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야구 역대 최고의 타자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추강대엽'이라는 표현이 있다. 추신수, 강정호, 이대호, 이승엽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추신수를 다른 선수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메이저리그 16시즌 1652경기 출전이라는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타율 0.275, 출루율 0.377, 1671안타, 218홈런, 157도루.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오랜 기간 검증받은 실력의 증명이다.
아시아 타자 최초로 여러 차례 20-20 클럽에 가입했고, 아시아인 최초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7년 1억 3천만 달러 계약은 당시 아시아인 역대 최대 규모였으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27번째 규모의 계약이었다.
시애틀 벤치에서 클리블랜드 4번 타자까지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데뷔했지만 이치로와 포지션이 겹치면서 3개월간 벤치를 지켜야 했다. 결국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되어 2006년 7월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

이적 후 첫 경기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친정팀 시애틀이었다. 상대 투수는 당시 시애틀의 에이스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 쓰리볼 노스트라이크에서 과감하게 스윙해 97마일 강속구를 좌중간 담장 너머로 보냈다. 이날 경기의 유일한 득점으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추추 트레인의 전성기

2009년과 2010년은 추신수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추추 트레인'이라는 별명이 탄생한 시기다. 2009년 팀의 4번 타자로 자리 잡으며 홈런, 타점, 도루, 볼넷, 안타, 출루율, 장타율 등 주요 타격 지표 전 부문에서 클리블랜드 팀 내 1위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 20홈런, 20도루를 달성하며 구단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9월 17일 캔자스시티전에서는 5타수 4안타 3홈런 7타점의 폭발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당시 탬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은 추신수를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을 지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국제대회에서의 활약

2009년 제2회 WBC에서 추신수는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두 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며 대한민국 WBC 역사상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5경기에서 14타수 8안타, 3홈런, 타율 0.571, 출루율 0.750의 괴물 같은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텍사스에서의 도전과 극복

2013년 FA 자격을 얻은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천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 이적 첫해 5월 초까지 아메리칸리그 1위의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이후 불공평한 스트라이크 존 판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현지에서는 이미 '추 존(Choo Zone)'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추신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22일 아시아인 최초 사이클링 히트를 쳐내며 부활을 알렸다.
한국 복귀와 우승의 감격

2021년 한국으로 돌아온 추신수는 SSG 랜더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한국 나이 40세에 20홈런-20도루를 달성하며 추추 트레인의 명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전 경기 안타를 쳐내며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무려 22년 만에 챔피언의 자리를 경험했다.
42세까지의 열정

우승 후 은퇴를 결심했던 추신수는 구단의 만류와 가족과의 상의를 거쳐 2024년까지 2년을 더 뛰기로 결정했다. 이 기간 동안 KBO 최고령 타자 출장을 비롯해 수많은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웠다.

2024년 10월 1일, 프로 데뷔 이후 24년간 쉼 없이 달려온 추추 트레인의 긴 여정이 막을 내렸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배트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홈런왕이 되었고, 이대호는 일본에서 타격왕이 되었으며,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서 20홈런을 쳤다. 모두 훌륭한 선수들이지만,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16시즌을 버텨냈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야구 역대 최고의 타자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