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만들고, 사람이 모이는 곳
천연염색과 보자기 공예, 토퍼 공예까지 체험할 수 있는 마치공작소. 충주를 알차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충주가 모이는 공간이다.
세상에 인위적인 것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러운 것에 눈길이 간다. 가식적인 웃음보다 진실한 눈물이 더 아름답고, 인간이 쌓아낸 휘황찬란한 건축물보다 자연과 시간이 쌓아 올린 웅장한 풍경이 경이롭다. 찍어낸 듯 강렬한 색감보다 수줍은 듯 속내를 내비치는 고운 천연염색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충주의 서부에 위치한 주덕읍 마치마을. 이곳에 마치공작소가 위치하고 있다. 마치공작소는 천연염색과 보자기 공예, 토퍼 공예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체험 공간이다. 450평의 부지에 나부끼는 고운 색감의 천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당 중앙에서 이곳을 지탱하듯 우뚝 선 밤나무에 눈길을 주자, 마치공작소의 양재형 대표가 설명한다.
마을에서 제일 큰 밤나무예요. 저는 어렸을 때 밤나무를 많이 봤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밤나무를 잘 못 본대요. 체험하러 온 아이들이 발로 밤송이를 까보고 신기해하면서 좋아하죠. 마치공작소에는 담벼락이 없어서 마을 분들이 들어와 조금씩 밤을 주워가기도 해요. 밤의 속껍질을 율피라고 합니다. 천연염색할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예요. 갈색 계열로 색이 나죠. 밤나무도 이 땅을 산 이유 중 하나예요.
마치마을이 위치한 주덕읍은 충주의 유일한 읍이자 3번 국도와 36번 국도의 교차점, 교통의 요지다. 충주는 물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동쪽으로는 더 이상 나아가기가 힘들다. 반면 주덕읍이 위치한 서쪽은 뚫려 있어 진천, 여주, 이천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타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개방적인 지리적 이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양재형 대표가 주덕읍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다. 천연염색에 몸담기 시작하면서부터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포부와 함께 이곳에 뿌리내렸다.
천연염색은 자연이 내어준 것을 사용한다. 메리골드와 치자의 노란 빛깔, 쪽의 파란색, 녹색 식물의 엽록소를 모은 클로로필의 초록, 여러해살이 덩쿨풀인 꼭두서니 뿌리의 붉은색, 율피의 갈색. 떠올리면 무슨 색을 낼지 바로 예상 가능한 자연의 재료들로 천을 염색한다. 때문에 피부에 트러블을 일으킬 위험이 적고, 염색 체험을 하는 내내 거부감 없는 자연의 냄새가 난다.
치자나 클로로필은 담갔다 빼면 염색이 끝나는 단색성 재료예요. 꼭두서니 같은 색은 명반이나 백반을 하면 밝은 살구색이나 분홍색이 되고, 녹슨 철을 가미하는 철매염을 하면 보라색이 돼요. 식물은 다양한 색소를 가졌기 때문에 매염제를 사용해서 식물의 다양한 색 중 하나를 낼 수 있는 거죠. 푸른 쪽도 산소랑 만나면 점점 색이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요.
무늬는 홀치기염색, 즉 타이다이tie-dye 기법을 사용한다. 원단을 실로 묶거나 감아서 염료에 담근 후 물들이는 침염浸染으로 염색하는 방법. 염색을 마치고 천에 감은 실을 풀면 무늬가 나타난다. 타이다이 기법과 천연염색이 만나면 그날의 나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탄생한다. 다른 날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완전히 똑같은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 수없이 염색해왔을 양재형 대표도 마찬가지. 똑같은 재료를 선택한다고 똑같은 색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을 묶는 사람이나 강도에 따라서 늘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게 천연염색의 매력이다. 하지만 천연염색이라 색이 영원하진 않다. 그럼 어떤가. 우리조차 영원하지 않은데. 영원한 것은 자연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양재형 대표는 염색 관련업을 했던 것도 아니고, 충주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날, 충주의 한 명상센터로 자원봉사를 하러 왔고 그곳에서 천연염색 명상복을 입어보게 됐다. 천연염색과의 첫 만남이었다.
너무 편하고 땀 냄새도 안 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천연염색 장인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드는 방법을 배웠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손목이 너무 아파서 이불을 밟아서 빨듯이 발로도 해봤어요. 그랬더니 무릎이 너무 아프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천연염색 기계를 개발했어요.
이름하여 ‘워싱기’. 6년간 여러 염색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기계들을 조사한 결과, 청바지 워싱 공장에 있는 기계가 가장 적합했다. 세탁기에 넣어 염색해 보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렇게 천연염색에 딱 맞게 개조한 결과물이 워싱기다. 세탁기처럼 원단이 꼬였다가 풀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치대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워싱기를 통해 <천연염색바른>이라는 이름으로 천연염색 옷을 만들고, 다양한 브랜드에도 납품했다. 양재형 대표가 처음 천연염색 의류를 접했던 명상센터에도 천연염색바른이 만든 제품을 납품한다. 작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자체 제작 상품, 편한 착용감으로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천연염색 바지 ‘에브리바지’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천연염색, 그리고 충주의 공예들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양재형 대표는 2022년 마치공작소를 열었다. 마치공작소는 양재형 대표를 포함해 보자기 공예가 강애리 대표, 토퍼 공예가 심수진 대표 3명이 공동대표로 있는 체험 공작소다. 충주의 공예가를 한 데 모아 여행객들이 다양한 공예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체관광객들이나 아이들의 체험학습으로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을 지난해 2명, 3명의 소수 인원도 체험할 수 있게 문을 열었다. 이후로는 가족 여행객도 많이 찾아온다고.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으뜸두레에 선정됐다.
충주가 공예로 유명한 동네는 아니잖아요. 어려움은 있지만 불모지를 개척하는 느낌이라 더 좋았어요.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을 알리고자 하는 그는 충주를 알리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충주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사도 진행하기 때문. 마치공작소에서 촬영한 페이크 다큐를 엮은 패션쇼가 그중 하나다. 충주의 역사를 녹여낸 페이크 다큐로 충주를 알리고, 천연염색까지 선보일 수 있는 재치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다.
충주의 중앙탑이 마치공작소 근처에 있어요. 통일신라시대 중앙탑이 세워질 때 관련 유물이 마치마을에 있었고, 제가 땅을 일구다가 유물인 지도를 발견하는 내용이죠. 그 지도를 천연염색한 옷에다 입혀서 그 옷으로 패션쇼를 했어요. 그때 충주 관광두레 팀들을 전부 다 모았습니다. 목공예를 하시는 분은 테이블을 만들고, 관광두레 대표님이 음향과 영상 작업해 주시고, 베이커리이와정 사장님은 빵이랑 먹을거리를 준비해 주시고. 패션쇼라는 이벤트를 관광두레 팀들이 다 같이 협업해서 만든 거죠.
충북 충주시 주덕읍 마치4길 9-6
0507-1376-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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