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호날두는 중동에서 행복할까? [경기장의 안과 밖]
스타는 스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또 한번 화제를 몰고 왔다. 8월21일 ‘UR 크리스티아누(UR·Cristiano)’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는데, 1시간29분 만에 100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유튜브 역대 최단 시간, 가장 빠른 속도였다.
유튜브 측은 당일 골드 버튼을 호날두에게 전달했다. 골드 버튼은 100만 구독자 채널에 수여하는 증표다. 채널 개설 당시 영상 10개가 업로드된 것으로 보아 호날두와 유튜브가 사전에 채널 개설과 홍보 활동을 함께 준비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힘을 얻는다. 호날두는 이미 SNS상에서 슈퍼스타로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X(옛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팔로어 숫자를 합치면 9억명이 넘는다. 파급력이 큰 스타인 만큼 유튜브 측의 ‘특별관리’는 당연한 일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화제가 다시 화제를 몰고 오는 격이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 700명가량이 달성한 1000만 구독자 도달에 12시간이 채 안 걸렸다. 8월28일 현재 구독자 5000만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초 업로드 동영상은 조회수 3000만, 댓글 11만 개를 돌파했다. 유튜브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축구 경력을 떠나 스타로서의 존재감과 상업적 매력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물론 정곡을 찌르는 반응도 있다. ‘메시는 코파 아메리카 타이틀을 얻었는데, 호날두는 유튜브 골드 버튼을 수상했다’는 일침이다. 호날두의 오랜 라이벌 리오넬 메시는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2024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정상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메시는 2021·2024 코파 아메리카, 2022 카타르 월드컵 등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같은 시기 열린 월드컵과 유로2024에서 호날두의 포르투갈이 각각 8강에 머무른 것과 비교된다.
21세기 축구계의 양대 산맥을 이룬 두 선수의 황혼기는 대조적이다. 메시는 대표팀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며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2022 월드컵에서 독보적이었다. 메시는 16강부터 결승까지 4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올리며 38년 만에 월드컵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다. 축구 역사상 최초의 ‘단일 대회 토너먼트 전 경기 득점’ 기록이었다.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배경은 ‘메시 키즈’다.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대표팀 후배들이 메시에게 왕관을 씌우겠다며 똘똘 뭉쳤고, 아르헨티나는 다시 황금기를 맞았다.
반면 호날두는 유로2016 우승이라는 영광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부진을 반복하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과 유로2024 두 대회에서 그가 기록한 득점은 페널티킥 1골에 불과했다. 개인 활약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를 의미하며 SNS에서는 염소 이모티콘으로 표현) 경쟁도 사실상 종결됐다는 평가다.
대표팀뿐만 아니라 소속 팀에서도 호날두와 메시는 대조적인 방향을 걷고 있다. 호날두는 2022년 마지막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나스르에 입단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해지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당시 그는 에릭 텐하흐 감독과의 갈등으로 언론 인터뷰에서 저격성 발언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호날두는 유럽에 남길 원했지만 독불장군인 그를 영입하려는 팀은 없었다. 그때 알나스르가 무려 2억 유로(약 2700억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호날두는 유럽에서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중동으로 떠났다.
알나스르에서 호날두는 팀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돋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만 35골을 넣으며 만 39세에 득점왕에 올랐지만 팀은 잇달아 우승에 실패했다. 알나스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액을 투자하며 호날두를 영입한 가장 큰 목적은 아시아 최고 클럽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기대와 달리 팀은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도 가지 못했다. 사우디 리그에서는 알힐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른 국가 클럽에 밀렸다. 알나스르는 호날두에게 투자한 보람을 찾지 못했다.
메시를 보는 호날두 심정은 어떨까?
최근에는 팀원을 조롱하는 제스처와 다른 팀에 대한 존중 결여로 비호감을 적립했다. 8월18일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슈퍼컵에서 알힐랄과 격돌한 알나스르는 1-4로 역전패했다. 호날두가 전반 44분 선제골을 넣었지만 알나스르는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알힐랄이 후반에 4골을 몰아 넣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호날두는 네 번째 실점이 나오자 동료들에게 화를 냈다. 양손을 귀 옆에 붙이고 잠을 자느냐며 팀원들을 질책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경기 후 태도도 논란이었다. 준우승을 차지한 알나스르 선수들은 은메달 수여를 위해 시상식장에 서야 했다. 호날두는 라커룸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호날두의 안하무인 격 태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2019년 유벤투스 소속으로 한국을 찾았을 당시 ‘노쇼’ 사건이 대표적이다. 호날두는 친선전에 출전해야 했지만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뛰지 않았다. 그의 노쇼 행위에 한국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으로 돌아간 호날두는 팬심을 조롱하듯 개인 운동을 하는 영상을 SNS에 올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 호날두는 자국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에게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지불했고, 2030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 자격의 보너스도 별도 지급 중이다. 호날두 영입을 신호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클럽들은 네이마르, 벤제마, 마네, 캉테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지급되는 연봉에 걸맞은 품격과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메시의 행보는 대조적으로 빛난다. 메시는 지난해 여름 미국행을 택했다. 알나스르의 최대 라이벌인 알힐랄로부터 호날두의 두 배 연봉인 4억 유로를 제안받은 뒤였다. 메시의 소속 팀은 인터마이애미로, 데이비드 베컴이 공동 구단주로 유명한 팀이다. 베컴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신대륙인 북미의 시장성을 극대화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메시는 돈이 아닌 비전을 선택했다. 인터마이애미도 7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연봉을 약속했지만 이것은 메시가 유럽에서 받던 전성기 시절의 연봉보다 적다. 700억원에는 ‘메시 효과’를 위해 미국 프로축구(MLS) 전체가 지원하는 금액도 포함돼 있다.
메시 효과는 확실했다. 인터마이애미의 경기 티켓 가격은 전년 대비 16배가 상승했음에도 매진 사례를 일으켰다. 다른 팀들도 효과를 봤다. 6만~7만 석 규모 대형 경기장들이 메시가 원정을 온다는 이유로 초고속 매진됐다. MLS는 애플티비와 중계권 협상을 새로 맺어 리그 전체의 상업적 규모도 늘렸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호날두 효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엄청난 연봉을 썼지만 경기장에 1만명 모으기도 힘들다. 알나스르의 리그 개막전 관중은 9000명에 불과했다. 메시가 선수 생활 말년에 개척자라는 명예까지 얻을 줄은 메시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쯤 되면 메시를 보는 호날두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연봉과 유튜브 활동 등 화제성을 일으키는 ‘인플루언서’로는 대단한 위상을 보여주지만, 그의 위대한 커리어는 균열이 가고 있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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