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 독립성을 구축하며 '지배 없는 지배구조'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구조적으로 배제한 독립이사회,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위원회 운영, 집중투표제 도입 등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 경영전략의 핵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4일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이사회는 총 1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13명이 사외이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이사는 3명에 그쳤다. 사외이사 비율이 약 68%에 달하는 구조로 비금융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감사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보수위원회, ESG위원회 등 5개 위원회 역시 전원 사외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고려아연이 집중투표제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도입한 점도 눈에 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이사 수를 곱한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단일투표제에서는 대주주가 사실상 모든 이사를 선임하는 구조지만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면 소액주주나 기관투자자도 연합을 통해 최소 한 명의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확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주주권 보호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평가받지만 이사 선임권 분산을 꺼리는 기업들은 도입을 회피해왔다.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편은 표면적으로는 선진 거버넌스 도입이지만 실제 최대주주 영풍과의 경영권 긴장 관계 속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최대주주인 ㈜영풍과 장형진 일가는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사회나 각종 위원회에 오너 일가 인사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구조적으로 제도화한 사례는 국내 대기업에서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오너가 사내이사나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방식과 달리 고려아연은 이사회 독립성과 경영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분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경영진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공고히 하고 외부적으로는 기관투자자 및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복합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 이사회 산하 조직도 기능 중심의 독립적 체제를 갖췄다. 감사위원회는 내부회계관리팀, 감사팀, 회계팀으로 세분화돼 있다. ESG위원회 산하에는 ESG경영팀이 독립적으로 배치돼 있다. IR팀 또한 대표이사 직속이 아닌 이사회 소속으로 편성돼 있어 투자자 정보공개의 중립성을 높이고 있다.
이같은 지배구조는 실제 경영전략에도 직결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2023년 69%의 배당성향을 기록했으며 향후 3년간도 배당성향 30% 이상 유지와 중간배당 정례화를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이사회 결의로 자사주를 공개매수 방식으로 매입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와의 IR 활동도 강화했다.
이러한 주주환원 정책은 ESG 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ESG연구소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등급을 2023년 'B'에서 'A'로 두 단계 상향 조정하며 "현 경영진 체제가 장기 주주가치 제고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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