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커플은 왜 신혼부부 청약 못하나요..불붙은 '가족의 정의' 논쟁

정세진 기자 2022. 9.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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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사실혼·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라는 건강가족기본법상 가족 정의를 유지한다고 밝히면서 가족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건강가족기본법은 국가가 가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본 이념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법규"라며 "기타 법에서 가정을 규정할 때 기본이 되는 것이 건강가족기본법인데 여기서 가족 규정을 수정하지 않고 동거와 사실혼 가정 지원을 늘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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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A씨(27)는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이다. 결혼 전제로 한 동거는 아니다. 결혼한 여느 커플만큼이나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지만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진 못한다. 신혼부부 주택담보대출이나 주택청약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A씨 커플은 항공마일리지도 공유할 수 없다.

여성가족부가 사실혼·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라는 건강가족기본법상 가족 정의를 유지한다고 밝히면서 가족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시민단체와 동거커플 당사자들은 "법에서 건강가족을 정의하면서 사회적 인식은 물론 제도적 지원에서도 차별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여가부는 사실혼이나 동거가족을 상대로 실질적 지원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해 4월 비혼 동거 커플이나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 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했다. 가족 정의하는 법 조항을 삭제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방지 근거를 만든다는 취지다.

그러나 앞선 발표와 달리 여가부가 지난 24일 현행 건강가족기본법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요즘은 주변 친구들을 보면 결혼을 한 후에도 출산 전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부부도 결혼식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세입자가 있는 집을 사서 임대차 계약이 끝날 때까지 식을 올리기 전에 5개월간 동거했다"고 했다.

박씨 주변 지인들은 출생신고를 하기 전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기 전에 대다수가 혼인신고를 한다. 출생신고 때 '혼인중의 출생자'와 '혼인외의 출생자'를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2660가구다. 비친족 가족원은 101만51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중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다. 친구끼리 살거나 결혼하지 않은 동거 가구 등이 포함된다.

출생신고시 혼인여부를 기록해야 한다. /사진=출생신고서 양식애푠

건강가족에 대한 관념이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동에 대한 구분에서 볼 수 있듯이 행정과 제도 차원에서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정부가 건강가족을 정의하는데 우리가 지원하는 한부모 가정은 건강하지 않은 거냐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며 "법에서 가족의 형태를 정하다 보니 미혼모는 건강가족이 아니고 지원을 위해선 한부모 가정이라고 따로 규정해서 지원하고 있다"며 "한부모 가정이 지원을 받기 위해선 사실혼 관계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동과 여성만으로 가정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건강가족기본법은 국가가 가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본 이념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법규"라며 "기타 법에서 가정을 규정할 때 기본이 되는 것이 건강가족기본법인데 여기서 가족 규정을 수정하지 않고 동거와 사실혼 가정 지원을 늘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법과 가정폭력 처벌법 등에서 나오는 가족의 정의는 결국 건강가족기본법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수술에 동의할 수 있는 보호자 범위와 면회권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가정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때도 사실혼 등 다양한 관계를 포괄하지 않는 가족 정의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했다.

여가부는 이같은 문제는 건강가족기본법이 아닌 민법 등 개별법률을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사실혼, 비혼 동거 가족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상속 등에 관한 부분은 민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고 출생신고시 혼인 관련 부분도 가족관계등록법이 규정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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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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