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린 부모가 돈까지 뜯어갔다 [더 보다]
1.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고 자녀를 시설에 맡긴다. 2. 수년을 시설에서 자란 아이가 후원금 등 수천만 원을 모아 만 18살의 나이로 퇴소한다. 3. 부모는 아이가 미성년자임을 노려 아이의 돈을 자신의 통장으로 옮긴다.
드라마에 있을 법한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돈을 뜯기는 아이를 농담처럼 '토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간도 빼준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별주부전에서 토끼는 무사히 도망쳤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입니다.
■보육원, 부모 있는 아이가 가는 곳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앞서, 먼저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고아원이라고 불리던 곳, 보육원엔 부모 없는 아이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요즘 보육원엔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 들어온 아이가 가장 많습니다.
실제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 보호대상아동'은 2,054명 발생했습니다. 발생 원인별로 보면 학대가 785명(38.2%)으로 가장 많습니다. 그 뒤로 부모 사망 270명(13.1%), 미혼 부모·혼외자 259명(12.6%), 부모 이혼 232명(11.2%)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유기의 경우 88명에 불과했습니다.
부청하/상록보육원 원장
초창기엔 이제 진짜 고아, 부모가 없는 애들이 많았죠. 최근 들어서는 이제 이혼 가정이 늘면서 이혼 가정에서 들어왔었고요. 지금 와서는 이제 학대, 엄마, 아빠가 있는데 학대받아 온 애들.
■보육원 그 후, 7년의 이야기
드라마 같은 실제 사례, 26살 강우혁 씨가 겪은 일입니다.
1. 강 씨는 지난 2010년 동생과 함께 서울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당시 12살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강 씨는 부모님의 이혼 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합니다.
2. 보육원에서 강 씨는 가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가수 허각 씨의 '하늘을 달리다' 무대를 본 순간부터 그 꿈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용음악과 진학을 위한 돈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보육원에서 나올 때쯤 강 씨 통장엔 2천만 원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덕분에 회사에서 모았던 급여, 보육원 퇴소비, 디딤씨앗통장, 용돈 등을 합친 돈이었습니다.
3. 친부는 강 씨가 보육원을 나가야 할 나이, 만 18살이 되자 형제를 데려가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친부가 강 씨를 가장 먼저 데려간 곳, 은행이었습니다. 친부는 관리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2년 뒤 대학 진학을 위해 돈을 돌려달라고 얘기한 강 씨. 강 씨는 그제야 돈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당시 친부의 차가 바뀌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강 씨는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러곤 이번엔 자기 발로 친부의 품을 벗어났습니다. 길거리를 전전했고, 아무도 오지 않는 건물 한편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 씨 부친은 강 씨가 보육원에 있을 때부터 강 씨 통장에서 돈을 빼간 것이 확인됐습니다. 강 씨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착취의 고리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보통 보육원에선 후원받은 돈을 아이 계좌에 넣어줍니다.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부모가 버젓이 살아있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계좌를 만들기 위해선 부모가 직접 은행에 동행하거나,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신종근/한국아동복지협회 권익위원장
부모님들이 비밀번호를 다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이분들이 필요할 때 이제 통장 해지하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방법이 없어요.
<녹취>
임한결/변호사
친권이 아직 박탈되지 않았거나 한다면 부모의 동의 없이는 통장 개설도 어렵고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아동을 해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런 구조적인, 법적인 허점이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태조사 전무…해법은?
이런 사례, 얼마나 많은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서본 적도 없습니다. 그나마 보육원 관계자, 보육원을 퇴소한 아이들, 아이들을 위해 힘쓰는 변호사 모두 정말 많다고 입을 모을 뿐입니다.
신종근/한국아동복지협회 권익위원장
시설마다의 사건들은 있는데, 그걸 종합적으로 한 거는 협회에서 아직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 전수조사 개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강우혁/26살
애들 퇴소할 때쯤에 부모가 찾아와서 돈 받아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엄청 많다고 들었어요.
임한결/변호사
구하라법은 사실 1년에 그런 사례가 몇 건이나 될까요? 그러니까 자녀가 먼저 죽고 자녀의 재산이 많은 사례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근데 이거는 진짜 많아요.
보육원들도 이런 피해 사례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장을 만들 때 부모님 도장 대신 기관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부탁하곤 합니다. 혹은 아이 이름 옆에 기관 이름을 병기할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모두 부탁일 뿐입니다.
대책은 없을까?
보호대상아동과 자립준비청년 관련한 일을 많이 하는 임한결 변호사는 '신탁 제도'를 얘기합니다. 제3의 기관이 희망하는 아이들의 돈을 관리해주는 개념입니다.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등 안정적인 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물론 의사결정은 본인이 합니다. 이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임한결/변호사
당사자의 이해 관계인 내지 의사결정 보조인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들이 같이 입회하에 신탁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요. 그래서 돈을 내가 쓰고 싶을 때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겁니다. 신탁을 맡겼지만, 이 돈의 주인은 아동이 되겠죠. 요청할 때 이해 관계인에게 한 번 통보도 하고, 그리고 정 내가 신탁하기 싫다고 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지도 할 수 있습니다. 월에 얼마씩 내가 받겠다, 내가 이번에 다쳤기 때문에 의료비로 크게 한 번 빼서 쓰겠다, 내가 여행을 가고 쓰겠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절차가 있으면 훨씬 더 조심하게 되겠죠.
어른에게 여러 차례 상처 받는 우리 아이들, 그럼에도 꿈을 노래하는 우혁 씨의 외침은 오늘(15일) 밤 10시 20분, KBS1TV <더 보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버스 전용차로 ‘쌩쌩’ 내달리더니…암행단속에 줄줄이 ‘덜미’
- 일가족 탄 차량 추락 1명 숨져…고속버스 분리대 충돌
- 광주서 남성 분신 추정 사고…부산에선 여성 숨진채 발견돼
- “택시 덜 기다리고 지하철 더 안전하게”…교통약자 챙기는 AI
- 기후변화 덮친 차례상…“삼색나물 못 올려요”
- 아이돌 딥페이크 피해도 ‘심각’…“누구나 접근·제작”
- “야간 응급실에 의사 1명 뿐”…지금 응급의료 현장은 [르포]
- 미국,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 폭탄’…“표심 잡기 전략”
- “원하지도 않았는데 ‘노출 사진’ 합성”…‘AI 오류’ 논란
- 우주에서 ‘스타워즈’ 음악 바이올린 연주…오케스트라와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