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의 ‘두 국가론’이 놓치고 있는 것

김창수 2024. 10. 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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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사실상 두 국가이지만 이를 표현하지 않고 동시에 통일 지향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두 국가론’ 논쟁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있다.
9월19일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의원은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느닷없는 통일 논쟁이 정국을 달구었다. 9월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자로 나선 임종석 전 의원은 “지금 현실에서 남북이 통일 논의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하자”라며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기했다.

평화를 강조한 임 전 의원의 발언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 취지만 본다면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가 내려놓자고 했던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임종석 전 의원은 두 국가론을 제시하며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이념 논쟁에 불을 댕겼다. 9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통일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갑자기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 추진 의무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발상이다”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9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국가론을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제공

남과 북은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이후부터 실질적으로 두 국가였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모순은 역사를 공유한 같은 민족의 분단에서 비롯한다. 남과 북이 두 국가라고 명시적으로 밝혀도 남북은 결코 두 국가일 수 없는 운명공동체와 같은 관계이다. 두 국가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언젠가는 이뤄야 할 통일 지향성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두 국가를 선포한 순간 미래 비전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우리 헌법 전문에서는 ‘대한국민’들에게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이 문구는 유신헌법 때 신설되어 이후 개헌 때 수정되지 않았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이 구절을 유지하면서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평화적 통일’ 조항은 1919년 4월 발표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추구해온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평화적 통일’은 대한민국 100년 역사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담은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정부도 이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과 북이라는 두 국가가 화해 협력 단계를 거쳐 연합을 이룬 단계를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했다. 필자는 1994년 김대중 당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과 PC통신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PC통신 채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김대중 이사장에게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 가운데 어느 단계를 통일로 볼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김대중 이사장은 “2단계인 남북 연합 단계를 ‘사실상의 통일’로 볼 수 있다”라고 답했다.

햇볕정책을 대북정책으로 규정한 이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이란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기초해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방안이다. 1단계 화해 협력, 2단계 남북 연합, 3단계 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2단계 남북 연합은 실질적으로 두 국가 관계다. 하지만 남북 연합은 남과 북이 적대적인 대결을 화해 협력 관계로 바꾸고 평화 정착을 이뤄 공존공영하는 상태를 말한다. 두 국가이지만 화해 협력과 공존공영을 하면 한 국가로 통일하지 않더라도 통일 상태나 다름없으므로 이를 ‘사실상의 통일’로 여기자는 뜻이다. 사실상의 통일은 이후 김대중 정부의 핵심 정책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가 ‘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했던 것은 현실적으로 남북이 두 국가이지만, 통일 지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통일정책이 아니라 ‘대북정책’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두 국가라는 현실성과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상충하자 해법을 찾은 표현이었다.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에 대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동의한 바 있다. 2000년 6월14일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은 “대통령께서는 완전 통일은 10년 내지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완전 통일까지는 앞으로 40~5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완전 통일’은 뒤로 미루고 화해 협력을 우선하자는 김 대통령의 구상에 동의한 셈이다. 두 정상의 동의는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에 반영되었다.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와 통일의 관계를 더욱 분명히 밝혔다. 2008년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 특별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나는 평화를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라며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평화가 먼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화통일 전략의 내용입니다”라고 ‘평화 우선’을 강조했다.

이처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남과 북은 실질적으로는 두 국가이지만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가 아니라고 정의했다. 그렇다고 당장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모순이 남북 관계가 처한 특수성이다. 역대 정부는 이 특수성을 고려해 통일을 지향하되, 통일보다 평화를 우선해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역대 민주 정부가 통일을 내세우기보다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을 추구했던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평화 우선’도 남북 관계는 두 국가이지만 통일 지향성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만들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 두 국가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적대적 두 국가로 만들지 않기 위한 해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10·4 남북공동선언에는 남북 정상회담, 남북 총리회담, 경제분야 부총리회담, 국방장관 회담, 장관급 회담, 의회 만남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 등이 담겼다. 이러한 각종 대화 채널이 남북 연합의 토대이다. 당시 한반도 화약고인 서해에서 남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가 평화 정착을 위한 알짜배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국가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북한과 더욱 정교한 합의를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오직 평화’를 내세웠다. ‘통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통일을 언급할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참모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고민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통일보다 사이좋은 이웃이 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통일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평화공존을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사이좋은 이웃’도 남북이 두 국가라는 현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두 국가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전략적 언어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 정착이 우선이라는 역대 민주 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아 비핵화, 평화 체제, 불가침, 상호 군축, 9·19 군사합의 등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했다.

2018년 9월20일 백두산에 함께 오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내외. ⓒ사진공동취재단

물거품이 된 역대 민주 정부의 해법

한반도 문제는 북한 핵 문제, 유엔 대북 제재와 같이 남북 당사자들로만 풀기 어려운 수준으로 국제화되었다. 남북 체제는 각각 발전의 속도까지 달라져 상이성 또한 커졌다. 같은 민족이지만 이질성과 대립에 따른 불신감도 증대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 따라 남북문제는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을 이어받기 어려울 정도로 남남 갈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런 까닭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오직 평화 노선이 결실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두고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밝혔다(〈시사IN〉 제852호 ‘교전국 관계라는 낯설고 심각한 위기’ 기사 참조).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을 바탕으로 두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 기반을 조성한다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한 역대 민주 정부의 해법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다시 출발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대북정책의 재검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서부터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철학과 노선 계승, 미래 지향성,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정책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계승과 미래 지향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실존하는 두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 지향성이라는 상충하는 가치를 함께 담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비전이 북한이 선포한 ‘교전 중인 두 개의 적대 국가’보다 비교우위를 차지해 평화 공존하는 이웃으로서 남북 관계를 안착시켜야 한다.

사실상 두 국가이지만 이를 표현하지 않고 화해 협력과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 지향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두 국가론’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답이 없고 끝도 없는 논쟁에 빠질 것이다. 평화를 우선 기조로 삼으면서 국민적인 합의 기반을 넓혀야 한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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