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가 사랑한 미술품 200점, 내년 미국서 만난다

2024. 10.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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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첫 해외 순회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하고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국가에 기증했던 미술품,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일부가 내년 말부터 미국 등 해외에서 한국의 미(美)를 알린다.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전시는 처음이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부터 3대째 이어진 삼성가(家)의 문화예술 사랑도 재조명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이건희 컬렉션은 내년 11월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을 시작으로 2026년 시카고박물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각 3~4개월씩 약 1년간 선보이는 해외 순회전을 갖는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처였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첫 해외 전시에선 국보인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보물인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고미술품부터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1973년) 등 근현대미술품까지 200여 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가의 문화예술 사랑은 이병철 창업회장부터 시작됐다. 사업하는 틈틈이 미술품을 모은 그는 1982년 호암미술관을 열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는 데 일조하자는 신념으로 모은 문화재를 영구 보존하면서 감상과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미술관을 개관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개인의 소장품이라고는 하나, 민족의 문화유산이기에 영구 보존해 국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전시하는 방법으로 미술관을 세워 문화재단의 사업으로 공영화하는 게 최상책”이라고 밝혔다.

국내 근현대미술 거장 김환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울림 19-Ⅱ-73#307’(1973년). [사진 삼성문화재단]
선친의 영향을 받은 이건희 선대회장도 국내외 여러 곳에 흩어졌던 한국 미술품을 되찾는 데 나섰다. 그는 1997년 펴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재능 있는 예술 인재를 선발해 해외 연수를 지원하고, 백남준·이우환·백건우 같은 한국 예술인의 해외 활동을 후원한 것은 유명하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04년 리움미술관을 열어 이곳을 한국 미술계의 메카로 키워내기도 했다. 그는 경제 발전으로 국민소득이 오르면 문화 인프라도 이에 걸맞게 향상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드는 데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선친이 이렇게 수십 년간 모은 미술품 약 2만3000점을 2021년 국가에 기증하면서 가문의 뜻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기증 당시 “우리 문화재와 미술품에 대한 사랑의 뜻을 국민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고인(선친)의 뜻을 기려서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써 국보 총 14점, 보물 총 46점 등의 고미술품 2만1693점과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년),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9~20년),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 호안 미로의 ‘구성’(1953년) 등 국내·외 근현대미술품 1494점이 국가에 귀속됐다.

이 같은 이건희 컬렉션은 2021년부터 전국을 돌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에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이는 등 사회적 호응으로 이어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은 개인 전유물로 여겨지던 귀한 미술품 등 수집품이 사회 전체로 공유되면서 국민 전체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이건희 컬렉션이 처음 미국으로 향할 즈음인 내년 10월 25일은 그의 5주기인데 이를 맞아 한층 뜻깊은 해외 전시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3월 삼성전자 임직원을 만나 “여기저기 익명으로 기부를 많이 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처럼 문화예술계에 대한 익명 기부도 수차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학술·예술 등 각 분야 인재 육성에 힘쓰는 호암재단엔 2021년 4억원, 2022년과 지난해 각 2억원씩 기명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홍보대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만난 주요 외빈들과 함께 호암미술관에서 올해 6월까지 열린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을 다섯 번 관람하면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국내 문화예술 발전에 대한 삼성전자의 역할을 설명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일행들에게 ‘감지금니 묘법연화경’(법화경을 금가루로 옮겨 쓴 것)을 확대해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를 직접 시연하는 등 정성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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