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방직기를 만들던 토요타는 어떻게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됐나

- 토요타 창업주 탄생 100주년 맞아 1994년 개관한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 수동 방직기부터 토요타 자동차의 첨단 기술까지 한 눈에

<카매거진=최정필 기자(나고야) choiditor@carmgz.kr>

나고야시 니시구에는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토요타 자동차의 창업주 ‘토요다 키이치로’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 1994년 개관한 토요타의 역사 박물관으로, 지금까지 70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짧게는 한 그룹의 역사를, 넓게는 일본 산업의 발전사를 볼 수 있는 뜻 깊은 공간이다. 언제나 짧은 역사로 인해 발전하기 급급했던 국내 브랜드에서는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장소기도 하다.

토요타 그룹의 시작은 창업주 ‘토요다 사키치’로부터 시작됐다. 그룹의 이름은 창업주에서 따왔다. 그런데 회사 이름은 ‘토요타(TOYOTA)’로 부르는 반면 창업주 일가의 이름은 ‘토요다(Toyoda)’로 표시한다. 그 배경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여러 시장에서 모두 좋은 발음과 톤으로 읽힐 수 있도록 마지막 글자를 살짝 바꿨다는 것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도 ‘도요다’ 내지는 ‘도요타’ 등으로 불리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의 로비에는 원형 직기가 전시되어 있다. 회사의시작이 자동차와 같은 첨단 기술의 집합체가 아닌 천을 만드는 ‘방직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관 역시 ▲섬유기계관 ▲자동차관 등 2개로 나뉘어져 있다. 로비의 원형 직기는 1924년 제작된 것으로,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기계로 알려졌다.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붉은 벽돌 또한 다이쇼 시대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그대로 활용하며 만들어진 역사의 상징이다.

섬유기계관은 토요다 사키치가 회사를 세우기 전 사용했던 오래된 방식의 직조기부터 시작한다. 가로로 배치되는 씨실과 세로로 배치되는 날실을 차례대로 쌓아가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는 날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씨실을 하나하나 끼워넣어 당기는 방식이다.

이를 자동화 하는 방식에서 탄생한 것이 1924년 개발된 G-형 자동직기다. 실을 사람이직접 교체하거나 추가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이 2대의 자동직기를 관리할 수 있었던 것에서 그 규모를 늘려가는 과정이 모두 담긴 결과물이었다. 현재도 잘 알려진 재봉틀 회사 ‘브라더’에서도 탐낼 정도의 기술이 담겼었던 G형 자동직기는 기계적 및 기술적 의미를 인정 받아 기계 유산으로 등록됐다.

창업자 ‘토요다 사키치’의 장남이었던 ‘토요다 키이치로’는 방직기를 넘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지금의 ‘토요타 자동차’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자전거의 뒷바퀴에 작은 엔진을 장착하는 것으로 시작한 그는 현장에 직접 나서며 사업을 이끌었다.

그 결과물이 될 ‘뻔’했던 것이 1936년 토요타 AA형 승용차다. 철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 토요다 키이치로는 나무를 이용해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철판을 올려 두들기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어찌보면 단순하고 미련해보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달랐다. 토요타자동차가 현재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노즈쿠리,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제조 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AA형 승용차는 결국 출시되지 못했다. 산업 발전과 정부의 요청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토요타자동차는 트럭 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고장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토요다 키이치로는 트럭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지체 없이 엔지니어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 담당 어드바이저의 설명이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시니어 어드바이저 오쿠가와 미치타카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시니어 어드바이저 오쿠가와 미치타카는 “오랜 기간 토요타 자동차에서 설계 기획 등을 담당하다 퇴직 후 이 곳으로 왔다”면서 “내가 일하며 직접 봤던 기술의 역사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꽤 가슴 벅찬 일이다”고 설명했다.

토요타 자동차는 이후 1955년, 크라운을 시작으로 고급 자동차를 비롯해 다양한 차종 개발에 나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산 기술에 대한 발전도 함께 이루어졌다. 철판의 모양을 잡는 프레스 공정, 차체의 각 부위를 접합하는 용접 공정, 색을 입히는 도색 과정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제조 단계에 대한 발전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물을 가득 채운 와인잔을 차에 올려둔 채 시동을 걸며 정숙성을 강조했던 토요타의 자신감은 모두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서 나온 근거 있는 행위였던 셈이다.

약 한시간 반. 그룹의 긴 역사를 모두 살피고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각각의 과정을 설명하는 직원들의 눈빛에는 자부심이 담겨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산업기술 기념관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들은 과거 직접 사용했던 장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접 경험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금의 토요타 자동차와 토요타 그룹을 만들어낸 원동력임을 자부할 수 있는 이유다.

끊임없이 단련해온 결과. 그들이 말하는 ‘모노즈쿠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장인정신의 계승이다. 이 것이 토요타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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