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에서 시작된 경제 한파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수백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체류 문제로 체포되면서 배터리 공장 완공이 지연된 데 이어, 이제는 127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지 공장들까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골판지 수요의 급감입니다.
피자부터 가구, 전자제품까지 모든 소비재 상품이 골판지 박스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골판지는 실물 경기의 온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경기 침체의 전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27년 역사 공장들이 잇따라 문 닫는다
지난 9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최대 포장 상자 제조 업체인 인터내셔널 페이퍼가 지난달 조지아주의 두 곳 공장 가동을 중단한 사실을 전하며 이를 소비 심리 위축의 신호로 짚었습니다.
인터내셔널 페이퍼의 사바나와 라이스보로 골판지 공장이 이달 말 영구적으로 문을 닫으면 미국은 약 8개월 만에 전체 골판지 생산 능력의 9%를 잃게 됩니다.

이는 지난 2009년 경기 침체 기간 줄어든 골판지 생산 능력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장기간 포장재 애널리스트로 일해온 아담 조셉슨은 신문에 "지금까지 이 정도 규모의 폐쇄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127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터내셔널 페이퍼는 지난 4월 루이지애나주 캠프티에 있는 대형 공장을 폐쇄한 데 이어 조지아 공장도 폐쇄하기로 한 것이죠.
팬데믹 이후 최저치, 1인당 배송 20% 급감
골판지 상자 배송은 팬데믹 기간 정점을 찍은 이후 2016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셉슨 애널리스트는 미국인 1인당 상자 배송이 1999년 정점 대비 20%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자 상거래가 일반화된 시대에 이처럼 단기간에 골판지 수요가 급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인터내셔널 페이퍼의 최고 경영자 앤디 실버네일은 이달 초 투자자들에게 올해 골판지 수요가 1%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2%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을 수정했습니다.
불과 몇 주 만에 3%포인트나 하향 조정된 것입니다. 이는 소비 심리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냉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골판지가 경기 바로미터인 이유
피자, 가구, 전자 제품까지 사실상 모든 소비재 상품이 골판지 박스로 포장된 뒤 배달된다는 점에서 골판지는 실물 경기 온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골판지 수요는 곧 소비 활동의 직접적인 지표인 것이죠.
아마존 박스든, 가전제품 포장이든, 가구 배송이든 모든 물류의 중심에 골판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골판지 수요가 급감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2009년 금융 위기 당시에도 골판지 생산 능력 감소가 경기 침체의 선행 지표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럼프 관세 전쟁이 부른 나비효과
골판지 제조 업체들은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수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소비 지출도 약화됐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관세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제조 비용이 증가했고, 동시에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에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주택 시장도 침체되면서 건축자재 및 가전 제품 포장재뿐 아니라 박스 운송 수요도 감소한 것이 골판지 수요 위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택 경기가 얼어붙으면 이사 수요가 줄고, 이사 수요가 줄면 가구와 가전 구매가 감소하며, 결국 이 모든 것이 골판지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조지아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 신호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수백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체포되면서 현지 배터리 공장 완공이 최소 2~3개월 지연된 데 이어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제지 공장들마저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미국 내 골판지 수요 급감은 조지아주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 신호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조지아주는 미국 남동부 지역의 제조업 허브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력 부족 문제, 관세로 인한 비용 증가, 소비 침체가 동시에 겹치면서 제조업체들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이 조지아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009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신호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폐쇄 규모입니다.
8개월 만에 전체 골판지 생산 능력의 9%가 사라진다는 것은 2009년 경기 침체 기간에 줄어든 생산 능력의 두 배에 해당합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무너지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산 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기간 포장재 산업을 지켜본 애널리스트조차 "이 정도 규모의 폐쇄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골판지 제조업은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이지만, 일반적으로 점진적인 조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규모 공장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는 제조업체들이 단기적인 경기 조정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요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소비가 식어가고 있고, 조지아에서 시작된 이 한파는 이제 전국으로 번져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골판지 공장 폐쇄라는 작은 신호가 예고하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경제 위기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