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외국 보낸 김 부장, 술·담배도 끊고 구내식당만 가는 이유
월 400만원 웃도는 외국 거주 자녀들 생활비…탈출구 없는 부담에 우울증 겪기도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홀로 가계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의 안타까운 현실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통계 결과가 등장했다. 기러기 아빠들이 속한 중년층 1인 가구의 지출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 내에선 주요 요직에 배치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개인의 경제적 여건은 사회 초년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신입사원 대비 월급 2배 이상 높지만 소비 수준 비슷…하루 2만원도 못 쓰는 차·부장님들
‘기러기 아빠’란 자녀 유학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이나 타 지역으로 보내놓고 한국에 혼자 남아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남편을 일컫는 단어다. 소득이 월등히 높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기러기 아빠 대부분 해외에 있는 소득의 대부분을 외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지출한다. 자연스레 개인의 취미, 여가생활 등을 위한 소비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중·후반까지는 사회에서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으로 분류되는 연령대다. 전문성과 노하우를 두루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 역시 타 연령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40대 대기업 근로자의 월 평균소득은 728만원이다. 같은 기간 20대(340만원)에 비해 2배 넘게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인 경우 지출 수준은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1인 가구 구매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년층(30~49세) 1인 가구의 월 평균 소비재 구매액은 65만4599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19~29세 사이 청년층(40만9696원)의 지출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통상 중년층 1인 가구는 미혼인 경우 또는 특별한 사정에 의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따로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 교육통계서비스의 ‘유학생 현황’을 보면 지난해 교육을 목적으로 출국한 학생 수는 1만5327명으로 2022년(1만1509명) 대비 약 4000명 가량 증가했다. 기러기 아빠들이 유학간 자녀와 아내를 위해 보내는 월 평균 송금액은 400만원을 웃돌았다. 다만 자녀의 수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액수의 차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최근 ‘킹달러’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러기 아빠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중 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최우성 씨(48·남)는 “회사 내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며 후배 직원들이 부러워할 만한 연봉을 받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한 달에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은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며 “두 아이와 아내 모두 미국으로 떠나 5년 째 거주 중인데 유학비 부담이 정말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삶을 위한 투자 없이 경제적인 부담감을 느끼는 기간이 지속될 경우 정신적인 우울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앞서 아들과 아내를 캐나다로 떠나보낸 대구의 한 50대 의사가 생활고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기러기 아빠들은 같은 연령대에 비해 우울증을 가진 비율이 2~3배 높고 알코올중독도 더 많다”며 “기러기아빠도 가족만을 위한 삶보다는 자신을 위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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