그에 따른 엔진/브레이크의 반응은 바이-와이어를 통해 자유롭게 설정된다. 컨트롤 엔지니어는 페달 위치에 따른 엔진/브레이크 반응을 지도(Map)로 조절한다. 이 지도는 지형 지도의 등고선처럼 좌푯값을 주면 이 좌표에 해당하는 반응의 세기를 알려준다. 입력 신호 변화에 따라 지형의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는 지도를 입력하면 레이스카는 가속/브레이크 페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호남평야처럼 평평한 지도를 입력하면 레이스카가 가속/브레이크 페달 신호에 무디게 반응한다. 이 지도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쉽게 바꿀 수 있어서, 엔진과 브레이크의 반응 특성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간혹 레이스 도중 F1 드라이버가 핸드 휠의 버튼 세팅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운전 조건에 적합하거나 코너 공략에 유리한 엔진, 브레이크, 디퍼런셜 맵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 활성화된 맵에서 드라이버 페달 신호에 해당하는 엔진/브레이크 토크 요구값(Torque Demand)을 읽고, 이 값을 자동차의 뇌인 ECU에 입력하면 ECU는 항상 아래의 등식이 성립하도록 ICE, MGU, 후륜 브레이크 액추에이터를 능동적으로 제어한다.
F1은 2026년부터 파워 유닛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파워 유닛의 작동 원리는 현재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다. ICE 메커니즘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F1이 말하는 변화란 무엇일까?
F1의 새로운 실험-지속 가능한 연료, 순탄소 중립, 엔진 효율 향상
F1의 궁극적 목표는 F1 레이스, 생산 설비, 부대 행사, 인력 이동, 물류 이동을 포함한 F1 이벤트가 환경 및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탄소 중립 F1 ‘Carbon Neutral F1’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략적 이상향일뿐 2026 F1 기술규정으로 드러난 구체적 변화는 앞으로 F1 엔진이 완전하게 지속 가능한(Sustainable) 합성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료는 농업 폐기물 등에서 추출된 재생 알코올, 수소, CO2를 결합해 합성되며, 식량 원료와 경쟁하지 않아 식량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바이오연료 사용의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롭다.
F1 연료는 또 전체 라이프 사이클 동안 순탄소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순탄소 중립이란 연료 원료의 조달부터 ICE에서의 연소/배기에 이르는 사이클 동안 추가적인 CO2가 대기로 방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연료 생산 과정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이를 연료 생산에 사용한다. 연료가 엔진에서 연소될 때는 원래 포집된 CO2와 동일한 양이 방출되도록, 즉 순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듦으로써 탄소 중립을 유지한다.
2026 규정에 따른 F1 내연 기관(ICE) 열효율 목표는 50% 이상이다. ICE의 열효율이 높아지면 동일한 출력 생산에 소비되는 연료 양이 줄어, 단위 에너지 당 CO2 배출량이 감소한다. 또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MGU 파워를 470마력 이상으로 높이고, 에너지 회수량과 재사용량을 키움으로써 연료소비와 탄소 발자국을 줄일 예정이다.
F1의 이 실험이 성공하면 1) F1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인류의 노력에 동참하면서 2) 현재와 같은 고성능의 경주를 유지하고 3) 순탄소 배출 없는 ICE 하이브리드 엔진의 새 역사를 열게 된다. 거센 전동화 물결에 밀려 세상에서 곧 사라질 것만 같던 내연 엔진이 F1을 통해 탄소 배출 걱정 없는 친환경 동력원으로 극적으로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글 / 김남호 (르노 알핀 F1 팀)
출처 / 오토저널 202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