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변화, 메르세데스-벤츠 드림 라이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제주에서 '드림 라이드(Dream Ride)' 이벤트를 열었다. 메르세데스-AMG를 포함해 이들이 드림카라 자부하는 모델들을 제주에서 차분히 경험할 기회였다. 

메르세데스-벤츠에게 있어 드림카는 어떤 존재일까? 일반적인 브랜드에 있어 드림카는 선망의 존재다. 타인이 선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고객 본인이 갖고 싶어 선망하는 자동차. 그래서 손이 닿을 듯 말듯 싶어 하루에도 수십 번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물이다. 그런데, 메르세데스-벤츠는 남다르다. 드림카의 인기가 독보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마티아스 바이틀(Mathias Vaitl)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드림카들은 한국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어요. 한국은 마이바흐, AMG, S클래스를 포함한 최상위 라인업에서 글로벌 3위 시장으로 자리 잡았죠. 한국 고객의 럭셔리에 대한 이해와 기대는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제품의 모든 면에서 최상의 수준을 기대하죠. 이러한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동력이자 책임입니다. 드림카를 포함한 다양한 모델들을 선보이면서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메르세데스-AMG 국내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증가했다. 각 모델의 판매량을 자세히 살펴보면 SL은 112%, CLE는 98%, G-클래스는 123% 늘었다. 여기에 올해 5월에는 메르세데스-AMG GT의 2세대 모델이 추가됐으니 확실한 성장세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럭셔리 모델들이 왜 이렇게 많이 팔리는 걸까? 직접 시승하며 궁금한 점을 풀어보기로 했다. 

메르세데스-AMG GT 2세대 : 일상에 초점을 맞춘 변화  
필자는 메르세데스-AMG GT 1세대(이하 1세대 GT)를 사랑했다. 모든 부분을 날카롭게 다듬어 운전자를 시험하는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코너에 뛰어들 때 차체의 거동과 타이어의 상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조작에 따른 반응이 빠르고 분명했다. 물론 약점도 있었다. 승차감이 아주 단단했고 운전자의 실수에 예민했다. '레이서가 만든 자동차'를 표방하는 모델이라 일상보다는 트랙을 달릴 때 더욱 빛이 났다.
반면 메르세데스-AMG GT 2세대(이하 2세대 GT)는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시승한 모델은 GT 55 4MATIC+. 길이×너비×높이 4,728×1,929×1,354㎜, 휠베이스 2,700㎜로 1세대 GT와 비교하면 182㎜ 길고, 10㎜ 좁고, 66㎜ 높다. 휠베이스도 70㎜ 늘었다. 이처럼 몸집을 키운 덕분에 실내 공간이 한층 여유롭다. 2+2 배치의 뒷좌석이 새로 생겼고, 트렁크 공간도 1세대 GT의 두 배에 달하는 675L로 늘어났다. 
GT 55 4MATIC+의 엔진은 V8 4.0L 바이터보. 최고출력 476마력을 5,500~6,500rpm에서, 최대토크 71.4㎏·m을 2,250~4,500rpm에서 낸다. 9단 멀티클러치 변속기(MCT)를 맞물려 네바퀴 전부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9초 만에 가속하고, 최고속도는 시속 295㎞다. 성능만 따져보면 버럭대는 자동차가 떠오르지만, 일상 주행은 확실히 1세대 GT보다 편안해졌다. 승차감이나 힘을 분출하는 방식이 부드러워져서다. 
메르세데스-AMG의 V8 4.0L 바이터보 엔진에는 특유의 질감이 있다. 엔진의 고동감, 굵직한 소리, 등을 떠미는 강한 힘을 즐기며 느긋하게 달리니 여유로운 기분이 든다. 확실히 1세대 GT보다 노면 충격을 삼키는 능력이 좋아졌다. 다만 노면의 단차가 있어 커다란 충격을 받는 곳에서는 충격을 완전히 거스르진 못했다. 서킷 주행의 비중이 높은 모델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자 엔진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단단해진 서스펜션은 노면의 정보를 더욱 세세하게 전달한다. 빠르게 코너에 진입해 방향을 바꿀 때의 과정이 상당히 재빠르고 안정적이다. 그런데 방향을 연이어 바꾸며 가속을 보챌 때 차체의 뒷부분이 빠르게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후륜 조향 시스템이 개입하는 덕분이다. 똑똑한 자동차가 운전자의 생떼까지 받아주는 기분이다. 
주행 템포를 한껏 높여도 마찬가지였다. 굉음을 내면서 화끈하게 속도를 높이지만 거동이 안정적이라 불안함이 없다. 패들 시프트를 연신 튕기며 단수를 낮출 때는 연신 팝콘 튀기는 소리로 흥을 돋운다. 운전의 재미를 더하는 부분은 살리되 날 선 부분을 덜어내 다루기 쉽고 편안한 모델을 만들었다. 기존 모델 대비 더욱 대중적인 방향으로 발전했고,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도 갖췄다. 

그럼에도 메르세데스-AMG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2세대 GT처럼 고성능을 쉽게 다룰 수 있고 운전이 재미있는 자동차를 만든 것은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진정 운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레이서가 만든 자동차임을 내세웠던 1세대 GT의 치열한 감각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후 등장할 더욱 성능을 높인 모델에서 그 날카로운 느낌을 다시 만끽하고 싶다.

메르세데스-AMG SL : 줄어든 배기량, 늘어난 가성비 
우리는 자동차를 각자의 기준 아래 판단한다. 그런데, 판단의 기준에는 자동차를 경험한 시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오래전부터 메르세데스-벤츠를 경험했다면 클래식 모델의 매력을 우선순위로 올릴 확률이 높다. 나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의 4세대 SL을 동경했다. 그래서 7세대로 거듭난 메르세데스-AMG SL을 바라보는 기분이 조금은 생경했다. '세상에, SL마저 직렬 4기통 2.0L 터보라니…'
메르세데스-AMG SL 43의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421마력을 6,750rpm에서, 최대토크 51.0㎏·m을 5,000rpm에서 낸다. 9단 멀티클러치 변속기(MCT)를 맞물려 뒷바퀴를 굴리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7초 만에 가속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78㎞다. 충분 이상의 넘치는 성능이다. 그러나 난 의구심을 품었다. 감성의 영역이란 숫자로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지붕을 열고 가속 페달을 꾹 밟아 달려나가는 순간 의구심이 바람에 씻기듯 날아갔다. SL에 기대했던 풍요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SL 43의 가속은 빠르고 매끄럽다.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의 회전수를 끝까지 높여도 거친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터보 엔진 특유의 저회전부터 고회전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힘을 즐기게 됐다. 언제든 여유롭게 가속할 수 있으니 운전도 느긋해졌다. 

거친 노면에서의 승차감도 부드럽다. 노면의 충격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실력이 뛰어난데, 2세대 GT와 비교하면 한결 나긋하다. 트랙도 충분히 달릴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일상에 중심을 두고 만든 자동차답다. 회전수를 올릴 때마다 들려오는 엔진음과 배기음도 과격하지 않고 적당한 정도다. 듣는 재미만 따지면 2세대 GT가 더 낫다.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이 목청을 쥐어짜도 V8 4.0L 바이터보 엔진에 비하면 소리가 얇다. 

굽이진 길에서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달렸다. 조금 더 단단해진 서스펜션이 평형을 유지하면서 재빠른 방향 전환을 돕는다. 방향 전환이 즉각적인 데다 반응도 일관적이기에 자신 있게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엔진회전수를 마음대로 조절하며 코너를 파고들고, 모든 힘을 쏟아붓듯 코너를 탈출하길 반복했다. 운전이 어느새 놀이가 됐다. 쉽게 다룰 수 있는 고성능 모델의 장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2세대 GT와 7세대 SL을 연이어 운전하니 두 대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크게 느껴졌다. 두 모델 모두 2+2 구조다. 그리고 편안한 그랜드 투어러(GT, Grand Tourer)로 어필한다. 하지만 운전의 감각은 사뭇 다르다. 2세대 GT에는 박력이, 7세대 SL에는 세련미가 있다. 단순히 쿠페와 컨버터블의 차이가 아니다. 모델별 성격이 분명하니 취향에 맞는 쪽을 고르기 쉽다. 

메르세데스-AMG SL 43을 타면서 정말 단순한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편안함과 운전의 재미는 상극이 아니다. 부드럽고 깔끔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델이 SL 43이었다. SL 43의 가격은 1억 5,560만 원이다. 기존의 SL 63 4MATIC+이 2억 3,360만 원이었으니 7,800만 원이 저렴하다. 1억 넘는 자동차에 가성비를 운운하자니 이상하지만, 박력 넘치는 엔진 대신 사뿐하게 달릴 수 있는 엔진을 얹고 이 정도 돈을 아낄 수 있으면 엄청난 가성비 아닐까? 

메르세데스-AMG G 63 : 편안함에 상식 외의 주행 성능을 더하다

우리나라는 G-클래스가 정말 많이 팔리는 나라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을 살펴보면 G-클래스가 5위다. G-클래스가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이콘의 이미지다. 오래도록 원형의 강인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 G-클래스를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힙합 뮤직비디오의 단골 모델이 된 지도 벌써 수십 년이다. 

사실 진짜 이유는 승차감이 아닐까? 세대별 G-클래스의 승차감 차이는 상당하다. 2세대는 거칠고 단단한 티를 냈다. 매끈한 포장도로를 달려도 승차감이 나긋하진 않았다. 반면 신형 G-클래스는 일상을 함께하기 충분할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여기에 강력한 주행 성능까지 더한 메르세데스-AMG G 63은 상식 외의 주행 성능을 자랑한다. 분명 크고 무거운 모델인데 가뿐하게 달린다.

 G 63의 엔진은 V8 4.0L 바이터보. 최고출력 585마력을 5,500rpm에서, 최대토크 86.7㎏·m을 2,500~3,500rpm에서 낸다. 9단 멀티클러치 변속기(MCT)를 맞물려 네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은 4.4초, 최고속도는 220㎞다. 느긋하게 항속 주행을 즐길 때는 V8 엔진의 고동감 넘치는 소리가 실내로 파고든다. 일반적인 SUV처럼 노면의 충격을 적당히 받아내면서 차분하게 달린다. 

하지만 굵직한 배기음과 멋진 디자인이 전부는 아니다. 메르세데스-AMG가 매만진 자동차답게 화끈하게 가속하고, 빠르고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가령 일상 주행에서는 무게를 의식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끝까지 짓이기면 공차중량 2,635㎏의 덩치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내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브레이크 성능도 강력하다. 원하는 만큼 정확하게 속도를 줄이고 코너에 뛰어들 수 있다.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 대응하는 모델답게 스티어링 휠을 조금은 많이 꺾어야 조향이 시작된다. 컴포트 모드에서 코너를 진입할 때면 차체가 기운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면 차체의 기울임이 확실히 줄어든다. 방향 전환은 빠르기보다는 정확한 쪽이다. 안정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가속할 때는 네바퀴 모두가 지면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신호와 함께 뛰쳐나간다. 무거운 덩치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궤적을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주행 성능에 놀랐다.

G-클래스의 존재 의미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 달릴 수 있는 전천후 주행 성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굳이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엔진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메르세데스-AMG G 63의 상식 이상의 주행 성능을 경험하고 나니, 고성능차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강력한 성능과 개성을 더해 평범한 일상의 이동에도 재미를 더하는 것이 메르세데스-AMG의 매력이다. 

넓어진 럭셔리의 개념, 대중 지향적인 변화 

세 대의 메르세데스-AMG를 경험하고 나니 시대의 변화가 느껴졌다. 고성능차는 세대를 거듭하면 편해지고 있다. 이는 럭셔리의 변화를 반영한 부분이다. 예컨대 과거의 고성능차는 엄격했다. 제대로 다루려면 운전 실력이 필요했고 이는 진입 장벽이 됐다. 제대로 마음먹고 즐기는 사람만 누릴 수 있던 럭셔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럭셔리는 과거와 비교하면 한층 대중적이다. 고성능차 시장의 경우 쉽고 가볍게 누리길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규모가 커졌다. 따라서 라인업의 범위도 넓어졌다. 기본 모델은 편안한 운전에 초점을 맞추되, 상위 모델은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그래서 조금 순한맛이 된 메르세데스-AMG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가끔 운전의 재미를 고봉밥처럼 눌러 담은 매운맛 자동차 한 대씩만 내주면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