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하면 끝을 보고야 만다. 시리즈 드라마를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만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10회 정도의 시리즈물을 시작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시즌 1부터 4편까지 각각 10편 그러니까 무려 40편이 이어지는 드라마에 단단히 빠졌다.
첫 시즌은 2018년 말에 공개되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까 두려워 넷플릭스를 몇 달 전에야 가입했는데, 기어코 나의 시간 도둑 시리즈물이 나타난 것이다.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너의 모든 것(You)’를 플래이 시켰다. 한 달여 만에 40편의 모든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그리고 이번 달에 공개되는 마지막 시즌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다.
조(Joe)는 뉴욕의 한 서점에서 일한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성에 첫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인사를 나누며 알게 된 여자의 이름, 백(Beck)으로 SNS를 검색해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가 건너편에서 창문을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이 소름 끼쳤다. 한 회 한 회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경악하다가 어느 사이 나는 그를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몰입해 있었다. 왜 이렇게 까지 몰입하는 거야…. 청각에 민감하고 나긋한 목소리에 약하기 때문일까?
조 골드버그 역할을 맡은 펜 배질리(Penn Badgley)의 귀에 바로 속삭여 주는 듯한 목소리, 미묘한 감정이 다 느껴지는 듯하고 불안한 듯한 눈빛과 몸짓.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들. 모든 것들을 조 골드버그의 머릿속의 내레이션이 끌고 간다.
즉, 조의 목소리가 드라마인 셈이다. 나는 어.쩔.수.없.이 그의 생각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따라갔다. 조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그에게 동화되어 그의 살인조차 정당하게 느껴질 만큼 몰입하다가, 내가 마치 그와 공범이 듯한 느낌마저 들고 만다. 그러고는 이 드라마는 영어공부에 딱인 드라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응? 직업병인가? 방대한 시청시간에 대한 정당성 찾기인가)
주인공 조(Joe)의 모놀로그는 살아있다
그의 모놀로그는 철저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보다 보면, 듣다 보면 하릴없이 그에게 맘을 열게 되고 만다. 그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말을 거는 듯한 방식으로 마음속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풀어낸다. 나와 동일시하며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벡(Beck)을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옷차림, 몸짓과 행동을 관찰하며 탐정과도 같이 분석한다. 대화가 아닌 마음속의 생각을 대화처럼 “당신(You)”라고 표현하며 대화를 하는 듯 이끌어간다.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키진 않을까 괜히 맘을 졸였다. 동시에 이렇게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모놀로그가 담긴 이 드라마가 훌륭한 영어 공부 재료가 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 골드버그의 모놀로그가 훌륭한 영어학습재료인 이유
1. 1인칭 시점에서 "너(You)"를 사용하는 방식
조는 자신의 시선으로 상대를 관찰하고 해석하며, 그 집착의 대상을 ‘너’라고 직접 부른다.
청자 없는 혼잣말 같지만, 시청자를 그의 시선 안에 끌어들이는 말투로 몰입을 유도한다.
"You didn’t know it yet, but you were mine."
넌 아직 몰랐겠지만… 넌 내거었어.
(시즌 1, 1화)
📘 영어학습 포인트
- 청자를 상정한 말하기
→ 스피치, 프레젠테이션 표현 훈련
- 감정이 담긴 2인칭 관찰 표현 익히기
2. 왜곡된 자기합리화
조는 자신의 위험한 행동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폭력적이면서도 자신을 구원자처럼 믿으며, 도덕적 갈등을 감정의 언어로 덮어버린다.
"I’m doing this for us. This is love."
이건 우리를 위한 거야. 이게 바로… 사랑이지.
(시즌 2, 2화)
영어학습 포인트
감정 + 논리를 섞은 자기 설득형 문장 훈련
3.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어조
조는 자신의 사랑과 집착을 문학적 인용과 철학적 개념으로 포장한다.
지적인 말투로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감정과 논리를 동시에 끌고 간다.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love means slowly losing your mind."
사랑은… 참을성 있고, 사랑은… 다정하지. 그리고 사랑은… 서서히 미쳐가는 거야.
(시즌2, 10화)
📘 영어학습 포인트
-인용 리듬이 있는 문장 구조 익히기
-감정 + 개념적 추상어 사용 훈련
4. 날카로운 관찰력
조는 상대의 말투, 옷차림, 주변 분위기까지 읽어낸다.
분석적인 말투 속에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듯한 단호함이 담겨 있다.
"Who are you? Based on your vibe, a student. Your blouse is loose. You're not here to be ogled, but those bracelets... they jangle. You like a little attention." (Season 1, Episode 1)
"넌… 누구지? 느낌으로 봐선… 학생. 셔츠는 느슨하고… 일부러 시선 끌려고 입은 건 아니야. 근데… 그 팔찌들, 들리네. 소리… 달랑달랑. 관심 좀 받고 싶은 거잖아… 살짝은."(시즌1, 1화)
📘 영어학습 포인트
분석+묘사+판단 어휘 패턴 학습
5. 심리적 이중성과 불안정성
조는 겉으로는 침착하지만 속은 충동과 불안으로 요동친다.
모놀로그는 그의 내면 균열을 그대로 드러내며, 감정이 폭발 직전까지 다가가게 만든다.
"Why is this my pattern? Do I just destroy everything I touch?"
왜 이게… 내 패턴이지? 내가 닿는 건… 다 망가지는 건가…
(시즌 4, 에피소드 5)
📘 영어학습 포인트
감정 어휘 + 심리적 의문 표현 연습
리듬 변화에 따라 말하기 억양 훈련
6. 자문자답 형식
조는 스스로 묻고 답하며 독백 속에서 방향을 잡아나간다.
그 흐름은 때론 설득이고, 때론 자기 위로처럼 들리며, 내면의 파문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Am I crazy? No, I’m not crazy. I’m in love. And love makes you do crazy things."
내가… 미친 걸까? 아니야, 아니야. 난 미친 게 아냐. 난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시즌1, 1화)
📘 영어학습 포인트
-자문자답 흐름을 통해 사고를 말로 정리하는 연습
-감정 리듬이 담긴 반복형 문장 연습
'너의 모든 것(YOU)'이 좋은 영어 학습 재료인 또 다른 이유
시즌별 배경 변화 – 다양한 문화와 영어 억양 노출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살 수 없게 될 때마다 조는 이사를 하고 신분을 위장한다. 시즌 별로 조의 활동 지역이 달라진다. 시리즈 안에서 그려진 캘리포니아 부유한 지역 사람들의 분위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사람들에 관한 평가가 등장인물들 사이에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시즌 4에서는 영국으로도 도피한 조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영국인들 속에서 정체를 들킬까 불안감에 흔들리고 휩싸이는 모습은 이제 안쓰러울 지경이다.
🌍 너의 모든 것(You) – 시즌별 배경 변화와 영어 억양 차이
시즌 1 – 뉴욕
배경: 뉴욕의 오래된 서점과 도심 속 일상
언어 스타일: 빠르고 직설적인 북동부 영어
시즌 2 – LA
배경: 햇살 가득한 로스앤젤레스, 새로운 삶의 시작
언어 스타일: 부드럽고 여유로운 웨스트코스트 억양
시즌 3 – 교외 마을
배경: 교외 마드레 린다, 겉치레 가득한 가족 중심 사회
언어 스타일: 위선적인 PTA식 대화, 겉과 속이 다른 말투
시즌 4 – 런던
배경: 런던 상류층과 대학 강사로 살아가는 조의 이중생활
언어 스타일: 영국식 억양과 세련된 표현
덕질은 영어공부의 원동력!
조에 그렇게나 몰입해서 시즌4까지 몰아치듯 드라마를 흡수하고 나니, 조(Joe)를 연기한 펜 배질리(Penn Badgley)가 궁금해졌다. 몇 년에 걸쳐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그는 온전히 괜찮은지. 토크쇼를 찾아 그의 인터뷰를 듣기 시작했다. 진정한 덕질이 시작되었다. Netflix 계정을 구독하니 알고리즘이 알아서 펜의 지난 영상도 가져다준다. 마지막 촬영날의 이야기라니 궁금해져서 또 보고 만다.
끊임없이, 재미있게 해야 하는 영어공부를 위해 마지막 시즌인 A KILLER GOODBYE가 공개되는 4월 25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영어를 사용하고 어떤 내레이션을 들려줄 것인지. 시간을 버린다는 마음의 가책 하나 없이 시리즈를 즐기게 해주는 조의 내레이션. Thank you, Joe!
글쓴이_엘리
코너소개 - 언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통번역가로 두 언어를 연결하며 경험한 일과 언어가 만나게 해 준 세상의 매력들을 나눕니다. 작가소개 - 통번역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통역사로 먹고살기’의 저자이며, 마음이 통하는 작가들과 공저<세상의 모든 청년>에도 함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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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 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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