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구독경제와 궁합 딱 맞네[안재광의 대기만성]
요즘 대형마트와 백화점 가보면 LG전자의 ‘구독가전’ 행사가 많습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같은 LG전자 가전을 다달이 얼마씩 내고 빌려 쓰라는 것인데요. 과거엔 정수기, 공기청정기 같은 건 많이들 렌털해서 쓰셨죠. 이젠 대형가전도 렌털이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가전 렌털은 원래 LG전자 같은 대기업의 영역은 아니었어요. 코웨이, 쿠쿠전자, 바디프랜드 같은 중견기업이 많이 했죠. 대기업이 제대로 하기엔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고요. 해외 진출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LG전자가 최근 갑자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여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LG전자는 렌털 사업에서 뭘 봤을까요.
◆코로나 이후 구독경제 폭발
가전 렌털의 ‘시초’는 한국에선 코웨이라고 봐야 합니다. 웅진그룹이 1989년에 세운 코웨이가 정수기 렌털을 처음 시도했거든요. 이 사업은 곧바로 대박을 칩니다. 1991년에 낙동강 페놀 사건이 터졌거든요.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 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입된 일이었죠. 수돗물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정수기가 불티나게 팔렸어요.
웅진은 원래 방문판매 회사였는데요. 정수기도 방문판매로 팔았어요. 방문판매원들이 집집마다 들어가서 정수기를 설치하고 필터도 갈아 끼워줬어요. 여기에 다달이 수금까지 한 게 렌털의 시작이었습니다. 코웨이의 성공 이후 밥솥 잘 만드는 쿠쿠전자, 학습지로 유명한 교원, 안마의자로 대박을 친 바디프랜드 같은 회사들도 뛰어들었죠.
삼성전자, LG전자도 당연히 렌털 업체들의 성장을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사업을 직접 하는 데 부정적이었습니다. 가전 렌털은 우선 해외에 잘 없는 사업이었어요. 코웨이처럼 정수기 렌털로 쓰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이 말은 시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기도 하죠. 국내 시장만 보고 진출하는 건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전자, LG전자 입장에선 큰 매력이 없어 보였던 겁니다.
그럼 내수시장이라도 충분히 커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1위 코웨이가 연간 대략 4조원의 매출을 거두는데요. 대부분이 정수기에서 나와요. 안마의자, 매트리스 등등으로 열심히 확장을 시도하긴 하지만요. 정수기만큼 잘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바뀌는 일이 생겼어요.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오자 사람들이 다달이 돈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가 대표적이었죠. 코로나 때 다들 집에서 넷플릭스 많이 보셨을 겁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기가 아닌데도 계속 보고 있죠.
넷플릭스만 보나요. 티빙, 쿠팡플레이, 디즈니 플러스도 같이 봅니다. 책도 밀리의서재 같은 구독서비스로 보고요. 꽃다발이나 빵, 심지어 생리대도 다달이 돈 내고 받아봅니다.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이후 연평균 18%씩 성장 중인데요. 내년이면 그 규모가 1조5000억 달러, 약 20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LG전자 입장에선 과거 보수적이었던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렌털 했어요. 정수기, 공기청정기 같은 소형가전뿐 아니라 TV, 냉장고, 에어컨, 스타일러, 청소기 등 거의 모든 가전 상품으로 빠르게 품목을 확장했습니다. 성과도 잘 나고 있어요. LG전자의 구독서비스 매출은 지난해 처음 1조원을 넘겼습니다. 올해는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MZ 고객 유입 효과
이렇게 구독경제 형태로 제품을 판매하면 기존에 고가의 가전제품을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20~30대 젊은층이 유입된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MZ 세대는 소유보다 체험, 공유가 익숙한 세대죠. 굳이 제품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또 소득에 관계없이 고가의 제품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도 강해요. 편의점 알바 하면서 샤넬 백을 구매하고 원룸 살아도 수입차를 끄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이런 MZ세대의 성향상 구독경제는 너무나 잘 맞는 소비 패턴입니다.
넷플릭스 봐야 하는데 300만원짜리 TV 사는 건 좀 그렇고 월 4만원 내고 빌려 쓰는 게 낫다는 겁니다.
구독경제는 서비스 확장 측면에서도 좋습니다. 세탁기 렌털을 하면 6개월, 12개월 이런 식으로 방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거든요.
주기적으로 세탁기를 청소해 주는 것이죠. 이 비용은 렌털료에 녹아 있으니 추가로 회사가 돈을 받진 않는데요. 더 자주 방문 서비스를 받을수록 렌털료는 높아지죠. 제품은 그대로인데 가격을 높일 수가 있는 겁니다. 여기에 세제 같은 것을 정기 배송해 주는 것도 가능하고요. 세탁기 청소뿐만 아니라 집 청소나 냉장고 정리, 에어컨 청소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해요.
또 렌털로 팔면 기존에 잘 안 팔렸던 제품도 팔릴 수 있습니다. 로봇이 그래요. 요즘 대형 식당에 가면 서빙 로봇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요. LG전자가 이 로봇을 렌털하는 서비스를 지난 7월부터 시작했어요.
이런 로봇은 주로 법인이 구매하는데요. 법인 입장에선 렌털료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세금 면에서 렌털이 이득일 때가 있거든요. LG전자는 서빙 로봇뿐만 아니라 튀김 로봇, 이걸 ‘튀봇’이라고 하던데요. 튀봇도 렌털로 빌려 쓸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회계상 이점도 있어요. LG전자는 지난해 84조원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이 가운데 약 20조원은 자회사인 LG이노텍 매출이 연결로 잡힌 것이었고요. 이걸 제외하면 순수하게 약 64조원이 매출이었어요.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인 30조원이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에서 나왔고요. 14조원은 TV였습니다. 그리고 10조원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장부품이었고요. TV도 가전으로 본다면 매출의 70%가량이 가전에서 발생한 겁니다.
가전은 계절성이 있어요. 예컨대 봄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결혼 시즌도 있고 이사 시즌이기도 하죠. 그래서 가전이 많이 팔려요. 그래서 매출도 ‘상고하저’ 형태입니다. 상반기 좋고 하반기 안 좋아요. 작년에 가전 매출을 분기별로 보면 1분기엔 8조원이나 하던 게 4분기엔 6조원대로 확 쪼그라듭니다.
구독가전, 렌털 형태로 팔면 이런 계절성이 크게 약해져요. 구독경제는 다달이 돈을 지불하는 게 핵심이죠. 그래서 현금흐름이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안 좋은 게 아니라 꾸준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럼 주가에도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계상 이점은 또 있는데요. 바로 수익성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렌털로 팔면 당장은 큰돈이 유입되진 않지만 렌털료 내는 총합은 더 크거든요. 코웨이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8.4%였습니다. 잘 나올 땐 20%를 웃돌기도 해요.
반면 LG전자의 가전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6.7%에 불과했어요. 그나마 사업부 가운데 가전의 이익률이 가장 높은 편이고요. TV, 전장부품 이런 분야는 이익률이 1~2%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전체 이익률은 작년에 4.2%밖에 안 됐어요. LG전자가 영업이익률 7%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렌털 사업이 활성화된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이죠.
◆2030년 매출 100조원 달성 목표
LG전자는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사업 구조를 바꾸는 중입니다. 구독경제를 도입해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 중인 것뿐만이 아니에요. TV에 들어가는 운영체제, 웹OS를 사업화하고 있기도 해요.
웹OS 매출의 대부분이 지금은 주로 광고인데요. 영화나 드라마를 TV 내에서 결제하고요. 심지어 TV쇼까지 만들어서 매출을 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가전제품 없이 살아가는 서바이벌 예능을 미국에서 만들었는데요. 제목이 ‘하우스 오브 서바이벌’이었죠. 이게 미국에서 한때 시청 순위 1위까지 올랐어요.
이런 식으로 ‘조 단위’ 사업을 여러 개 새로 만들어서 2030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는 게 중장기 목표라고 합니다. 이 목표를 이뤄낼지 함께 눈여겨보시죠.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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