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이닉스 없는 AI 인프라 상상 불가…2025년 조 단위 실적 달성의 그 배경
SK하이닉스가 2025년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잠정 영업이익 43조5300억원을 넘어선 실적으로, 국내 기업 중 영업이익 1위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가장 놀라운 점은 분기 기준이다. 4분기 영업이익률이 58%로 TSMC의 54%를 상회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체 중 최상위 수익성을 보여줬다.
이 같은 실적은 우연이 아니다. 불황기에도 고대역폭 메모리(HBM) 중심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집중한 전략이 화를 맺은 것이다. 현재 엔비디아에 공급되는 HBM3E의 75% 가량을 하이닉스가 납품하고 있다. 2026~2027년 메모리 공급 부족과 D램·낸드 가격 상승으로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추가로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7년 글로벌 메모리 시장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53% 증가한 8427억달러(약 1223조원)를 기록할 전망이며, D램 가격은 2027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판단된다.
▮▮ 워크아웃 위기에서 글로벌 메모리 강자로…최태원의 '역전 드라마' 15년
SK하이닉스의 변신은 드라마틱하다. 2001년 외환위기 이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며 17조3000억원의 부채로 신음하던 회사가 이제는 글로벌 반도체 강자가 됐다. 워크아웃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창출하는 '블루칩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005년 워크아웃 졸업을 선언했다.
진정한 전환점은 2011년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그룹 이사회 대부분이 반대했지만, 최 회장은 "매년 10% 이상씩 발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미래 먹거리가 필요하다"며 결단을 내렸다. 총 3조3700억원이 투자된 인수 작업 이후, SK는 뒤이어 4조원에 가까운 설비 증설 투자에 나섰다. 2012년 2월 인수 완료 당시 반도체 산업은 업황이 불투명했지만, SK 경영진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이 같은 '위기극복 DNA'는 수십 년을 거쳐 다졌다. 2001년 유동성 위기 속에서도 기존 투자 규모의 3분의 1 수준으로 신제품을 생산하는 공정 기술을 개발했고,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으로 채권단의 신뢰를 회복했다.
▮▮ HBM 독주 체제에서 HBM4 경쟁까지…"먹거리는 계속 준비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4(6세대)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유지할 준비를 마쳤다. 지난해 9월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한 이후, 엔비디아에 대량의 유상 샘플을 공급해 왔다. 올해 엔비디아향 HBM4 전체 물량의 약 60%를 공급하기로 이미 계약이 돼 있으며, 1분기 중 최종품 퀄테스트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경쟁사 삼성전자는 기술력에서 앞선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공급망 계약에서는 뒤쳐져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중순 엔비디아로부터 2월께 양산 준비를 갖추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납품 비중에서는 SK하이닉스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HBM4에서는 삼성전자의 가격 협상력이 SK하이닉스와 비등한 수준까지 올라왔으며, 엔비디아의 속도 요건 충족 능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카운터포인트 분석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HBM4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4%, 삼성전자 28%, 마이크론 18%로 추정된다. 골드만삭스는 "최소 2026년까지 SK하이닉스가 HBM3·HBM3E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전체 HBM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이어갈 것"이라 분석했다.
▮▮ 청주·용인 클러스터, 미국 패키징 공장…생산 능력 확대의 '삼각벨트' 전략
SK하이닉스는 기록적 실적으로 확보한 재무 여력을 미래 투자에 대거 투입 중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2050년까지 총 600조원을 투자해 4개 팹을 구축할 계획이며, 청주 M15X와 함께 2030년까지 D램 생산능력을 월 70만장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용인 클러스터에 들어서는 4개 팹은 청주 M15X 6개와 맞먹는 규모로, 부지 면적만 서울 여의도의 1.5배인 415만㎡에 이른다. 완성되면 SK하이닉스는 이천(R&D)·청주(낸드플래시)·용인(첨단 D램)으로 이어지는 '삼각벨트'를 완성하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는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이다. 목표 가동 시기는 2028년 하반기로, HBM을 직접 2.5D 패키징까지 진행할 수 있는 글로벌 최초의 양산 라인이 될 예정이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사장은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실적 성장을 이어가면서 미래 투자와 재무 안정성, 주주환원 간 균형을 유지해 나가겠다"며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파트너로서 역할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비상장기업에서 국내 영업이익 1위까지…"슈퍼사이클의 수혜자는 단 한 곳"
SK하이닉스의 변신은 경영 철학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2016년 최태원 회장이 SK매니지먼트시스템(SKMS)의 정관을 변경해 경영철학에 사회적가치 창출을 명확히 한 후,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그룹 내 설파했다. 불황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문화와 책임 경영이 오늘의 SK하이닉스를 만들었다.
2025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입증한 해였다. AI 시대 개막 이후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심화되며, HBM 시장에서의 압도적 우위가 곧 초과이익으로 귀결된 것이다. 매출 97조1467억원, 순이익 42조9479억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때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혔던 기업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이윤을 남기는 회사가 됐다는 사실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저력과 함께 '위기극복 DNA'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업계는 2026~2027년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계속되면서 SK하이닉스의 실적 상승 기조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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