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 타인의 삶에 대한 무모한 도전 [콘텐츠의 순간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고 싶은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타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판타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영화·게임과 같은 픽션에서는 인물 간의 삶이 뒤바뀌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고 독자 또한 그것을 쉽게 수용한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이 논픽션 포맷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일정 시간 동안 타인의 정체성으로 살아간다’는 설정만 주어질 뿐 정해진 각본도 결말도 없다면?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새로운 연출작 〈My Name is 가브리엘(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JTBC)은 그러한 질문을 통해 ‘판타지-리얼리티’라는 모순된 가능성을 실험한다.
‘3일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은 이 황당한 문장 속에 출연자들을 무심하게 던져놓는다. 출연자들은 72시간의 기한이 카운트되기 전까지 자신의 성별·인종·직업·계급 등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또한 제작진은 그들이 바뀐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혼란을 겪으며 우왕좌왕하다 ‘빙의’를 겪은 사람처럼 바뀐 세계관에 능청스럽게 적응하기도 하고, 시공간 여행을 하게 된 사람처럼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적응하기도 한다. 바뀐 삶에 대한 세밀한 설정까지 출연자의 캐릭터와 선택에 맡긴 셈이다.
배우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루리’라는 남자로 살게 된다. 짧은 시간에 축제의 합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미션에 박보검은 무척 당황하지만, 루리의 주변인들은 박보검을 적극적으로 도와 그가 성공적인 합창을 이끌 수 있도록 협조한다. 마침내 성공적으로 합창을 마친 박보검은 낯선 땅에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한다.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는 방송의 허구적 설정보다 출연자의 도전과 그를 돕는 낯선 이들의 환대가 새로운 서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아가베 농장에서 거농의 사위인 ‘삐뻬’의 삶을 살게 된 배우 지창욱은 도착과 동시에 7t 분량의 아가베를 수확하는 일을 맡아 고된 육체노동에 성실히 임하며 본인의 체력적 한계를 느낀다.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도예 장인의 아들이 된 덱스 역시 군인으로 산 자신의 경험을 십분 이용해 처음 하는 작업들도 거침없이 해내며 현지에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새로운 경험에 몸을 사리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매력적이지만 이들의 에피소드는 어쩐지 〈무모한 도전〉이나 〈체험 삶의 현장〉 등을 떠오르게 한다.
이야기를 통제하지 않는 ‘리얼리티’의 방식으로 인해 이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상황이 ‘타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주제보다 더 부각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은 중심을 잃는다. ‘이야기의 방향은 출연자에게 달려 있다.’ 박보검의 에피소드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이러한 기조는 ‘삶 바꾸기’라는 설정에 보장된 장르적 재미와 시청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채 방송을 출연자의 매력에 모든 것을 기대는 평범한 관찰 리얼리티 쇼로 전락시키고 만다.
프로그램의 설정을 압도하는 여행기
아쉬운 점이 하나 더 있다. 보통 삶을 바꾼다는 가정은 나와 비슷한 세계에서 다른 조건을 가진 이들을 상상하며 힘을 갖는다. 그러나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은 삶이 바뀌는 무대를 외국으로 선택해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체험하며 느끼는 여행기적 성격이 프로그램의 설정을 압도한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완전히 그의 삶에 몰입하지 못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몰입도 방해하고, 작품의 소재를 ‘연예인들의 외국 여행’으로 축소하며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의 문제점은 ‘왜 타인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결여되어 있기에 발생한다. 물론 방송은 그 욕망의 이유를 파고들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삶을 통해 물질적 욕망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이야기들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한다. 실재하는 인물의 삶을 이용한 리얼리티에서 ‘타인의 삶으로 살아본 경험’만이 안전하게 남았다. 이는 오히려 타인을 지나치게 피상적인 존재로 만들고, 다른 이들의 삶을 상상하며 자신의 세계를 수정하고 확장하는 기회를 잃게 한다.
가장 최근 방영한 댄서 가비의 에피소드는 앞선 에피소드들과 달리 이 쇼가 꼭 해야 했던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제작진은 가비에게 멕시코시티에 사는 남성 우시엘의 삶을 부여한다. 낯선 국가에서 새로운 성 정체성을 받아들인 그는 멕시코인과 한국인의 차이, 여성인 자신과 남성인 우시엘의 차이를 골똘히 생각하다 이내 화려한 치마를 입고 수상 공연을 펼치는 한국 여성 가비이자 멕시코 남성 우시엘이 되어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의 경계를 지운다. 가비의 에피소드는 인종과 성별 두 가지 제한된 조건 속에서 우리가 타인의 삶을 욕망하는 이유가 타인과 나 사이의 차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욕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새롭게 질문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고 싶은가? 상상이 아닌, 실제라면? 대답을 위한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리얼리티 쇼’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인종·국가·종교·장애·성별·계급 등 우리의 차이를 만드는 수많은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교환해 우리가 타인의 삶을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도록, 결국 우리가 대답하지 못한다 해도 전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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